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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음식 사람] <57> 경남 옛 쇠전 소고기국밥 (상)

소시장 낀 장터에 꼭 있는 국밥 … 개운칼칼한 국물엔 찬도 필요없네
최원준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 2022.05.10 19:43
- 장 크게 섰던 함안 의령 삼가
- 큰 장에는 반드시 ‘쇠전’ 형성
- 쇠전서 나온 양질의 소고기에
- 무 콩나물 파 등 넣고 끓인 국밥
- 얼큰 시원 깔끔하면서 진한 맛
- 경상도식 소고기 국밥의 전형

봄날 장터에는 모든 생명이 푸릇푸릇하다. 싱그럽고 활기차다. 이런 장날이면 인근 마을 사람은 거의 다 장에 모인다.
경남 함안 소고기국밥. 콩나물과 무 등을 넣어 끓인 후 매운 양념을 입혀 국밥으로 말아낸다.
구경거리가 변변하지 않았던 시기에는 장날이 곧 축제날이었다. 온갖 물건을 다 구경하고 필요한 생필품도 한 손 가득이다. 이참에 반가운 사람과도 만나 서로 안부를 묻는다. 그러다 배가 출출해지면 주막에서 장터국밥에 막걸리 한 잔 넉넉하게 걸치는 것이다. 따뜻한 봄날, 장터 주막에서 한 잔 술에 기분은 도도해지고 불콰한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예부터 ‘장날에는 장터국밥’이란 말이 있다. 5일마다 장이 서기에 장날만큼은 꼭 장을 봐야 하고, 장에 간 김에 ‘장터국밥’ 한 그릇으로 나름 외식을 하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장터국밥은 ‘장날, 장터에서 먹어야 제 맛’이라는 것이다.

장이 서면 장터에 천막을 치고 큰 가마솥을 걸고 국밥을 끓여내는데, 그 구수하고 얼큰한 고깃국 냄새에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요령이다. 그중에서도 쇠전(우시장)이 크게 열리는 장터에는 소고기 사태나 양지, 소머리와 사골 부위 등으로 푹 끓여내는 ‘소고기 국밥’이나 ‘소머리 국밥’이 일품이다.

봄볕 화창한 날, 자주 보는 술친구 셋이서 장터국밥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 마음이 동했다. 이 봄날, 가마솥에서 슬슬 끓는 장터국밥에 막걸리 한 잔 마시러 가자는 것이다. 부산의 서부, 일명 서부 경남의 유명한 장터국밥, 그 중에서도 심심찮게 들렀던 ‘내공 있는 소고기국밥 노포(老鋪·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를 찾아가기로 했다.

함안의 옛 함안장터에 있는 ‘한우 국밥촌’, 의령장 뒤편의 ‘소고기 국밥 골목’, 합천 삼가장의 ‘삼가 한우거리’ 등이 그곳이다. 한때 모두 큰 쇠전이 열리던 장터의 오래된 소고기 국밥 집들이다.

예부터 함안 의령 삼가는 경남에서 가장 큰 장시(場市)를 형성했던 지역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경남의 중앙에 위치해 동부 경남과 서부 경남의 교통요충지이자, 동서 물류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큰 장시에는 당연히 큰 쇠전이 선다. 이곳 지역 역시 큰 쇠전으로 유명했다.
경남 함안의 옛 함안장터에 있는 ‘한우 국밥촌’. 소고기 사태나 양지, 소머리와 사골 부위 등으로 푹 끓여내는 한우 국밥이 일품이다.
큰 쇠전이 있던 지역은 신선한 소고기로 끓여내는 맛있는 국밥으로 유명했는데, 전국적으로 경기도 안성, 충청도 공주, 전라도 나주, 경상도 영천과 함께 함안이 대표적이라 하겠다. 영천은 소머리로 국을 내기에 ‘소고기 국밥’으로는 함안이 그 대표격이라 할 수 있겠다.

부산에서 1시간도 채 되기 전 함안에 도착한다. 함안은 경남의 중앙에 위치하면서 경남의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사통팔달의 교통 중심지였다. 수 많은 사람이 함안을 거쳐 가며 출출한 속을 채웠는데 그 대표적인 음식이 소고기국밥이다.

함안 쇠전을 통해 공급받은 양질의 소고기와 무 콩나물 파 등 채소를 넉넉히 넣고 고춧가루로 벌겋게 끓여내는 함안 소고기 국밥은, 국물이 얼큰하면서도 시원하고 진하면서도 깔끔한 맛이 특징이다. ‘경상도식 소고기 국밥’의 전형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함안면사무소 뒤편 옛 함안장터에는 ‘한우국밥촌’이란 이름으로 ‘대구식당’ ‘한성식당’ ‘시장 한우국밥’ 등 소고기 국밥 전문식당 세 곳이 영업하고 있다. 그 중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소고기 국밥 집은 대구식당. 60여 년째 영업 중인 곳이다.

대구식당 사장이 국밥을 토렴하고 있다.
대구에서 시집을 온 여인이 장터 근처, 살고 있던 집 한쪽을 빌려 국밥을 말아 팔았던 것이 시작이다. 고향 대구를 식당 이름으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옥을 개조해 만든 식당 안으로 들어서면 입구에 큰 가마솥이 걸려있고, 솥 안에는 벌건 소고기국이 슬슬 끓고 있다.

가마솥 앞에서 주인장이 국밥 토렴하랴, 수육 썰어내랴 무척 분주하게 몸을 움직인다. 어릴 적 기억하고 있던 장터국밥 집 풍경 그대로이다. 이곳 소고기 국밥은 사태와 양지 홍두깨살 갈빗살 등을 푹 곤 육수에 콩나물 무 등을 넣어 끓인 후 다시 매운 양념을 해서 국밥으로 말아낸다.

오로지 소고기로만 국을 끓여내기에 메뉴 이름조차도 그냥 ‘국밥’이다. 당연히 소고기로 끓여내는데 새삼스레 소 국밥이니 소고기 국밥이니 요란스레 얘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냥 ‘장터국밥’이라는 것이다.

이곳은 특이하게도 세 가지 형식으로 국밥을 제공한다. 밥으로 말아낸 일반 ‘국밥’과 국수를 넣어 말아낸 ‘국수’, 밥과 국수를 함께 말아서 내오는 ‘짬뽕’이 그것이다. 손님의 취향에 따라 선택해서 먹으라는 배려가 돋보인다. 모두 뜨끈하게 토렴하여 상에 올린다.

방안으로 들어가니 좌석에 따라 우리 전통 소반(小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마치 옛 장터 주막에서나 봄 직한 소반이다. 세월의 더께가 묻은 소반 위로 소고기 국밥이 오르는데 꽤 그럴싸하다. 국밥 위에 화룡점정처럼 후춧가루가 솔솔 뿌려져 있다.

반찬은 단출하다. 김치와 고추 양파 그리고 찍어 먹을 된장이 전부다. 늘 봐왔던 경남 소고기 국밥의 기본 찬이다. 그래, 맛있는 장터국밥에 반찬이 무에 대수인가. 온전한 국밥 한 그릇이면 그것으로 오롯한 것을.

국물 한 숟가락 뜬다. 조선간장으로 간을 했는지 개운하면서도 맛이 진하고 깊다. 칼칼한 뒤끝도 좋다. 얼큰하니 속이 확 풀린다. 두툼한 고기 한 점 집어 먹는다. 오래 삶아서인지 부드럽고 연하다. 결따라 씹히는 식감도 좋다. 가끔 씹히는 지방 부위는 고소하기 이를 데 없다. 참 흔쾌하다.

국밥을 휘휘 저어 한 술 떠먹는다. 아삭한 콩나물이 씹히고 야들야들한 고기가 뒤이어 씹힌다. 국물이 잘 밴 밥알이 혀 안에서 감돌고, 진하고 매콤한 국물은 이들을 감싸 안고 잘 어우러진다. 한 술 두 술 허벅허벅 정신없이 떠먹는다.

김치 한 점 맛을 보니 갓 담근 아삭아삭한 싱싱함이 괜찮다. 국밥 한 술에 한 점 얹어 먹으니 구수한 국밥에 파릇한 배추 맛이 곁들여져 잘 어울린다. 과연 국밥에는 맛있는 김치가 제짝이다.

이러구러 국밥에 코를 박고 먹다 보니 바닥이 서서히 보인다. 콧등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히고, 청양고추 몇 개 먹은 입술은 얼얼하다. 국밥 한 그릇 뚝딱하고 부른 배를 두드리고 있자니, 어린 시절 집안 어른과 함께 장터국밥을 먹던 추억이 새록새록 하다.

다시 국도를 따라 의령장으로 길을 향한다. 구불구불 국도가 이리 돌고 저리 돌며 길을 낸다. 살랑살랑 바람 좋은 봄날, 술친구들과 장터국밥 먹으러 가는 길. 이 길이 참으로 기껍고도 기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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