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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울퉁불퉁한 외벽, 상처의 표현이지요”…건축물이 털어놓은 이야기

해설사와 함께한 ‘부산건축투어’
최승희 기자 shchoi@kookje.co.kr | 2022.05.11 19:23
우리는 도심 속 수 많은 건축물에 둘러싸여 지낸다. 대부분 조형미보단 실용성 중심의 네모 반듯한 건물이라 무심히 지나치지만, 공간의 메시지와 미학적 측면을 살린 건물도 부산 곳곳에 서 있다. 이런 건축물을 마주했을 때 대개의 사람은 ‘크다’ ‘특이하다’‘밝다’ 등 어렴풋한 인상만 느낄 뿐 구석구석 심어놓은 건축 이야기를 발견하기란 어려운 게 사실. 여기, 부산의 다양한 건축문화 자산을 함께 둘러보는 도심산책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부산건축제가 3~6월, 9~11월 주말마다 진행하는 ‘뚜벅뚜벅, 부산건축투어’다. 건축문화해설사와 함께하는 투어는 ▷센텀시티 건축 ▷유엔·문화 건축 ▷원도심 건축 등 3가지 코스로 운영된다. 봄날의 주말, 염수정 건축문화해설사가 진행하는 부산 남구 대연동 일대 유엔·문화 건축 투어를 따라가봤다. 부산문화회관에서 집결해 일제강제동원역사관→UN평화관→일오집·부산발도르프학교→UN공원으로 이어지는 유엔·문화 건축코스다. 부산건축투어는 2시간여 소요된다.
부산문화회관-일제강제동원역사관-유엔평화기념관-유엔기념공원

1. 전통 한옥 건축양식 살린 ‘부산문화회관’

“부산문화회관을 봤을 때 어떤 느낌이 드세요? 한국 전통가옥의 모습을 찾을 수 있으세요?” 부산 남구 대연동 부산문화회관 마당에서 만난 참가자들은 염 건축문화해설사의 질문에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극장을 둘러봤다. 부산문화회관은 단독 건물이 아니라 대·중·소극장이 있는 3개 동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마당에 서 있으면 건물에 둘러싸인 듯하다. “한옥으로 치면 대극장은 본채, 중·소극장은 사랑채인 셈입니다. 자연스럽게 마당이 생기면서 사람이 모이는 공간이 됐죠. 담장이나 대문도 없어요. 시민들이 자유롭게 어느 방향으로든 들어올 수 있게 만든거죠.”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의 지붕은 한옥 기와지붕 양식을 따왔다.
건물 외관에서도 한옥의 전통미를 발견할 수 있다. 지붕을 유심히 살펴보면 사다리꼴 모양으로 아래끝이 쭉 뻗은 모습이 기와지붕과 처마를 연상케 한다. 지붕을 받치고 있는 기둥은 열주의 형태를 본땄다. 특히 이 기둥은 높이마다 굵기가 다른데, 바닥 위 2m 지점이 가장 굵어 가운데가 볼록하다. 부석사 무량수전에서 볼 수 있는 배흘림기둥이다. “기둥이 보통 사람 키의 3배 높이기 때문에 굵기가 일정하면 가운데가 부러질 것 같은 착시가 생겨요. 이러한 불안감을 완화하기 위해 배흘림 형태를 따 온 거죠.”

기둥이 건물을 둘러싼 모습은 한편으론 그리스 신전 아크로폴리스를 떠올리게 한다. 아크로폴리스는 높은 곳에 위치해 아래에서부터 올라갈수록 조금씩 건물의 모습을 드러내 신비감을 배가한다. 부산문화회관도 1988년 개관 당시엔 경사지를 이용해 이 같은 효과를 의도했다고 한다. 그러다 부산박물관 등이 생기면서 경사 높이가 절반가량 줄었는데, 접근성이 좋아진 대신 이러한 신비감은 다소 감소했다. 이동하기 전 염 해설사가 말했다. “현대 건축물에 한옥이나 아크로폴리스와 같이 전통 건축양식을 가미한 것을 포스트모더니즘 건물이라고 한다는 점도 기억해주세요.”


2. 아픈 상처 새긴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부산시와 부산건축제는 시민을 대상으로 ‘뚜벅뚜벅, 부산건축투어’를 운영한다. 사진은 일제의 강제동원 참상을 알리는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앞에서 염수정 건축문화해설사가 설명하는 모습.
1930년대 일본의 인적 자원 수탈은 위안부 징병 징용 동원 등 크게 4가지로 가해졌다.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은 일제에 의해 자행된 강제동원의 참상을 널리 알리고, 추모와 세계평화에 대한 교육의 장을 제공하기 위해 2015년 문을 열었다. 당시 부산항이 강제 동원의 출발지였고, 강제동원자 20% 이상이 경상도 출신이라는 역사성을 고려해 부산에 세워졌다.

아픈 역사를 품은 공간인 만큼 외관에서도 무거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건물 덩어리를 크게 지음으로써 위압감을 주는 한편 어두운 색 외벽에 울퉁불퉁한 마감으로 상처를 표현했다. 경사지에 지어진 건물은 4층 높이로 떠 있는 필로티 구조인데, 크지만 부유하는 듯 하늘을 향해 나아가는 느낌을 준다. “강제동원 역사는 암울하지만 평화를 희망 하는 염원을 담아낸 건축물 입니다. 경사부지를 잘 활용했죠.”

4층 상설전시실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추모의 길’이라 부르는 계단을 이용하길 권한다. 이 계단은 단순히 오르는 게 아니라 강제동원의 절망감과 고통을 짐작하며 걷는 길이다.

전시실은 어둡고 좁은 ‘기억의 터널’을 지나 입장한다. 터널이 끝나자 넓고 큰, 빈 공간이 나타나는데, 공중엔 강제동원 됐던 사람들의 이름을 새긴 진혼의 다리가 놓여져 있다. “건물은 가득 채워야 경제적인데 이렇게 비워놓은 공간을 ‘보이드’라 해요. 답답한 공간에 있다가 탁 트인 곳으로 오면 집중하게 되잖아요. 여기에 진혼의 다리를 놓고 사람들이 단순히 지나치지 않도록 만든 거죠.”

전시를 모두 보고 나오면 2개 층을 틔운 벽면이 등장하는데, 여기엔 당시 강제동원된 사람들의 사진이 가득 걸려있다. 누군가의 다정한 부모, 살가운 자식, 정겨운 형제였을 이들이다. 내벽은 상처와 아픔을 드러내기 위해 까끌까끌한 마감재를 사용했지만, 천장엔 채광창을 두어 밝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3. 밝은 희망 염원 ‘유엔평화기념관’

유엔평화기념관엔 한국전쟁 후 부산 재건을 위해 헌신한 고 리차드 위트컴 장군을 기리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서 조금만 내려오면 유엔평화기념관이 있다. 역사관이 아픔을 형상화했다면 기념관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세계 각국 군인을 추모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희망찬 미래를 담아내고 있다. 어둡고 툭툭 튀어나온 느낌의 역사관과 달리 기념관은 외벽이 밝고 경사지 안으로 들어간 모습이다. 가운데 솟은 구조물은 전망대인데, 유엔기념공원과 일직선으로 연결되게 만들었다.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의 날갯짓을 본 딴 외형이다. 1전시관은 한국전쟁관, 2전시관은 유엔참전기념관이다. 부산의 재건과 발전을 위해 애썼던 미국 리차드 위트컴 장군을 기리는 공간도 따로 마련돼 있다. 그는 당시 병사 월급을 1%씩 모아서 부산 중구 영주동에 피난민촌을 만드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4. 아이 중심의 ‘일오집’ ‘부산발도르프학교’

아이가 자라기 좋은 주거 환경을 위해 학부모가 모여 만든 일오집 외관.
‘일오집’은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마당 있는 집을 짓기 위해 인근 대안학교 학부모들이 함께 모여 지은 집으로 14가구와 1채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구성돼 이름 붙여졌다.

아파트가 시공사의 설계대로 모든 집의 구성이 똑같다면, 일오집은 설계 단계부터 입주자들이 참여해 취향을 반영했다. 2개 동 건물 사이에 아이들을 위한 마당과 수영장 등을 만들었는데, 이를 위해 각 집마다 방을 1개씩 포기했다고 한다. 이후 맞은 편엔 비슷한 형태의 공동체 주택 ‘모여가’가 들어섰다.

부산발도르프학교는 발도르프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립학교이다. 이 학교 역시 경사지를 무리하게 깎지 않고 대지에 순응한 건물 배치가 특징이다. 단순한 건물에 아이들의 창의력을 높이기 위해 창문을 다양한 크기와 모양으로 냈다. 내부에 있는 아이들은 똑같은 바깥의 풍경이지만, 창문의 모양에 따라 여러가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5. 추모메시지·조형미 모두 살린 ‘유엔기념공원’

유엔기념공원 출입문의 주두는 제기를 형상화 해 기능과 조형미 모두 갖췄다.
세계 유일의 유엔기념묘지인 유엔기념공원은 세계평화와 자유를 위해 생명을 바친 유엔군 전몰 장병이 잠들어 있다. 묘지는 1951년 전사자 매장을 위해 유엔군 사령부가 조성했다.

이곳은 공원을 입장하는 출입문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지붕과 4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이 콘크리트 출입문은 부산문화회관과 같이 한옥 양식을 찾아볼 수 있다. “끝이 번쩍 들린 추녀 형태가 보이세요? 지붕과 기둥을 연결하는 주두는요? 주두는 지붕의 무게를 기둥으로 모아주는 역할을 하는데, 제기를 형상화 해 조형적 고민이 묻어나죠.” 지붕 가운데엔 유리천장이 놓여있다. 콘크리트 지붕의 무게를 줄이고 자연채광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비오는 날 지붕이 무거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물이 빠지는 구멍도 4개 있다. 고국을 그리는 군인의 눈물을 형상화하고, 물이 떨어지는 곳을 하수도에 연결되도록 만들어 세심하게 신경 쓴 흔적이 보였다. 공원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추모관은 전면이 세모 모양이다. 기도를 위해 손을 모으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지붕 가운데가 뾰족해 하늘로 올라가려는 느낌도 든다. 이러한 건물 형태는 하중이 많이 실려 양 옆에 쇠심지를 박고 하중을 분산했는데, 뾰족뾰족 세모 느낌이 더해져 기능과 조형미를 모두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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