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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윙키즈’ 속 포로 전쟁의 참상을 거제서 마주하다

다크투어리즘 명소 거제 포로수용소 여행
김미주 기자 mjkim@kookje.co.kr | 2021.06.30 19:23
- 북한·중공군 17만 명 격리됐던
- 6·25 전국 최대 규모 수용시설
- 휴전 후 실제 건물·기록물 보존
- 유적공원으로 꾸며 관람객 맞아

- 탱크·폭파된 철교·MP다리 모형
- 빗발치는 포탄소리 현장감 가득
- 친공·반공포로 격돌장면도 실감

- 영화 ‘스윙키즈’ 배경 된 무도장
- 입구 잔해만 남아 참상 느껴져
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에 재현된 MP다리. 한국전쟁 당시 붙잡힌 포로들은 이곳에서 UN군의 검문을 받은 뒤 수용소에 격리됐다.
#1. 거제포로수용소에서 생긴 일

1952년 어느 날, 한국전쟁 포로를 격리했던 경남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독일인 사진작가 베르너 비숍은 자복면을 쓰고 춤을 추는 포로들의 사진을 찍게 된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죽음의 그림자만 짙어지는 수용소 포로들의 신명 나는 춤은 기묘하고 아이러니했다. 이 비극적인 사진은 상상력을 덧입고 미국 탭댄스의 매력에 빠진 북한군 포로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로기수’(2015)로 부활했다. 3년 뒤인 2018년, 로기수는 ‘스윙키즈’란 영화 속에서 다시 나타났다.

포로수용소 내 무도장 건물 잔해.
수용된 포로가 춤을 추는 이야기는 허무맹랑하지만은 않다. 당시 포로들은 제네바협약에 따라 직업 교육이나 취미활동 등을 보장받으며 수용소에서 지낼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시간이 지나며 많은 북한군 포로가 북으로의 송환을 포기하고 남한에 남길 희망하자 수용소에서는 반공 포로와 친공 포로 간 이념 갈등이 폭발하게 된다. 일부 과격한 무리는 살육전을 벌이고 폭동을 일으켰다. 경비병 역시 무기로 이들을 제압하며 수용소는 한국전쟁의 축소판이 돼 버렸다. 영화 ‘스윙키즈’는 이 같은 갈등을 중화하고 수용소의 대외적 이미지를 개선하고자 결성된 ‘전쟁포로 댄스단’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의 배경이 된 거제포로수용소는 휴전 이후 오랜 시간 닫혀 있다가 유적공원으로 거듭나 당시의 참상을 생생히 전한다.

#2. 71년 전 그날로 시간여행

유적공원 야외 전시장에서 한국전쟁 당시 투입된 탱크와 헬기 모델도 볼 수 있다.
포로수용소는 1951년부터 거제 고현·수월지구를 중심으로 설치됐다. 북한군과 중공군 등 17만3000여 명의 포로가 격리된 최대 규모의 수용소였다. 1953년 7월 27일 휴전되며 수용소가 폐쇄되고 포로들이 풀려나기까지 실제 사용된 건물과 기록물이 유적공원에 남아 있다. 유적공원은 이를 바탕으로 당시 포로들의 생활상 등을 재현했다.

유적공원 관람은 탱크전시관부터 시작된다. 외관은 북한군 선봉에 섰던 소련 T-34탱크 외관을 그대로 본뜬 것이다. 멈춰버린 탱크의 거대한 바퀴를 뒤덮은 덩굴식물이 세월의 무상함을 보여준다. 이곳을 지나면 야외 스피커에서 천둥 치듯 갑작스럽게 포탄이 빗발치며 71년 전 6월 25일로 시간여행이 시작된다. 폭파된 대동강 철교를 타고 강을 건널 수밖에 없었던 피란민 모형에서는 절박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포로 중에는 군인뿐만 아니라 피란길에 휩쓸린 민간인도 상당수였다.

#3. 이념 전쟁 축소판 생생히 재현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간 유혈사태를 재연한 모형.
포로를 수송했던 LST(미국의 상륙 작전용 함정)와 수용소의 관문인 MP다리를 재현한 곳을 지나면 본격적인 포로 생활이 시작된다. 수용소 탈출을 시도한 일부 포로의 이야기는 최근 롤러코스터와 집라인을 결합한 ‘아바타 포 체험시설’로 재구성됐다. 목숨을 걸고 탈출하려는 포로들의 긴박한 심박수를 레일에 재현한 듯 꽤 험난하다.

녹이 슨 철모와 무너진 막사 등 전쟁과 군대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녹인 전시실 외관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친공 포로와 반공 포로 간 격돌 장면은 모형과 스피커 모션 등을 복합한 연출 기법으로 곳곳에서 실감 나게 재현된다. 특히 레일에 선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총을 쏘거나 기습공격하는 포로의 모형은 한낮에 봐도 깜짝 놀랄 만큼 사실적이다. 소지품이 제한된 포로들은 철조망을 자르거나 뾰족한 못, 부서진 칼날 등을 닥치는 대로 모아 살상 무기로 썼다.

무너진 대동강 철교 위에 올라타 강을 건널 수밖에 없었던 피란민들.
영화 ‘스윙키즈’에서 친공포로가 반란을 모의했던 칸막이 없는 공중화장실과 바로 옆 취사장은 유적공원에 고스란히 재현돼 이들의 열악한 환경을 보여준다. 막사에서 잠들거나 악기를 연습 중인 포로 모형의 표정은 보통의 젊은이와 다르지 않다. 수용소는 초기에 천막을 세우고 가마니를 깔아 포로 막사를 만들었다가 이후 수용인원이 급증하자 흙벽돌 막사를 건립했다. 유적공원에서 막사의 변천과정까지 한눈에 확인 가능하다.

건물 잔해가 남은 잔존 유적지 앞에서 전쟁의 참상은 더 가까워진다. 유적공원에는 당시 경비대장의 집무실과 막사, PX, 무도장 건물의 흔적이 남아 있다. 무도장 건물은 대부분 부서지고 출입문이 있던 한쪽 면과 시멘트 바닥만 남았다. 본래 무도장은 경비병이 춤을 추며 고향의 그리움을 달래던 곳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춤은 포로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휑한 시멘트 바닥 위로 춤을 추는 포로들의 잔상이 그려졌다.


◇ 지세포진성 흐드러진 ‘꽃동산’…조선업 도시다운 ‘조선해양문화관’

■ 근처 가볼 만한 곳

마음먹고 떠난 여행에서 매번 화창한 날씨를 기대할 수는 없다. 갑작스러운 비는 특히 여름 여행에서 흔한 변수다. 비가 와도 둘러보기 좋은 관광지를 추천한다.

최근 지세포진성에는 사시사철 꽃이 지지 않는 ‘꽃동산’이 생겨 관광객을 불러모은다. 지세포진성은 조선 시대 인종 때 쌓은 포곡식 산성(성곽 안에 골짜기를 품고 축조)이다. 성 내 휴경지는 오랜 기간 방치됐는데, 2019년부터 선창마을 주민과 거제시가 관광명소로 조성하기 위해 꽃을 심기 시작했다. 4만여 포기의 라벤더를 시작으로 금계국 송엽국 해바라기 수국 등을 심어 사계절 꽃이 피도록 했다. 주차장과 화장실 등 편의시설을 갖췄고, 최근에는 바다와 꽃을 배경으로 예쁜 추억을 남기는 포토존도 조성했다.

촘촘한 주택가 사이 ‘라벤더 꽃동산’이란 표지판을 따라 몇 차례 좁은 골목을 비집고 들어갔다. 이곳 주민의 텃밭인 듯 작은 밭이 펼쳐졌다가 곧바로 탁 트인 너른 숲이 눈에 들어왔다. 심은 지 얼마 안 돼 아직은 키가 작은 라벤더가 발치에서 은은한 보랏빛을 내뿜었다.

이날은 종일 비가 내려 하늘이 내내 어두웠다. 비가 오면 시야가 흐려 맑은 하늘과 바다를 볼 수 없는 건 아쉽다. 하지만 만개한 금계국이 사방에서 노란빛을 발산해 땅에서 해가 뜬 듯 눈부시다. 우산 위로 우중충한 하늘과 우산 아래 노란 꽃천지를 보는 건 색다른 경험이다. 초승달 조형물이 있는 곳까지 올라가 내려다보면 노란 꽃천지는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라벤더 꽃동산은 골목 사이 계단이 꽤 가팔라 비가 많이 내릴 때는 길이 미끄러우니 주의해야 한다. 7월에는 키 작은 해바라기와 풍성한 수국이 장관을 연출할 예정이다.

마을에서 1.5㎞ 정도 도보로 걸어 내려오면 조선업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거제조선해양문화관을 둘러볼 수 있다. 1관 어촌민속전시관과 2관 조선해양전시관은 서로 떨어져 있다. 1관에는 거제 수산업과 어촌마을의 생활상, 남해안의 해양생물 등이 전시됐다. 2관은 선박을 건조·수리하기 위해 조선소 등에 세우는 시설인 독(dock)에 들어온 듯 압도적인 크기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파피루스선이나 가죽 배 등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의 배 역사와 조선소의 건조 방식, 미래해양도시의 모습을 전시로 확인할 수 있다. 거제 해저를 탐험하는 듯한 4D 시뮬레이터 ‘영상탐험관’도 있다.

글·사진=김미주 기자 mjkim@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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