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컵 우승이력 전혀 없는

- 스위스 미셸 지생 깜짝 우승

- 린지 본 실격·시프린 銀 그쳐

22일 강원도 정선 알파인스키 경기장. 세계적인 스타 린지 본(34)이 갑자기 슬로프를 이탈했다. 본의 금메달을 의심치 않던 미국 기자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아!’하는 짧은 탄성을 내질렀다. 본과 함께 우승을 다툴 것으로 예상됐던 미카엘라 시프린(23·미국)은 이미 2위로 내려앉은 상태였다. 결승선에서 본의 실격을 지켜보던 미셸 지생(스위스)은 1위가 확정되자 두 손을 번쩍 들고 환호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최대 이변이 일어났다. 국제스키연맹 월드컵 우승이 없는 ‘무명’의 지생이 이날 알파인 스키 여자 복합에서 1·2차 시기 합계 2분20초90으로 정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지생은 2014 소치올림픽 여자 활강 금메달리스트 도미니크 지생의 동생이다.

월드컵 통산 41승의 시프린은 2분21초87로 은메달에 그쳤다. 동메달은 2분22초34를 찍은 웬디 홀드네르(스위스)에게 돌아갔다. 

알파인 복합은 속도를 겨루는 활강과 잦은 기문을 통과해야 하는 회전을 한 차례씩 뛰어 합계 기록으로 순위를 정한다. 스키 기량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종목이다. 특히 이날은 월드컵 81승의 강자 본과 시프린이 ‘스키 여제’ 왕관을 놓고 맞대결을 예고한 상태여서 세계적인 이목이 집중됐다.

본은 오전에 열린 1차 시기 활강에서 1분39초37로 1위를 달렸다. 시프린은 1분41초35로 6위에 그쳤다. 지생은 1분40초14로 3위를 기록하며 조용히 이변을 예고했다. 스피드를 겨루는 활강은 본의 전공이다.

순위는 오후에 열린 기술 종목인 회전에서 급변했다. 시프린이 회전에서 40초52의 기록을 세우며 종합 1위로 올라섰다. 기쁨도 잠시. 40초76으로 회전 4위에 오른 지생이 합계 2분20초90으로 선두로 도약했다.

이제 최종 주자 본의 차례였다. 6·25전쟁 당시 할아버지가 복무했던 강원도에서 금메달 사냥에 나선 본은 초반에 슬로프를 내려오다가 갑자기 기문을 놓치며 실격 판정을 받았다. 자신의 마지막 동계올림픽을 허무하게 마무리한 것이다. 

알파인 스키 개인 종목 5개(활강·슈퍼대회전·회전·대회전·복합) 가운데 본과 시프린은 이날 복합에서 처음 맞대결을 벌였는데 결국 아무도 ‘여제 왕관’을 쓰지 못했다. 시프린은 대회전 금메달과 복합 은메달로 평창 여정을 마무리했다. 본은 활강 동메달에 그쳤다. 

  평창=배지열 기자 heat89@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