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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40> 바다 달팽이, 군소

바다 달팽이·토끼 별칭…제사상에도 오른 단짠쌉싸름 별미 해산물
최원준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 2024.06.11 19:05
- 얕은 수심 해조류 군락서 서식
- 독성 있는 내장 깨끗이 제거 뒤
- 숙회나 데쳐서 먹어…5~7월 제철
- 독특한 향과 쫄깃한 식감이 일품
- 해안가선 대소사에 챙기는 음식

영도에 살던 어린 시절, 사시사철 우리 또래의 놀이터는 바다였다. 특히 영선동 영선아파트에 살았던 터라 ‘이송도’ 앞바다는 우리의 안마당 같은 곳이었다. 지금은 ‘흰여울마을’ 아래 바다를 일컫는다. 하루 종일 천둥벌거숭이로 뛰어놀다가 배가 고프면 깡통에 고둥 담치 성게 따개비 등을 넣고 삶아 먹었다. 몇몇 수영 잘하는 친구들은 멍게나 해삼 등을 채취해 술추렴 하는 어른들에게 돈을 받고 팔기도 했다.
숙회가 내키지 않을 때 야채와 무쳐서 새콤달콤하게 즐기는 군소무침.
바다에서 온종일 멱을 감고 바윗돌 사이를 뒤집다 보면 다양한 갯것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중에 심심찮게 보이던 것 중 하나가 ‘군소’다. 당시 우리는 ‘군수’라고 불렀는데,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에 큰 달팽이처럼 생겼다. 얼핏 보면 머리에 뿔처럼 생긴 두 개의 더듬이를 가지고 있어 토끼를 닮기도 했다. 만지면 연체동물처럼 물컹거렸고 곧이어 몸에서 보랏빛 색소를 진하게 뿜어내곤 했다. 그 색감이 참으로 고와서, 맑은 바닷물에 은은하게 번져가는 군소의 색소를 한참 동안 지켜보기도 했다.

이웃 친구는 이 군소를 잡으면 잡는 족족 집으로 가져갔다. 이 친구 집에서 그의 어머니가 데쳐준 군소 숙회를 생전 처음 맛보았다. 쌉싸래한 맛과 약간의 비린내, 스펀지를 씹는 듯한 식감까지, 어린아이에게는 썩 내키지 않는 맛의 기억이었던 것 같다.

■위협 받으면 보라색 독소 뿜어

바닷속 군소. 국제신문 DB
군소는 분류학상 연체동물문 복족강 생물이다. 연체동물이며 헤엄을 치는 대신 바다 밑을 천천히 기어다니는 동물이라는 뜻이다. 주로 얕은 수심의 해조류 군락에 서식하면서 이 해조류를 먹이 삼아 살아간다. 몸의 색깔은 짙은 갈색이나 팥죽색을 띠고 있고, 하얀색 반점이 전체적으로 번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군소, 말군소, 검은테군소, 안경무늬군소, 큰안경무늬군소, 가시군소, 원뿔군소 등이 서식하고 있다는데 바닷사람들은 보랏빛 색소를 내뿜는 ‘군소’를 ‘참군소’로, 갈색을 띠는 ‘말군소’를 ‘개군소’로 부른다. 이 두 군소가 개체수도 많고 주로 채취하는 종류이다. 그중 ‘참군소’로 불리는 ‘군소’가 맛이 좋고 활용도도 높다.

군소는 외부로부터 위협을 받으면 독이 있는 보라색 색소를 내뿜는다. 이 색소에는 독이 있어 포식자들의 공격에 대응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식재료로 쓸 때도 이 색소를 잘 제거하고 조리해야 안전하다. 서양에서는 이 군소의 보라색 색소를 이용해 옷감을 염색하는 염료로 쓰기도 했다고.

‘자산어보’에서는 군소를 ‘굴명충(屈明蟲)’이라고 소개하면서 ‘형상은 알을 품은 닭과 같다. 고양이 귀와 같은 귀가 있다. 배 아래는 해삼의 발과 같아 헤엄을 칠 수가 없다. 색은 짙은 흑색이며 적색 무늬가 있다. 영남 사람들이 먹는다’고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이 군소를 지역에 따라 달리 불렀는데, 경상도에서는 ‘군수’, 전라도에서는 ‘굴멩이’, 제주에서는 바다의 돼지처럼 생겼다고 ‘물 도새기’라고 부른다. 영어로는 Sea hare, ‘바다의 산토끼’라는 뜻이다. 이는 군소의 머리에 있는 촉각과 후각을 느끼는 더듬이가 산토끼의 귀와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남해안 사람들은 ‘별주부전’의 토끼가 용왕에게 간을 내어주고 바다에 눌러앉았는데, 이 토끼가 군소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한다.

군소는 해조류가 군집한 바위에 노란색이나 주황색의 알을 낳는데, 생김새는 마치 라면 면발처럼 꼬불꼬불하다. 3~7월이 산란철로 한 번에 1억 개 이상의 알을 여러 차례에 걸쳐서 산란한다.
■숙회 무침 조림 산적으로 즐겨

시장에서 판매하는 군소. 데쳐서 먹기 좋게 썬 다음 회 초장이나 소금 기름장에 찍어 먹으면 좋다.
군소는 5~7월이 제철로 이 시기에 가장 맛이 좋다. 내장과 알 색소 등에 독이 있어 이를 깨끗하게 제거하고 여러 번 씻어서 삶거나 데치는 방법으로 식용한다. 군소는 그 크기가 20~40㎝에 이르기도 하는데, 데치면 달걀 크기 정도로 확 줄어든다. 몸의 90%를 차지하는 수분이 다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남해안 바닷가 사람들은 데치거나 삶은 군소를 다양한 음식으로 조리해 먹는다. 우선 가장 보편적인 음식은 ‘군소 숙회’. 군소를 먹기 좋게 썰어서 회 초장이나 소금 참기름장에 바로 찍어 먹는다. 독특한 향과 폭신한 식감, 약간 쓴 뒷맛 등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지만 한번 맛 들여놓으면 끊지 못할 정도로 중독성이 있다.

군소의 독특한 맛 때문에 군소 숙회가 내키지 않을 때는 제철 채소와 함께 회 초장으로 무쳐 먹을 수도 있다. ‘군소 무침’이다. 새콤달콤한 회 초장 맛과 채소의 아삭하고 싱그러운 향이 잘 어우러져 군소의 쓴맛을 중화시켜 준다. 오이 무 당근 등을 함께 썰어 넣고 새콤하게 ‘군소 초회’로 먹기도 한다.

오래 두고 먹고 싶으면 간장으로 졸여서 먹을 수도 있다. 데쳐놓은 군소 10여 마리를 반으로 갈라서 간장 물엿 참기름 후추 등으로 만든 조림장을 넣고 불에 졸여주면 된다. 이 군소 조림은 입맛 없을 때 밥반찬으로 제격이거니와 술안주로도 아주 좋다. 폭신폭신하면서도 쫄깃함이 살아있고, ‘단짠단짠’에 쌉싸름함 또한 더해지니 어른 입맛에 안성맞춤의 음식이다.

군소는 주로 남해안 사람들이 즐겨 먹는데, 경상도 지역에서는 산적으로도 조리한다. 데친 군소를 양념간장에 재웠다가 나무 꼬치에 꿰어 번철에 지져낸다. 군소 산적은 해안가 사람들에게는 아주 다양한 행사에 소용되던 음식이었다. 집안의 대소사에 빠져서는 안 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혼례 회갑 등의 잔치나 상제 등에도 요긴한 음식이었는데, 제사상에는 특히 소홀히 할 수 없는 제물 중 하나이기도 했다.

부산에는 기장 전역의 해안을 비롯해 영도 중리, 송도, 다대포 등의 해녀 촌이나 활어시장 등에서 해녀들이 바로 먹을 수 있게 데쳐놓은 군소를 팔고 있다. 그래서인지 부산 해녀 촌에는 즉석에서 군소를 쓱쓱 썰어놓고는 회 초장에 푹 찍어 소주 한 잔 곁들이는 사람을 심심찮게 볼 수가 있다.

이들은 푸른 바다를 보며 달콤쌉싸름한 ‘군소 숙회’를 먹는 즐거움이 예사롭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송도해수욕장 인근 해녀 집은 문어 한 마리를 통째 숙회로 주문하면 ‘군소 숙회 무침’ 한 접시를 서비스로 주기도 한단다.

남해안 해조류가 있는 어디에서나 흔히 보이던 연체동물 군소. 오래전부터 개체 수가 많고 흔했기에 다양한 음식으로 만들어 먹어온 서민 향토 식재료 중 하나이기도 했다. 지금은 그 개체 수가 줄고 즐겨 먹는 이들도 별로 없어, 해녀 촌에서나 먹는 별식으로 인식되고 있는 이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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