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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 BIFF 지키기에 헌신한 월드스타

故강수연과 BIFF의 인연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정인덕 기자 | 2022.05.08 20:07
- 첫 영화제부터 심사위원 맡아
- 2015~2017년엔 집행위원장
- 여전사 면모 과시하며 맹활약

- 김동호 이사장 “정상화 힘쓴 분”
- 국내 영화계 애도 물결 이어져

1996년 8월 29일 부산국제영화제조직위원회(위원장 문정수 당시 부산시장)가 주최한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설명회’가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렸다. 한국 영화계를 움직이던 거물급 영화인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 당시 30세이던 한국 대표 영화배우 강수연 씨도 초청돼, 그해 9월 13~21일 열릴 예정이던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성공을 기원했다.
지난 7일 별세한 영화배우 강수연 씨의 빈소가 8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故 강수연 배우 장례위원회 제공
그날 이후 배우 강수연의 삶은 BIFF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지난 7일 급작스럽게 타계한 배우 강수연은 BIFF와 한 약속을 지켰다. 그는 BIFF를 위해 여전사처럼 뛰었고, 여걸의 면모를 보였으며, BIFF의 안방마님이라는 호칭을 부산 시민에게서 받았다. BIFF를 낳고 기른 주역이자 ‘전설’로 꼽히는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전 BIFF 이사장)은 국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렇게 애도했다. “안타깝다. 고인은 BIFF 출범 때부터 단골 사회자, 심사위원으로 매회 참석해 페스티벌 레이디 역할을 했다. BIFF 집행위원장직을 수행하며 BIFF를 끝내 정상화하는 데 공로가 뚜렷한 분이다.”

이날 빈소를 찾은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이 소회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제1회 BIFF 때 심사위원은 국내외 14인이었다. 이들은 BIFF 역사상 최초 심사위원이다. 고인은 그 14인 가운데 한 명으로, 와이드앵글 부문 심사위원이었다. 그는 그 뒤 줄곧 ‘BIFF 사람’으로 살았다. 해마다 나오는 ‘올해의 BIFF’ 보도에 ‘강수연’이라는 이름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형태도 다양하다. 제1회 BIFF 개최 직전의 1996년 9월 6일 열린 축하 음악회에 초대된 그는 ‘영화인들이 말하는 부산국제영화제’ 코너에 나와 “국제적인 명성을 드높일 영화제가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첫발을 내딛게 돼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같은 해 7월 24일 열린 부산 상공인 초청 디너파티는 제1회 BIFF를 위한 모금 행사 성격이었는데, ‘한국 원조 월드 스타’인 강수연은 당연한 듯 참석했다. 1999년 제4회 때 ‘한국영화친선대사’, 2000년 제5회 때 BIFF에서 가장 중요한 상으로 꼽히는 뉴커런츠상 심사위원을 맡았다. 이런 사례는 숱하게 많은 기록으로 남아 있다. “BIFF 조직위에 ‘영화제와 가장 인연이 깊은 배우를 소개해달라’고 했더니 스스럼없이 강수연 씨와 안성기 씨를 꼽더군요.”(국제신문 2007년 9월 15일 자 ‘BIFF를 사랑한 배우 강수연’ 인터뷰 중 기자가 한 질문의 일부)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열리는 한국 최초의 국제영화제’를 기치로 BIFF가 창설 노력을 할 때, 서울을 비롯한 한국 영화계에는 ‘그게 되겠어?’라며 비관하거나 냉소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런 때 강수연은 ‘그게 뭔 소리냐’는 듯 온몸을 던졌다. 영화 ‘씨받이’로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1986),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1989)을 거머쥐면서 한국 영화·대중문화 역사상 최초 ‘월드 스타’로 등극한 배우 강수연의 헌신은 BIFF의 초고속 성장에 크나큰 도움을 줬다.

강수연은 BIFF를 둘러싼 ‘다이빙벨 사태’와 그에 이은 영화제 자율성 논란이 터졌을 때, 또 한 번 몸을 아끼지 않고 구원투수로 등판해 2015~2017년 BIFF 공동집행위원장으로 활약했다. 여걸·여전사에 이어 안방마님 역할까지 기꺼이 떠맡았다. 그즈음 그가 남긴 어록이 저 유명한 “우리(BIFF)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영화 ‘베테랑’ 대사)”다(국제신문 2015년 9월 31일 자 이용관·강수연 직격 인터뷰 등). 강수연 당시 집행위원장의 이 말은 유명도로 따지면, BIFF 역사상 가장 크게 ‘히트 친’ 어록일 것이다.

허문영 BIFF 집행위원장은 “어마어마한 친화력을 가졌던 분이다. 굉장히 헌신적이었던 분이다. BIFF가 흔들리고 있을 때 든든한 좌장이자 집주인 활약을 해주신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고 회고했다. 김호일 전 한국영화기자협회장은 “BIFF의 개국 공신이며 큰 주춧돌을 놓았다”고 고인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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