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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6> 대전칼국수와 기차역

철길 따라 전국 밀가루 운집…대전 칼국수 맛집 이유 있었네
최원준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 2023.01.17 19:12
- 부산 인천 대전 등 ‘면식의 도시’
- 일제강점기·한국전쟁 밀 유통지
- 제분공장 많아 밀가루 소비 급증

- 대전 칼국수 전문집만 600여 곳
- 2~3대 대물림 전통 가게 수두룩
- 향토음식 두부두루치기 등 조합
- 술안주나 한 끼 식사 손색없어

- 구포국수 밀면 시장칼국수 당면…
- 대전과 비슷한 여건 부산식 요리
- 칼국수 축제 벤치마킹도 좋을 듯

얼마 전 ‘한국음식문화포럼’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대전으로 가서 잠시 머물렀다. 사찰 음식의 또 다른 길을 열고 있는 대전시 서구 도마동 사찰 영선사의 법송 스님과 사찰 음식을 주제로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은 흔쾌한 자리였다.

세미나를 마친 뒤 대전의 대표 향토음식인 칼국수를 맛보기 위해 ‘대선칼국수’(서구 둔산동)를 찾았다. 1958년에 문을 연 대선칼국수는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칼국수 노포(老鋪)로 대전칼국수의 원조쯤 되는 집이다. 100여 평은 족히 될 법한 넓은 실내에서 수많은 손님이 칼국수를 즐기고 있었다. 시장 한쪽에 자리한 좁은 식당의 작은 나무 의자에 앉아 서둘러 먹고 가는 분위기인 부산의 시장 칼국숫집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그러고 보니 부산을 비롯해 ‘면식(麵食)의 도시’라고 자처하는 지역이 여러 곳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부산 대구·경북 인천 대전 지역이 그런 곳들이다. 이들 지역은 지역적 환경에 따라 제각각의 특징을 가진 면식이 긴 세월에 걸쳐 발달한 곳이다.
푸짐한 느낌의 대전칼국수 한 그릇. 해마다 ‘대전칼국수축제’가 열릴 만큼 대전 시민은 칼국수 사랑이 깊다.
■ ‘한국 면식’의 시작

부산은 일제강점기 구포 지역에 경부철도 구포역이 개설되면서 구포역 인근에 곡물하치장이 들어서게 되고 이에 따라 제분업과 제면업이 일찍이 발달했다. 이에 구포시장을 중심으로 국수 공장이 많이 들어서고 한국전쟁 시기 부산항으로 원조물자인 밀이 대량으로 들어오면서 ‘면식 대중화’의 길을 걷게 된다. 구포국수 밀면 시장칼국수 비빔당면 등이 유명하다.

인천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의 시기에 외국의 밀과 밀가루를 인천항으로 들여오면서 제분업이 발달하고 이에 따라 인천 차이나타운 형성되며 이북 이주민 유입도 잇따르면서 중국 면식, 이북 냉면 등이 다양하게 정착해 지금의 인천 면식 문화로 자리 잡는다.

대구·경북은 사대부 종가(宗家)를 중심으로 국수 문화가 오래전부터 발달해왔고 한국전쟁 이후로 풍국면 등 국수의 대량 생산·소비 지역으로 국수 문화를 선도해왔다. 지역 별로도 안동의 건진국시, 누름국시, 포항의 모리국수 등이 대구의 칼국수 문화와 함께 크게 발달했다.

■ 칼국수와 대전

대전에서 칼국수와 곧잘 곁들여 먹는다는 수육과 오징어 두부두루치기. 대전칼국수는 곁들임 음식이 아닌 ‘정찬’에 가깝다.
대전도 이러한 근현대사 흐름 속에 지금의 칼국수 문화가 정착하게 된다. 대전은 일제강점기부터 경부선과 호남선이 교차하는 철도 물류 중심지였다. 한국전쟁 뒤에는 구호물자로 받은 밀을 전국으로 유통하기 위한 보관소를 바로 대전역에 두었다. 게다가 1960~70년대에는 대규모 서해 간척사업에 동원된 수많은 노동자의 임금을 밀가루로 지급하면서, 대전은 한때 대표적인 밀가루 유통소비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대전에는 서민을 위한 면식이 발달하는 환경이 조성된다.

이렇게 밀가루를 중심으로 한 우리나라 분식 역사와 대중화 과정을 들여다보면 공교롭게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굵직한 역사적 사건과 맞닥뜨린다. 이후 산업화 시대의 ‘혼분식장려운동’과 ‘절미운동’ 등 사회 분위기가 ‘분식의 주식화’에 마지막 방점을 찍는다.

일제는 조선을 식민지화하면서 식량 증산 목적으로 돼지사육과 더불어 밀 재배와 밀가루 생산을 독려했다. 경부선 철도가 개설되면서 밀 유통이 원활해지자 전국 주요 철도역을 중심으로 제분공장이 들어서 제분업이 발달하게 되고 밀가루 면식과 소비 또한 늘어난다.
■ 대전 시민의 칼국수 사랑

한국전쟁 시기에는 외국에서 온 구호물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이 밀과 밀가루였다. 부산항과 인천항 등에 대규모로 밀과 밀가루를 하역했고 주변의 제분공장에서 밀가루를 생산했다. 그리고 대전 등 거점 철도역에는 밀가루 보관창고를 만들고 각 지방으로 유통했다. 이는 대전을 칼국수로 대표되는 면식이 일찍이 발달한 곳으로 만들어간다.

그래서일까. 대전만큼 칼국수를 즐기는 곳도 좀체 없을 것 같다. 우선 통계만 보아도 잘 나타난다. 2019년 ‘대전사회지표조사’에서 대전 시민에게 대전의 대표 음식을 물었더니 ‘칼국수’를 첫손에 꼽았다. 50~60년 역사와 전통이 있는 집이 다수인 데다, 2대~3대째 대물림하는 칼국숫집도 많다. 대전시 내에 칼국수 전문집만 해도 600여 개 된다. 칼국수를 파는 분식집을 합하면 1000여 개는 족히 된다는 것이다.

■ 이토록 다채로운 ‘변주’

칼국수 종류와 맛깔도 각양각색, 천차만별 다채롭다. 육수의 종류, 제면 방법과 면의 굵기, 칼국수에 들어가는 식재료 종류, 다양한 양념과 가지각색 고명…. 그렇게 분류해 보니 유명 칼국숫집의 칼국수 메뉴만 해도 얼추 20~30가지로 분류된다. 바지락칼국수, 닭칼국수, 어죽칼국수, 오징어칼국수, 물총칼국수, 팥칼국수, 콩칼국수, 옹심이칼국수, 기러기칼국수, 얼큰이칼국수, 비빔칼국수…. 대전의 유명한 칼국수 메뉴를 열거하다 보니 전국에서 인기를 끄는 유명한 칼국수 메뉴 대부분이 줄줄이 소환된다.

대전칼국수 한 그릇 받아들고 생각한다. 가만 보니 ‘대전칼국수’의 내력이 부산의 ‘부산돼지국밥’과 많이 닮았다. 둘 다 부산과 대전이라는 지역 이름을 달고 있지만 정형화되지 않았고, 팔도 여러 지역의 다양한 음식문화를 반영하지만, 대전·부산이라는 특정한 지역 이름 아래에 모여 총체화된 점도 비슷하다.

대전도 부산처럼 팔도 이주민이 모여 오늘의 대전을 만든 곳이다. 특히 철도 경부선과 호남선이 교차하는 교통요충지이자 충청도의 중심지이다 보니 경상 충청 호남의 모든 사람과 문화가 한데 모이던 곳이다. 그러다 보니 음식문화에서도 다양한 지역의 재료와 조리법이 총망라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칼국수 축제가 열리는 대전

부산의 시장칼국수.
이에 더해 칼국수와 곁들여 먹는 음식 또한 흥미롭다. 대전의 또 다른 향토음식인 ‘두부두루치기’를 비롯해 오징어두루치기, 수육과 족발, 주꾸미볶음 등을 칼국수에 곁들여 먹는데, 우선 곁들이 음식으로 술 한잔하고 속풀이용으로 칼국수를 말아 먹거나 얼큰하게 비벼 먹는다.

부산의 시장칼국수가 싼값에 잠시 끼니를 속이는 점심용 식사라고 한다면, 대전 칼국수는 술도 한잔하고 배도 채우는 정찬의 요리 같다. 마치 부산돼지국밥과 함께 고기나 내장 수육과 순대 등을 곁들여 술도 먹고 밥도 먹는 느낌이랄까?

전국을 잇는 교통중심지이자 밀가루가 풍부했던 대전에서, 팔도 사람들이 밀가루로 제 고향의 대표 면식을 펼쳐놓은 것이 대전칼국수다. 그만큼 대전칼국수는 여러 지역의 칼국수가 모여 다채로운 맛깔로 자리 잡았다는 특징을 지녔다. 그것도 ‘대전칼국수’라는 이름으로 사람들 입맛을 사로잡았다. 게다가 국내 유일한 칼국수 축제가 대전에서 개최되고 있으니 더 이상 설명은 불필요하다!

통계를 보면 부산에 돼지국밥집이 700여 개, 밀면집이 500여 개 정도 영업하고 있다고 한다. 1000여 개 칼국숫집이 있는 대전은 가히 ‘칼국수의 도시’라 해도 무방하겠다. 한때 부산 사람들의 끼니를 책임진 시장칼국수가 참고해봐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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