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

menu search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국립 인간극장] <1> 동래야류 - 손심심 전승교육사

풍자꾼 할미의 일침 “민속예술 계승자 고충 들여다봐달라”
김민주 기자 min87@kookje.co.kr, 이우정 PD | 2022.01.19 20:05

  
동래야류. 부산시민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친숙한 이름. 일제 강점기 명맥이 끊겼다가 1960년대에야 어렵사리 복원된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동래야류는 현재 ‘보유자’(인간문화재)가 없다. 후학들을 양성하던 이도근(84) 선생이 지난 연말 건강상 문제로 ‘보유자’ 지위를 내려놓고 ‘명예보유자’로 이동하면서다. 국가 또는 자치단체가 지정한 중요문화재 가운데 동래야류는 그나마 전승 교육사가 많은 편. 다른 무형문화재들은 명맥을 잇기조차 힘겨운 처지다. 국제신문은 부산·울산·경남의 지역유산을 재조명 하기 위해 무형문화재 보유자(또는 전승자)들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기획시리즈 ‘국립 인간극장’을 연재한다. 동영상은 국제신문 공식 유튜브에서 만날 수 있다.
동래야류 손심심 보존회장이 16일 금정구 문장원기념사업회에서 장구 장단에 맞춰 덧배기춤을 추고 있다. 김채호 PD
- 1968년 무형문화재 18호 지정
- 부산지역 대표하는 전통 탈놀음
- 지배계층 대한 신랄한 비판 담겨

- 동래야류 복원 문장원의 제자
- 할미역 대가로 보존회장 맡아
- 민속예술 대중화 줄곧 힘써와  
- 부부 국악인으로 전국적 명성

- “코로나로 동료·후학 생계 악화
- 사명감 하나로 버티기 힘들어 
- 새로운 보유자 선발 등 시급”

지난 8일 국립부산국악원 대극장. 임인년 새해 기획공연인 ‘굿(GOOD)이로구나’의 첫 무대인 동래야류 할미과장이 막을 올렸다. 가면 쓴 ‘할미’가 주인공인 할미과장은 실은 비극적이다. 남편인 ‘영감’을 찾아 팔도를 헤맨 할미는 어렵사리 상봉한 영감에게 매 맞아 죽는다. 첩을 얻은 남편을 투기했다는 이유. 서사만 놓고 보면 “요즘 관객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 객석에선 뜻밖에 박장대소가 터져나왔다. “훤칠하고 코가 큰 영감을 보지 못했느냐”며 무대를 헛도는 할미의 능청에 자식 셋이 모두 죽게 된 까닭을 풀어낼 때조차 방정맞게 끼어드는 영감의 추임새가 일품. 무엇보다 세상 심각한 근심도 소매 끝으로 털어내는 듯 가벼운 영감·할미의 몸짓이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낸다.

지난 8일 국립부산국악원 대극장에서 열린 ‘굿이로구나’ 동래야류 할미과장 공연에서 동래야류 손심심 보존회장이 할미 역을 연기하고 있다. 이세영 PD
정월대보름 풍년을 기원하던 들놀음(野遊). 연원을 따져봐도 동래야류 가면극은 엄숙한 분위기와는 결이 맞지 않다. 할미과장 이외에도 양반·영노·말뚝이 탈을 쓴 가면극이 대체로 지배계층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해학을 담고 있기 때문. 양반을 잡아먹는 괴물 영노가 등장하자 지체 높은 양반은 위기를 면하려 스스로를 ‘똥 돼지 개 소’라고 칭한다.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종 ‘말뚝이’는 양반을 면전에서 ‘돼지 새끼’라고 낮잡아 이르더니 종래에는 자신 또한 양반 출신이라고 우기거나 “대부인과 사통했다”면서 양반의 체면을 깎아내린다.

동래야류는 조선시대 동래 줄다리기와 함께 새해를 여는 최대규모 행사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여러 차례 중단됐다. 일제가 민중이 군집해 집권층을 비판하는 정서를 마뜩찮아 했기 때문. 1930년대부터는 우리 문화의 맥을 끊으려는 시도가 노골화되면서 전승자조차 구하기 힘겨웠다. 잊혀져 가던 동래야류는 부산민속예술보전협회 이사장을 지낸 문장원(1917~2012) 선생에 의해 1960년대 복원된다. 1965년 제6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대통령상 수상에 이어 1968년 국가중요무형문화재 18호로 지정되면서 문화재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문장원 선생 사후 동래야류 보유자(인간문화재) 이도근(84) 선생이 후학을 키웠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12월 이 선생의 건강이 악화하자 명예보유자 신청을 받아들였다. 전수교육이나 전승활동이 어려워졌어도 인간문화재 예우는 유지된다는 의미. 반면 이 선생의 배분이 ‘명예보유자’로 바뀌면서 현재 동래야류는 ‘보유자’가 한 명도 없다. 이 선생을 제외하면 동래야류에는 6명의 전승교육사와 50명의 이수자만 있다.

이중 동래야류보존회 첫 여성회장인 손심심(57) 씨는 할미과장의 ‘할미’ 전승교육사. 지난 8일 ‘할미’로 무대를 휘저었던 인물이다. 문장원 선생은 물론 고(故) 천재동(가면 제작 보유자), 양극수(할미 보유자) 선생과 같은 대가로부터 사사 받았다. 지난 16일 문장원기념사업회에서 만난 손 회장은 동래야류의 역사와 전승교육사로서의 삶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10대 시절 부산시립무용단에 입단한 손 회장은 동아대 한국무용학과를 거쳐 줄곧 ‘민속예술의 대중화’에 매진했다. 졸업 후엔 민속예술학교 ‘울림터’를 만들어 운영했다. 남편인 김준호(부산시 무형문화재 제4호 동래지신밟기 보유자) 씨와 함께 무대뿐 아니라 방송에도 자주 출연한 덕에 전국 민속예술판에서 가장 대중적인 명인으로 꼽힌다. ‘우리 소리 우습게 보지 말라’(이론과실천)는 남편 김 씨의 저서이자 부부가 함께 출연했던 TV 프로그램의 제목. 손 회장은 “어떤 무대에서든 대중가요·서양예술과 견줘 유독 민속예술에 대한 처우가 박하다. ‘우리 소리 우습게 보지 말라’는 동래야류를 포함한 우리 문화가 어엿한 대우를 받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어낸 카피다.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고 했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손 회장에게조차 동래야류 보존의 과업은 큰 짐이다. “2년 전에는 코로나19가 확산해 더 어려웠어요. 여러 사람이 모이는 것조차 ‘죄악’으로 낙인 찍힐 때였으니 대중공연은 꿈도 꾸지 못했죠. 부산에서 ‘장구교실발’ 집단 감염이 터지면서 전통 악기를 배우려는 사람도 사라졌어요. 민속예술 학원을 운영하던 동료들도 수 없이 폐업했습니다.”

손 회장은 “생계에 쫓겨 사무직 경리나 대리운전을 한다는 동료들을 만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특별히 해줄 게 없어 더 괴롭다”고 털어놨다. 그는 “동래야류는 국가가 보존 가치를 인정한 중요무형문화재다. 그렇다면 맥을 이으려는 예술인들의 삶도 국가가 들여다봐야 하는 것 아니냐”며 “특히 동래야류 선배 보유자들이 타계하거나 은퇴를 앞두고 있는데도 새로운 보유자 선발은 미뤄지고 있다. 사명감 하나로 버티는 민속예술가들의 사기도 떨어졌다”고 한숨 쉬었다.

그래도 동래야류의 맥을 이으며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다짐을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 세운다고 한다. 손 회장은 “감사하게도 여전히 민속예술에 관심을 두는 아이들이 있다. 장구 소리에 매료되고 몸짓에 눈을 반짝이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희망을 되새긴다”고 했다. 전수학교가 아님에도 배움을 청하는 학교와 교사들에 대해 손 회장은 깊은 감사를 전했다. 그는 “열악한 상황이지만 동래야류에 관심을 보이는 시민은 여전히 존재하고, 이들이 본받을 수 있는 스승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다. 동래야류가 다시금 널리 사랑받을 때까지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 제작지원 BNK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트위터 페이스북
관련기사
국제신문 뉴스레터
당신의 워라밸 점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