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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분열·대립의 시대 투영된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

조재휘 영화평론가 | 2022.01.26 19:43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2021)의 줄거리는 원작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61)를 답습한다. 폴란드계 백인 조직인 제트파와 푸에르토리코인 조직인 샤크파가 대립하는 가운데, 과거 제트파의 리더였지만 폭력배의 삶에서 손을 씻은 토니는 샤크파의 두목 베르나르도의 여동생 마리아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두 조직의 대립은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달아가고 마리아는 토니와 같이 도시를 떠나기로 약속하지만, 토니는 베르나르도의 친구 치노의 총을 맞고 쓰러진다. 마리아는 죽은 토니의 시신을 안은 채 오열하고 두 조직은 서로의 잘못을 뉘우치고 토니의 시신을 운구한다.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스틸 컷.
‘1941’(1979)의 댄스홀이나 ‘인디아나 존스와 미궁의 사원’(1984)의 오프닝 시퀀스를 떠올려보면 뮤지컬에 대한 스필버그의 관심이 일찍부터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멸의 명성을 얻은 이 방면의 클래식을 리메이크하기로 한 건 실로 대담한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원작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는데다가,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 스토리는 오늘날 관객이 보기엔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순진한 감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고전의 재창조에 임하는 스필버그의 태도는 마치 ‘쥬라기 공원‘(1993)에서 공룡을 복원하는 과정을 연상하게 한다. 레너드 번스타인의 작곡과 스티븐 손드하임의 작사, 제롬 로빈스의 안무라는 원작의 DNA에는 존경과 경의를 표하되, 각본에 결여되어 있던 개연성을 세심히 보강하고 고색창연한 서사에 현재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 이것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리메이크이지만, 동시에 스티븐 스필버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이기도 하다.

원작에서 청년들이 농구를 하던 평범한 놀이터는 리메이크에선 재개발로 반쯤 철거된 폐허로 바뀌어 있다. “너희 구역은 재개발 되어 멋진 아파트가 들어서게 될 거다. 그렇게 되면 너희들은 저 푸에르토리코 경비원들에게 쫓겨나게 되겠지”라는 경찰의 말처럼, 하층민으로 전락한 슬럼가의 백인 청년들은 이주민에게 밀려날지 모른다는 공포와 불안에 내몰려 폭력을 일삼고 푸에르토리코 국기에 혐오의 표시로 페인트질을 한다. 토니는 마리아에게 사랑을 고백하고자 스페인어를 배우려 노력하고, 베르나르도의 애인 아니타는 미국을 기회와 가능성의 이상향으로 노래하지만, 마리아의 눈 앞에서 토니는 피살당한다. 아니타는 제트파 일당에게 봉변을 당하고는 영어를 버리고 스페인어로 그들을 저주한다.

‘링컨’(2012)에서 남북전쟁과 인종차별로 분열된 미국을 통합하고자 한 국가의 아버지는 근심과 피로에 찌들어 우울한 표정을 짓곤 했다. ‘스파이 브릿지’(2015)에서 교섭에 나선 변호사는 베를린 장벽으로 분할된 동서의 첨예한 대립을 근심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러한 작가적 흐름의 발전선상에서 왜 스필버그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다시 꺼내 들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극 중 토니를 돌봐주는 가게 주인 발렌티나(원작의 아니타였던 리타 모레노)는 미국인임에도 자신을 차별하지 않고 사랑했던 남편 닥과의 과거를 애상어린 심정으로 추억한다.

그어진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갈라져버린 공동체와 세계, 화합과 공존이라는 이상의 붕괴. 경력의 만년에 이른 대가는 점점 역사와 인간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잃어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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