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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인간극장] <17> 갓 - 정춘모 기능보유자

머리 위에 올린 선비의 자존심 … ‘K-모자’ 기품에 세계인 감탄
홍정민 PD hong1225@kookje.co.kr, 이우정 PD | 2022.05.17 19:30

  
- 조선시대 신분 나타내는 관모
- 장인은 하위관직 맞먹는 대우
- 단발령·신분제 폐지로 수요 ↓
- 산업화 시작되면서 자취 감춰

- 정 보유자 통영서 갓일 이어와
- 양태·총모·입자 세 가지 과정
- 반년이나 걸리는 인고의 작업
- 아내·아들과 분업으로 감내

- 사극으로 우수성 알려졌지만
- 플라스틱 사용 작품은 아쉬워

조선시대 선비들의 필수템 ‘갓’. 햇빛과 바람을 막는 용도로 사용되다 재료·형태·제작법이 다양해지면서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관모로 자리 잡았다. 양반들에게 갓은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이었던 셈. 갓은 전립(무관이 쓰던 모자)이나 패랭이(천인들이 쓰는 모자)처럼 종류가 다양하다. 양반들이 외출할 때 쓴 것은 검은 흑립이다. 지난 8일 취재팀은 경남 통영의 삼도수군통제영 12공방에서 갓일(국가무형문화재 4호) 정춘모(83) 기능보유자를 만났다.
갓일 작업 중인 도국희(왼쪽) 이수자와 정춘모 보유자. 이우정PD
“갓 만드는 과정을 ‘갓일’이라고 합니다. 여러 사람이 다 같이 만든다는 의미가 담겨있죠.” 정 보유자는 대나무로 만든 검은 갓을 보여주면서 갓일 과정을 전했다. “조선시대 장인들은 하위 관직에 버금가는 기술자 대우를 받았어요. 선비들의 필수품인데 제작이 매우 까다로워 아무나 못 만들기 때문이죠. 그 당시 조정에서는 통영 갓을 대량으로 사들일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았습니다.”

갓일은 ▷총모자( 머리에 쓰는 원통 부분)를 만드는 총모자일 ▷양태(갓의 챙 부분)를 만드는 양태일 ▷양태와 총모자를 결합하는 입자일로 나뉜다. “총모자장·양태장·입자장이 3가지 과정을 나눠 맡습니다. 장인의 숙련도에 따라 작업 시간과 품질이 천차만별입니다. 보통 갓 하나 만드는데 반 년 이상 인고의 시간이 필요해요.”

정춘모 보유자가 만든 흑립(黑笠).
정 보유자의 아내인 도국희(67) 씨도 양태장 이수자다. 남편 일을 돕다가 양태일을 배웠다. 그가 갓의 챙 만드는 과정을 선보였다. 먼저 홀가죽을 오른쪽 무릎에 끼고 물에 삶은 대나무 피죽을 무릎에 올린다. “피죽을 홀가죽에 대고 대칼(대나무 칼)로 긁으면서 당겨요. 피죽을 종이처럼 얇게 만드는 거죠.” 이어 두 뼘 정도의 칼로 피죽의 끝부분에 금을 내더니 설주판을 다리 사이에 끼우고 피죽을 문지른다. “얇은 피죽을 실처럼 가늘게 뽑아내야 합니다. 칼로 금을 낸 피죽을 설주판에 대고 문지르면서 머리카락처럼 가는 죽사(竹絲)를 만드는 거죠. 죽사는 서로 꼬이지 않게 한 가닥 한 가닥 빗으며 정리해야 합니다.” 바농대(끝이 고리처럼 휘어진 바늘)와 머럭(대나무 바늘)을 이용해 죽사를 대각선으로 엮는다. “죽사를 엮는 과정이 끝나면 먹칠을 한 다음 둥근 틀 위에다 올려 인두로 지져요. 양태에 완만한 곡선을 만드는 과정인데 ‘트집 잡기’라고 합니다. 트집 잡기가 끝나면 양태에 명주 천을 씌우고 인두로 지져 고정한 뒤 다시 먹칠을 합니다. 매우 미세한 과정이라 눈도 아프고 손도 떨릴 정도로 고됩니다. 갓일 중에 제일 어려운 게 양태일이에요.”

정 보유자의 아들 정한수(43) 전승교육사는 총모자일을 보여줬다. 먼저 둥근 원통 틀에 죽사를 이어 붙여 모양을 잡았다. 한 올씩 일일이 붙여줘야 해서 난도가 높다. 다음은 갓 뚜껑을 덮는 작업. 천을 올리고 그 위에 네쪽무늬(총모자의 맨 위에 올라가는 4개의 천 조각)를 붙인 다음 먹칠을 한다. 마지막으로 네쪽무늬를 붙인 모서리에 못태(대죽을 굵게 자른 것)를 이어 붙인 뒤 먹칠하면 총모자일이 끝난다.

이제 총모자와 양태를 결합하는 입자일 차례. 정 보유자는 아내와 아들이 만든 양태와 총모자를 겹쳐서 하나로 합친다. “양태 구멍에 총모자를 넣는데 다 넣지 않고 갓끈 구멍을 뚫을  부분을 남겨놔요. 어느 정도 위치를 맞추면 인두로 고정을 해줍니다. 갓끈을 넣을 구멍을 양쪽에 뚫고 마지막으로 끈을 달면 드디어 갓이 완성됩니다.”

갓이 사용되기 시작한 건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에서 갓이 쓰이기 시작한 시기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7세기 고구려 ‘감신총 벽화’에 보면 갓을 쓰고 사냥하는 장면을 볼 수 있어요. 삼국유사에 ‘신라 원성왕이 꿈에 복두(頭·각이 지고 위가 평평한 관모)를 벗고 소립(素笠·흰 빛깔의 갓)을 썼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공민왕이 갓 착용에 대한 법과 제도를 정비하면서 거의 모든 양인이 쓰기 시작했죠.”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갓은 그 종류가 훨씬 다양해졌다. 정 보유자는 “갓 중에서도 최고라 하는 진사립은 만드는 데만 1년이 걸려요. 갓에 명주실을 촘촘히 덧대는 게 특징인데 주로 왕과 고위층이 애용했죠. 이 밖에도 베와 모시로 감싼 포립, 육품 이상의 관리만 사용한 음양립(양태에 실을 감싼 것) 등 신분과 직위에 따라 다양합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조선 후기 단발령과 신분제 폐지로 갓의 수요는 점차 줄어들었다. 이후 한국전쟁을 거쳐 산업화가 시작되자 갓은 점점 자취를 감추게 된다. “우여곡절이 참 많은 게 갓입니다. 필수품으로 사용되다 일제 강점기에 단발령을 명목으로 상투를 다 잘라버리니 갓 수요가 줄었죠. 산업화 이후에는 갓의 필요성이 없어지니까 자연스럽게 도태됐습니다.”

그가 갓일을 해온 과정도 쉽지만은 않았다. “제가 경북 예천에 살다가 대구에서 일을 했어요. 대구 도매상 가운데 통영에서 갓일 하셨던 장인 대여섯 분이 계셨어요. 당시 그 장인분들이 은퇴할 나이가 다 되어 가는데 나 말고는 배우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나 혼자 총모자일·양태일·입자일을 모두 배웠어요. 반 년 넘게 걸리는 일을 혼자 하려니 정말 고통스러웠어요. 그러다 아내에게 조금씩 도움을 받았죠. 내 옆에서 일을 돕던 아내가 지금은 양태장 이수자가 됐습니다.”

정 보유자는 “통영에 와서 이 일을 할 때 정말 괴로운 시간들이었지만 부인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면서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어 “아들도 제 옆에서 일을 돕더니 지금은 전승교육사가 됐다”고 덧붙였다. 온 가족이 갓일을 위해 인생을 바친 셈이다. 

생활필수품에서 문화재처럼 변해버린 갓은 현대사회에서 어떤 의미가 되었을까. “이제 갓을 찾는 사람도 거의 없고 전통 예능인 몇 분만이 갓을 찾고 있어요. 실제 갓은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데 드라마나 사극에서는 3~4만 원짜리 플라스틱 갓을 쓰기 때문에 수요가 없죠.문화재청이나 지자체에서 일부 지원을 해주지만 생계를 이어나가기 곤란한 순간이 꽤 있었습니다.”

정 보유자는 “다만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 같은 사극을 통해 세계에 갓이 알려지게 돼 기뻐요. 현대에 와서 갓은 우리 문화의 고유함과 우수성을 알리는 수단이 된 것 같아요”라며 현대사회에서 갓이 가지는 의미를 강조했다. “재작년에는 ‘예올’이라는 문화재청 산하 법인과 갓을 활용한 전등을 만들기도 했어요. 현대인들을 위한 새로운 시도였죠. 올해는 제작하지 않지만 앞으로도 갓을 활용한 다양한 시도를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홀로 갓일의 모든 과정을 감내해 온 정 보유자, 그에게 갓은 어떤 의미일까. “처음 갓일을 이어 온 과정은 힘든 시간이었지만 도망칠 생각은 없었습니다. 갓일을 잇자는 마음 하나로 지금까지 온 제 자신과 우리 가족에게 고마운 마음입니다. 앞으로도 우리 문화의 우수한 가치를 알리는데 갓일 보유자로서 역할을 다 하고 싶습니다.”

※ 제작지원 B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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