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치대풍’에 하리항 몰려든 꾼들
- 선체를 20명이 자리뽑기로 나눠앉아
- 1시간 가량 남형제섬으로 이동
- “수심 70ｍ입니다, 10ｍ 띄우세요”
- 선장의 말 끝나기 무섭게 낚시 드리우자
- 손맛 좋은 갈치들 줄줄이 올라와 환호

- 새벽 4시, 체력이 고갈된 낚시꾼들
- 좁은 선실에 오밀조밀 누워 눈붙여
- 출어 비용 약 15만 원… 멀미약 필수

요즘 낚시 포인트 중 가장 ‘핫’한 곳은 어딜까. 바로 우리 고장, 부산 앞바다다. 한동안 한치 낚시로 불야성을 이룬 부산 앞바다에서 통상 9월부터 11월까지 잡히는 갈치가 7월부터 모습을 드러내더니 연이어 낚싯배들이 부산으로 몰리고 있단다. 지난달 금어기에 묶여 펄떡거리는 갈치를 눈앞에 그리기만 했던 꾼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4지급(손가락 네 마디 크기) 이상의 갈치를 낚겠다는 각오를 다지면서 8월이 되기만을 기다렸을 거다. 장비를 손보고 체력을 키우면서.

출렁대는 작은 낚싯배에서 밤새 체력을 소진해가며 바다와 싸운 끝에 쿨러를 갈치로 가득 채운 낚시꾼들이 수확물을 양손 가득 들어보이고 있다. 이날 승선한 20명 모두 쿨러를 가득 채워 ‘만선’을 이뤘다.

■갈치 대풍 소식에 전국서 몰린 꾼들

선상 낚싯배인 나이스호가 지난 8일 갈치 낚시를 떠난다고 공지하자마자 20명에 달하는 전국의 낚시꾼이 순식간에 신청을 확정했다. 지난 6일부터 ‘갈치 대풍’이라는 소식이 들려온 때문인가 보다. 부산지역 마트에서는 3지급 갈치가 1만2000~1만5000원에 팔리고 대구에서는 3지급 갈치가 3만 원이나 한다고 하니 ‘만쿨러(쿨러를 가득 채움)’를 하면 출어 비용을 제하더라도 쏠쏠한 재미를 볼 수 있을 게다.

얼마 전까지 갈치는 제주도에서만 잡히는 걸로 알 정도로 낚시 문외한이었던 기자도 부산 앞바다에서 갈치가 펄떡인다는 소식에는 이상하게 가슴이 설렌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야간에 바다 위에 둥둥 떠서 은빛 찬란한 갈치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일 테다. 본지 칼럼니스트인 나이스호 박춘식 선장과 함께 야행성인 갈치 낚는 현장을 보기 위해 남형제섬으로 떠났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정작 중요한 사항을 간과하고 있었다. 부두에 정박하는 것이 아니라 12시간 동안 바다 한가운데 둥둥 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로 인해 찾아오는 불청객인 뱃멀미를 맞아야 한다는 사실을.

■자리 제비뽑기에 엇갈리는 희비

갓 잡아올린 갈치. 싱싱한 갈치는 광택이 그대로 살아있다.

지난 8일 오후 5시 영도 하리항. 이날 갈치 낚시를 떠나는 나이스호에는 만쿨러를 꿈꾸는 낚시꾼들이 출항을 기다리고 있었다. 해경 대원의 명부 확인이 끝나자 자리 뽑기가 시작된다. 이물(배의 앞쪽)과 고물(배의 뒤쪽)이 인기다. 배 전체를 쪼개 20명이 낚싯대를 드리우는데 이물과 고물 쪽 자리가 상대적으로 넓어 인기였다. 박춘식 선장은 “이물과 고물에 계신 분들이 잘 해주셔야 나머지 꾼들도 성적이 좋아진다”며 살짝 압박한다. 배는 남형제섬으로 1시간가량 이동한다. 이날 파도가 꽤 거셌다. 파도가 뱃전을 때릴 때는 배가 부서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남형제섬 인근에 닻을 내리는데 수영구에서 온 정성하(62) 씨가 “물색이 푸른 것이 낚시에 좋지 않아. 갈치도 낯선 환경에서는 잘 안 나오거든. 우윳빛이 좋은데…”라며 아쉬워한다. 낚시꾼들이 채비하는 중에 박 선장의 마이크 소리가 들린다. 그는 “이곳은 수심 72ｍ입니다. 바닥에서 10ｍ를 띄우세요. 전동릴을 통해 실제 수심과의 편차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몇ｍ로 내리라고 할 때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라고 안내한다. 60ｍ 근처에 어군이 형성된 모양이다. 풀치 몇 마리가 입질한다. 풀치는 갈치 새끼를 말한다. 갈치의 원말은 칼치로 칼을 닮았다고 부르고 그 새끼 풀치는 풀잎 모양을 닮았기 때문이다. 크기는 2지급이거나 이보다 작아 대부분 방생하거나 3~4지급 갈치를 낚을 때 미끼로 사용하기도 한다. 갈치는 같은 종족도 서슴지 않고 공격하는 잔인한 녀석들이다.

낚시꾼의 눈이 정확했던 것일까. 한 시간을 넘겨도 풀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물에서 고물까지 훑어봐도 풀치를 잡은 이도 그리 많지 않다. 분위기를 살피던 박 선장이 다수의 의견을 모아 장소를 옮기기로 한다. 배가 조용해지자 낚시꾼들이 바빠진다. 다시 채비하기 위해서다. 자리를 옮긴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채비를 펼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풀치와 3지급 갈치 5~10마리를 잡은 꾼들이 눈에 띈다. 대구에서 왔다는 김종범 씨는 배에서 제공하는 냉동 꽁치 대신 잡은 풀치를 미끼로 썼다. 그는 “갈치는 같은 종족도 신경 쓰지 않고 달려들기 때문에 반짝거리는 풀치가 냉동 꽁치보다는 경쟁력이 있다”고 설명한다. 다시 박 선장의 마이크 소리가 울린다. “수심 70ｍ입니다. 바닥에서 10ｍ를 띄우세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곳곳에서 갈치를 낚아 올린다.■전원 ‘만쿨러’의 경이로운 기록

각자 정해진 자리에 앉은 꾼들이 채비를 던지고 어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갈치 낚시는 원줄에 목줄을 달고 보통 8개의 가지 줄에 미끼를 끼워 던져 넣는데 대부분 4, 5마리씩은 걸려 올라왔다. 간간이 낚싯줄이 옆 사람과 엉키기도 했지만 서로 말없이 낚싯줄을 풀어 다시 낚싯대를 드리우기 바쁘다. 풀치는 구경하기 힘들고 대부분 3지급에 더러 4지급까지 올라왔다. 쿨러를 다 채우고 얼음 마대에 갈치를 담은 꾼도 나오고 두 쿨러를 채운 사람도 보인다.

새벽 3시가 다가오자 박 선장이 흥분된 목소리로 마이크를 잡는다. “20명 참가자 중 16명이 만쿨(러)입니다. 수십 년 만에 일어날까 말까 하는 현상이에요. 오늘은 조기철수가 가능하겠네요.” 이 말이 들리자 낚시꾼들의 마음이 바빠졌다. 조금 뒤면 철수해야 하니 한 마리라도 더 잡기 위해. 부산 동구에서 여성 의류를 만든다는 오명준(48) 씨는 “풀치 두 마리에 3, 4지급 갈치 6마리 등 가지 줄 8개 모두 가득 갈치가 매달려 올라와 손맛이 끝내준다”고 즐거워했다.

만쿨러를 이룬 사람들이 하나둘 선실로 들어가고 일부 남아 있던 낚시꾼도 곧 쿨러를 가득 채웠다. 뱃머리를 돌려 하리항으로 이동한다. 좁은 선실에 오밀조밀하게 낚시꾼들이 누워 있다. 10시간을 쉬지도 않고 배에 서서 낚싯줄을 던져댔으니 체력이 고갈될 법도 하다. 놀라운 체력에 경이롭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도박보다 중독성이 강하다는 낚시에 빠진 이들이지만 오늘은 집에서 구박받지 않을 듯하다. 금갈치를 가득 실어서일까. 잠든 이들의 표정이 한없이 밝다.

■바다를 만만히 본 기자의 최후

쿨러를 채운 꾼들이 선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선상 낚시를 떠나기 전 낚시를 좋아하는 동래구 황순규 구보편집장에게 뭘 준비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몇 가지를 이야기해준 뒤 멀미약을 꼭 먹으라고 신신당부했다. 몇 년 전 여수까지 조그만 배를 타고 3시간가량 갈 때도 괜찮았다며 자신감을 내비치자 그는 그래도 일단 만약을 대비해 멀미약을 먹으란다. 늘 바다낚시를 하는 꾼은 적응이 돼 멀미를 하지 않는 사람이 많고 일부 뱃멀미를 하는 사람은 미리 멀미약을 먹는다고 한다. 약 15만 원의 출어 비용을 내고 낚시에 참가했다 멀미를 하면 낚시도 안 되고 몸도 축나니 멀미약을 잘 챙겨 먹는단다. 한 낚시꾼은 “고기가 잘 잡히면 집중하기 때문에 멀미 생각이 싹 달아난다”고 한다. 기자는 회사에서 곧장 이동하느라 멀미약을 복용하지 못했는데 막상 배가 출발해도 속이 편안해 한껏 여유를 부린다. 그러자 그는 “배가 이동할 때는 멀미하지 않다가 배가 멈추면 꿀렁거리는 파도에 속이 뒤집히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한다.

얕잡아 본 탓일까. 배가 멈추고 살짝 흔들리자 식은땀이 나면서 속이 더부룩해진다. 고물에 있는 화장실로 곧장 달려간다. 한 번 뱃멀미를 하면 속이 편해지면서 적응됐다고 착각하는데 이날은 저녁밥을 먹은 뒤, 새벽에 물을 마신 뒤 등 화장실과 4번 만나면서 몸속에 있는 영양분을 모두 화장실에 뺏기고 만다. 마지막 돌아오는 배에서도 신호가 오더니 헛구역질이 난다. 몸속에 남은 게 없었기 때문이리라. 차라리 이 상태가 편했다. 준비가 소홀한 데는 착각도 한몫했다. 하리항에서 남형제섬까지 1시간가량 가는 것만 생각하고 이동하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10시간 동안 배에서 파도에 흔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 그 결과는 처참했다. 배를 자주 타지 않았다면 멀미약은 필수라는 것을 명심하자.

글·사진=유정환 기자 defiant@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