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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인간극장] <14> 진주검무 - 유영희 예능보유자

칼 든 무희들의 ‘칼군무’…천년이 지나도 그 절도와 위엄 그대로
홍정민 PD hong1225@kookje.co.kr, 이우정 PD | 2022.04.26 20:27

  
- 신라시대 화랑 황창랑의 검무서 유래
- 조선 때 궁중무 … 지방 관아까지 퍼져
- 진주교방 원형보존 가장 잘 됐단 평가
- 일제강점기 탄압받다 광복후 재명성

- 유 씨, 보존회 이사장 맡아 명맥 잇기
- 기생춤 편견 맞서 사비로 무료강의도
- 그 열정 덕에 방과후 교과 채택 결실

칼춤 시를 지어 미인에게 주다는 뜻의 ‘무검편증미인(舞劍篇贈美人)’은 242년 전 다산 정약용이 지은 시다. 1780년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인 장인을 만나러 간 19살 다산은 촉석루에서 펼쳐진 진주검무를 보고 한눈에 반해 붓을 든다.
지난 2일 국립부산국악원 토요신명 무대에 오른 진주검무. 이우정PD
‘하늘을 나는 선녀처럼 살짝 내려 앉으니(翩然下坐若飛仙) 발 밑에 번쩍번쩍 가을 연꽃 피어난다(脚底閃閃生秋蓮) 진주성 성안 여인 꽃 같은 그 얼굴에(矗城女兒顔如花) 군복으로 단장하니 영락없는 남자 모습(裝束戎裝作男子). 남색 치마에 옥색 저고리를 입고 전복(조끼 형태의 긴 옷)을 걸친 기녀들의 복장과 춤사위가 시조 한 편에 고스란히 담겼다.

■ 천년 원형 보존된 진주검무

검무를 선보이는 유영희 진주검무 예능보유자. 이우정PD
진주검무는 지금까지 원형이 잘 보존된 궁중무로 꼽힌다. 기원은 천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시대 발간된 ‘동경잡기’에 따르면 신라 화랑 황창랑은 백제왕 앞에서 칼춤을 선보이다 백제왕을 척살하고 그 자리에 붙잡혀 사살됐다.

“신라 사람들은 황창랑의 충절을 기려 그의 얼굴을 본 뜬 탈을 쓴 채 검무를 췄어요. 진주검무의 탄생입니다. 일각에선 황창랑을 화랑 관창으로 보는 의견도 있지요.” 유영희(75) 진주검무(국가무형유산 제 12호) 예능보유자의 설명이다. 조선시대 화백 신윤복의 ‘쌍검대무’에도 기녀들이 양반들 앞에서 검무를 선보이는 장면이 담겨 있다.

검무는 조선시대 궁중무로 자리 잡으면서 지방 관아로 퍼진다. 그 중 원형 보존이 가장 잘 이뤄졌다고 평가 받은 것이 진주검무다. 유 보유자는 “조선 후기 진주에 예술종합학교라고 할 수 있는 교방청(敎坊·기녀들에게 춤과 음악을 가르치는 관청)이 있었던 영향이 크다”면서 “교방 기녀는 관기(官妓)였다. 정절을 파는 기생이 아니라 춤과 음악을 배우는 예능인에 가까웠다”고 설명했다.

진주 기녀들은 8살부터 교방청에서 숙식하며 궁중무용과 음악을 배워 예인(藝人)의 길로 들어섰다. 기녀들이 중심이 되면서 검무의 형식도 변화했다. 고려시대까지 썼던 무거운 탈을 벗고 대신 작은 전립(무관이 쓰던 모자)을 썼다. 백제왕의 죽음을 의미하는 칼은 목이 꺾인 칼(손잡이와 날 사이가 일직선이 아니라 휘어진 칼)로 바뀐다. 조선 임금에게 해를 가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진주검무는 일제강점기에 위기를 맞았다. 전국의 교방청이 해산되고 권번(일본인이 감독하는 기생조합)이 생기면서 기녀들의 궁중 예능 공연은 금지됐다. 당시 진주 교방청에서 중앙의 권번으로 차출된 최순이 선생은 진주로 귀향해 일제의 통제에도 굴하지 않고 궁중예술을 기녀들에게 전수한다. 간신히 명맥을 잇던 진주검무는 광복과 함께 명성을 되찾는다. 최 선생의 활약으로 8명의 이수자가 임명됐다. 1기 전수생인 성계옥 선생이 바로 유 보유자의 스승이다. 1967년에는 문화재청이 진주검무의 독창성과 고유성을 인정해 국가 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 진주 초등학생들에게 전수

진주검무 유영희 예능보유자
취재진은 지난 7일 진주 전통예술회관 임시 건물에서 유 보유자가 직접 선보인 진주검무를 볼 수 있었다. 전립과 색동한삼(손목에 착용하는 오색의 긴 소매)을 착용한 그는 긴 염불장단에 맞춰 큰 바위가 움직이듯 천천히 검무를 펼쳤다. 타령장단이 시작되자 색동한삼을 일자로 펼치며 느긋하게 몸을 움직였다. 결삼(한삼을 벗음)과 낙삼(한삼을 내려 놓음)에 이어 본격적인 검무. 처음부터 칼을 보여주지 않는 것은 왕을 비롯한 관중에게 이 검은 해치는 용도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타령 박자가 빨라지자 유 보유자가 양손에 든 칼이 경쾌하게 움직인다. 손목을 한 바퀴 돌려 칼등을 어깨에 툭 부딪히는 간단한 동작을 하는데도 칼의 위치와 손의 움직임이 눈으로 따라가기 힘들 만큼 빠르고 절도 있다. 유 보유자는 부처와 같은 엷은 미소를 내내 유지했다. 궁중무의 특성 상 교태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 없는 탓이다.

유 보유자는 원래 현대무용을 전공했다. “키가 작으니 현대무용보다 전통무용으로 전향하는 게 어떠냐”는 지도교수의 권유로 전공을 바꿨다. 현재 진주검무는 100여 명의 이수자와 200여 명의 전승자가 있다. 전승 과정은 꽤 엄격하다. 일단 ‘진주검무 보존회’에 가입해야 정식으로 검무를 배울 수 있다. 2년간 춤사위와 장구·전통음악까지 배우면 전수자로 임명된다. 5년이 지나면 이수 심사를 받을 자격이 주어진다. 전승교육사(전수조교)로 임명돼야 검무 교육을 할 수 있다. “백 사람이 칼춤 배워도 겨우 하나 성공할 뿐”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지난한 과정이다.

현재 진주검무 보존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유 보유자는 요즘도 기녀에 대한 편견과 싸운다. 2006년 유 보유자는 “검무를 방과 후 활동 과목으로 채택해달라”고 진주의 중·고등학교에 요청했다. 그러자 학부모들이 “기생 춤을 왜 가르치느냐”며 반대했다. “난리도 아니었어요. 우리 전통문화를 한낱 잡기로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았습니다.” 유 보유자는 물러서지 않았다.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무보수로 가르치겠다”고 설득했다. 마침내 진주 봉곡초등학교에서 15명에게 춤을 가르쳤다. 한 쌍에 9만 원 하던 칼도 유 보유자가 사비를 들여 구입했다. 초등학생 제자들을 그 해 진주유등축제 무대에 올렸다. 아이들의 공연을 본 학부모와 교사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결국 진주시와 교육청은 방과 후 교과목으로 검무를 채택했다.

일흔을 넘긴 유 보유자는 아직도 열정이 넘친다. 해보고 싶은 일이 많다. “검무와 같은 궁중무는 늘어지는 듯한 느린 전개가 매력입니다. 다만 시대에 맞게 변화는 시도하고 있어요. 예전에 트로트에 맞춘 ‘퓨전 검무’를 선보인 적이 있는데 관객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다음번엔 검무와 태권도를 결합한 공연을 선보이고 싶어요. 태권도의 절도 있는 동작과 화려한 기술이 검무와 잘 어울립니다. 전통이 융합된 무대를 하고 싶은데 아직 여건이 어려워 안타까워요. 검무가 남녀노소 모두 즐기는 예술로 거듭나도록 힘을 보태는 게 마지막 소임입니다.”

검무 대중화의 걸림돌 중 하나는 ‘생계’다. 의상과 소품비용에 100만 원이 넘어가는데 검무 예능인들의 수입은 많지 않다. 유 보유자는 “그럼에도 우리가 전통을 잘 보존해야 이어갈 수 있지 않겠나. 청소년들도 우리 전통을 지루하다고만 생각지 말고 사랑하고 아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진주검무의 도시 진주가 유네스코 민속예술 창의도시로 등재되면 더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 제작지원 B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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