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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인간극장] <19> 삼베길쌈 - 이옥수 보유자

삼 재배부터 베짜기까지 1년 … 삼베 한 필엔 부녀자 고된 삶이 겹겹이
홍정민 PD hong1225@kookje.co.kr. 이우정 PD | 2022.05.31 19:35

  
- 봄에 파종한 삼 씨앗 7월 채취
- 수확 시기 되면 60명 회원 모여
- 삶은 뒤 껍질 벗겨 말리고 이어
- 10단계 긴 과정 거쳐 삼베 완성

- 찾는 이 줄고 값싼 중국산 유입
- 경제적 타격에도 전통보존 노력
- “코로나로 미뤄진 공개행사 예정
- 우리 제품 우수성 널리 알릴 것”

개구리가 깨어나는 경칩을 지나 춘분이 다가오면 경남 거창삼베길쌈 보존회 회원들은 삼 씨앗을 파종한다. 삼은 대마의 일종이라 보건소의 엄격한 관리·감독 하에 재배가 이뤄진다. 7월 초복에는 다 자란 삼을 채취해 삼베를 만든다. 길쌈이란 삼 같은 섬유 재료에서 뽑은 실을 가공해 삼베·모시·명주·무명 같은 피륙을 짜는 일련의 수공업을 일컫는다. 삼베길쌈은 과거부터 거창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옥수 보유자가 베틀을 이용해 삼베를 짜고 있다. 이우정PD
취재팀은 지난 18일 거창군 거창읍에서 삼베길쌈(경남 무형문화재 36호)보존회장 이옥수(88) 보유자를 만났다. 삼베길쌈 전수관에 다다르자 베틀에 끌신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린다. 삼베 제작은 삼잎 채취부터 베짜기까지 크게 10단계 과정으로 나뉜다. 삼이 어른 키만큼 자라면 잘라내 삼곶에 삶는다. “오후 다섯 시에 불을 때 자정까지 삶아요. 온종일 삶아낸 삼은 삼대(껍질)를 벗겨 볕이 들지 않는 그늘에 말립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삼이 점점 누렇게 변하는데 15~20일 정도 기다려야 완전히 마른다. 건조한 삼은 뭉치를 만들어 다시 물에 불린다.

이제 삼을 길게 이을 차례. “삼끝이라고 하는데 말린 삼의 끝과 끝을 이어 길게 늘어뜨리는 작업이에요. 그 전에 삼 끝을 삼톱으로 훑어내는 ‘삼톱기’를 합니다.” 넓적한 판자에 삼끝을 놓고 삼톱으로 쓱쓱 문지르자 삼끝이 말끔히 정리된다. 이 보유자는 말끔해진 삼을 손가락에 끼워 길게 늘어뜨린 다음 발에 걸어 엉킨 부분을 풀어줬다.

다양한 색으로 염색한 삼베(위)와 거창 삼베길쌈 교육관 앞에 피어있는 삼(아래). 이우정PD
이번에는 삼을 한 올씩 연결하는 ‘삼삼기’다. “앞니로 삼 끝을 훑어서 맨 무릎 위에 올려 삼을 이어줘요. 맨살에 문때야(비벼야) 잘 돼요. 입으로 훑다가 입술에 피가 나기도 하고 허벅지가 베이기도 하는데 자고 나면 또 괜찮아져. 상처 나고 또 새살이 나는 거지 뭐.”

삼삼기가 끝나면 물레에 돌려 여러 개의 실꾸리(실뭉치)를 만든다. “물레를 돌려 작은 꾸리를 만든 뒤 돌곶(큰 물레)에 돌려 큰 꾸러미로 만들어요. 삼 꾸러미를 모아 양잿물에 담금질을 합니다.” 덜 벗겨진 껍질을 떼어내고 탈색하는 과정이다. “양잿물에 담그면 흔히 아는 누런 빛이 나고 잿물을 쓰면 재색으로 만들어져요. 열매를 이용해서 좀 더 다양한 색을 내기도 합니다.”

담금질한 삼꾸러미를 말려 실처럼 뽑는 ‘실 나르기’로 이어진다. 다음은 도투마리(실을 감아 놓은 틀)에 실을 감는 ‘베매기’ 차례. 실이 부드러워지라고 보리겨로 만든 풀을 붓으로 발라준다.

길쌈하면 노동요가 빠질 수 없다. 베매기 하던 이 보유자가 회원들과 함께 경남 무형문화재 17호인 ‘삼베일소리’를 부른다. 이 보유자는 “삼베일소리는 삼밭매기 소리부터 베짜기 소리까지 삼베길쌈의 모든 과정마다 부르는 노래로 8가지 소리가 있어요. 과거 남자들이 바깥일을 나가면 부녀자들은 주로 길쌈을 하면서 삼베 옷을 지어 입었는데, 그래서인지 삼베일소리에는 고된 시집살이를 담은 내용도 나옵니다”라고 소개했다.

베매기 소리가 끝나가자 마지막 순서인 ‘베짜기’로 넘어간다. 베매기로 실을 감은 도투마리를 베틀에 올려 고정한다. “한 줄 한 줄 띄워서 베틀에 걸어요. 끌신을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베를 짭니다. 스무 자(약 6m) 정도 길이의 삼베 한 필을 만들어요. 이렇게 다 만드는 데까지 1년은 족히 걸립니다.”

삼국사기에 ‘신라 유리왕 때 추석 한 달 전부터 부녀자들이 편을 갈라 길쌈 대회를 열었다’는 기록이 있다. 삼베길쌈이 삼국시대 초기에도 성행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보유자는 “삼베는 거의 모든 사람이 입고 다녔어요. 비단옷은 엄두도 못 내는 평민들에게 널리 사랑받았습니다”라면서 “과거 시신을 매장(埋葬)할 때 흙 속에서 잘 썩는 삼베로 수의를 만들었어요”라고 설명했다.

삼베가 사랑받은 이유 중 하나는 삼이 지닌 효능 때문이다. “삼베옷은 통풍이 아주 잘 됩니다. 아토피 피부염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이 입으면 억수로 좋아요. 여름 내내 입어도 아무 탈이 없어요. 항균성도 월등해서 오염에 강합니다. 요즘에는 계량 한복이나 이불 원단으로도 많이 활용됩니다.”

현재 재래식 길쌈을 이어가는 지역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서구식 의생활이 정착하면서 삼베를 찾는 고객도 크게 줄었다. 중국산 삼베가 수입되면서 가격 경쟁력도 떨어졌다. “옛날에는 10개 정도 나간다 치면 지금은 1개 정도 팔리는 꼴이에요. 우리 전통 기법으로 만든 삼베 한 필이 50만 원이라면 중국산은 10만 원대에 팔립니다. 그래도 아직 거창 삼베를 찾는 분들이 있어 다행입니다. 경제적 어려움이 커도 길쌈 원형을 후배들에게 잘 전수하려고 합니다.”

현재 거창삼베길쌈 보존회는 회원 60여 명이 십시일반 힘을 모아 운영된다. “회원들은 모두 이웃이에요. 가족이나 다름없죠. 회원 중에 삼베 천을 만들어 파시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 과수원이나 농사를 지어서 생계를 이어갑니다. 삼 수확시기가 되면 다 같이 모여 삼베를 제작합니다.”

거창에 삼베길쌈 보존회가 생기게 된 건 삼베길쌈 전수관 관장인 박종섭(82) 계명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의 노력 덕분이었다. 박 교수는 전국을 돌며 사라져가는 전통문화를 연구하다가 거창 삼베길쌈 보존에 뛰어들었다.

“박 교수님이 거창에서 구전된 삼베일소리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덕분에 1995년 삼베일소리가 경남 무형문화재로 지정됐어요. 2011년에는 삼베길쌈 보존회도 만들었습니다. 2013년에 삼베길쌈도 경남 무형문화재로 지정됐습니다.”

거창에서 나고 자란 이 보유자에게 삼베길쌈은 인생 그 자체다. “어릴 때부터 삼베 일을 배우면서 컸어요. 시집와서도 계속했죠. 중간에 포기한다거나 그만둘 생각은 한 번도 안 했습니다. 전통을 잇는 마음으로 했으니까요. 요즘 보존회에 누가 새로 들어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그의 소망은 삼베의 대중화. “삼베 수요가 많이 늘고 애용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원이 없겠죠. 코로나19로 줄었던 길쌈 공개행사도 앞으로 자주 할 예정입니다. 많이들 찾아오셔서 우리 삼베의 우수성을 알아가셨으면 해요.”

※ 제작지원 B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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