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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국과 함께하는 명작 고전 산책 <28> 군주론-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

분단국가 권력에 던지는 일침 “칼에 피 묻히는 군주는 자멸한다”
서부국 서평가 | 2021.10.14 19:06
- 교황 통치지역과 귀족 지배의 땅
- 16세기 양분된 이탈리아 반도
- 프랑스 등 외세 잦은 침략도 골치 
- 피렌체의 고위관리 마키아벨리
- 강력 통치자 조국통일 염원 담아
- 근대 국가론적 정치사상 서술 

- 500년 전 이탈리아 국내외 정세
- 지금의 한반도와 빼닮아 유용
- ‘백성 재산 수탈하면 안 된다’ 등
- 지도자 금기사항 되새겨 봐야

대권을 쥐려는 꿈들이 무르익는 요즘이다. 손바닥에 쓴 임금 왕(王) 자를 지우기 아쉬울 정도로 출마자는 귀가 얇아졌다. 마키아벨리 같은 책사를 곁에 둔다면 얼마나 든든하겠는가. 머리 위에 매달린 칼을 알아채고 치워줄 구세주다. 520년 전 마키아벨리가 그 역할을 자청하고 나섰다. 당시 이탈리아 정세는 지금 한반도 그것과 닮았었다.
마키아벨리는 종교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에 주목했다. 1572년 프랑스 구교도가 신교도를 압살하는 참혹한 현장을 보여주는 ‘생 바르텔미 대학살’. 프랑수아 뒤부아 작.
르네상스 말기인 16세기, 이탈리아반도는 나뉘었다. 교황령(敎皇領)과 지역 귀족이 지배하는 땅으로 갈렸다. 지역 군주는 피렌체 나폴리 밀라노 베네치아 같은 독립한 도시에서 권력을 휘둘렀는데 외세가 골치였다. 프랑스 에스파냐 독일 스위스를 포함한 유럽 강국이 단골 침략자. 이런 상황을 주시해온 저자는 정치공동체 구성 여부에 따라 권력 조직(스타토) 획득이 판가름 난다고 결론 지었다. 영토를 기반으로 하는 권력 조직이라! 마키아벨리는 서구에서 처음으로 근대 국가를 정치학 대상으로 삼은 사상을 펴 보였다. 당시로선 일대 혁신.

그는 피렌체 고위관리였다. 외세에 끼여 분열된 조국을 통일할 강력한 통치자를 찾았다. 그 갈망이 10여 년 걸려 집필해 1513년 출간한 ‘군주론(君主論, IL PRINCIPE)’에 담겼다. 이 책은 진상품. 그는 잉크가 채 마르지 않은 육필 원고를 당시 피렌체 군주인 로렌초 메디치(1492~1519)에게 바쳤다.

“메디치 전하! 무릇 군주의 은덕을 받고자 애쓰는 사람은….” 군주론 서두다. 조선 시대 상소문 같다. 이름하여 ‘메디치 전하께 드리는 헌사(獻辭)-니콜로 마키아벨리 상서(上書)’. 피렌체 공화정에서 일하던 마키아벨리는 토속권력인 메디치 가문에 납작 엎드렸다. 기회주의자 같은 면모였다.

영어사전에 마키아벨리언(Machiavellian)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이란 낱말이 오를 정도로 그는 유명하다. 이 단어는 ‘권모술수에 능한’ ‘국가나 개인이 목적을 달성하려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향’으로 뜻풀이된다. 마키아벨리 체취가 싸하다. 하지만 군주론을 읽어본 이는 생각을 고친다. ‘이런 평가가 나옴 직하되 정당하지는 않다’. 알고 보니 그는 사분오열된 조국을 걱정하는 충직한 애국자. ‘우리나라의 언어에 관한 연구 또는 대화’란 저서에서 이렇게 소리쳤다. “자기 조국을 해치는 건 가장 가공스러운 일이야.”

통치자는 권력 유지에 권모술수와 악행을 동원해도 된다고 봤다. 고대 덕치·이상주의 정치관에 반기를 들었다. 음산한 사상일까.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이런 주장을 펴면서 단서를 붙였다. ‘백성을 위한 길이라면’ ‘어쩔 수 없다면’. 이런 전제를 빼고 마키아벨리를 자기 입맛대로 재단한 후대 독재자가 여럿 나왔다. 독재자 무솔리니가 그렇다. 그는 마키아벨리 연구로 볼로냐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자는 군주를 찬양한 게 아니다. 되레 그는 공화정 관리로 일한 공화주의자였다.

군주론 1550년판 표지.
군주론은 근대 이후 ‘색다르게’ 주목받았다. 당시 메디치 가문은 이 고전 진가를 몰랐다. 이 책은 필사돼 읽히다가 퇴고한 지 19년, 저자 사후 5년이 지난 1532년에야 출간됐다. 1559년엔 교황 파울루스 4세가 윤리와 신학을 모독했다며 금서 목록에 올렸다. 저자 이름 니콜로에서 연유한 ‘Old Nick’이 ‘악마’를 뜻하게 된 건 이 때문.

저자는 이탈리아·유럽 역사와 인물 얘기를 군주론에 쏟아부었다. 고통 회피와 이익 추구를 인간 본성이자 정치학 핵심 원리로 보았다. 그러니, 영토국가 구성원을 통치하려면 힘(비르투)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공포감을 유발하는 폭력이나 처벌 같은 힘은 통치 수단인 동시에 영토국가 안전을 보장한다. 어쩔 수 없는 운명(포르투나)도 이런 힘으로 맞서야 한다고 봤다. “군주란 모름지기 전쟁을 잘 치러내야 하고, 백성은 그저 욕심을 좇고 천박하니 ‘기어오르지’ 않도록 틈을 보여선 안 됩니다.”

군주론은 짤막한 26장에 200여 쪽 분량. 장마다 단도직입하는 소제목이 달렸다. 19장 ‘멸시와 미움을 피하는 방법에 관하여’는 군주가 백성을 대하는 자세를 다뤘다. 군주에겐 두 가지가 금기다. 백성 재산을 수탈하거나, 처자를 능욕하면 안 된다. 민심이 가차 없이 등을 돌리기 때문. “백성은 어떤 경우라도 자기 재산이 침해당하면 참지 않습니다.” 16세기에만 그럴까. 부동산 정책에 실정한 문재인 정부는 내상을 크게 입었다.

이런 말도 눈에 띈다. “무기를 든 예언자는 모두 성공하지만, 무기가 없는 예언자는 멸망하기 마련입니다.” 6장(자기 군대와 능력으로 획득한 새로운 통치권에 대하여) 중 한 구절. 무력을 찬양한다는 비난을 받을 만한 대목이지만, 속뜻은 그렇지 않다. 여기서 예언자는 통치자·지도자, 무기는 민중을 다스릴 무력이나 율법을 뜻한다. 힘없는 통치자는 백성과 영토를 건사하지 못한다는 얘기이니 지당하다.

마키아벨리는 덕치주의자. 시라쿠사 전제 군주였던 아가토클레스(기원전 361~289)를 다룬 8장. “그러나 악랄하기 짝이 없었던 그의 잔인무도함과 비정으로 인하여 그를 위인으로 평가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독재 군주들이 맞이한 비참한 최후를 까발렸다. 그러면서 군주는 악행을 선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악행은 가능한 한 적게, 몰아서 행하는 게 좋단다. 백성을 덜 동요시키며, 권좌 지속에 유리하기 때문. 툭 하면 칼에 피를 묻히는 군주는 자멸한다고 경종을 울렸다. 악행으로 권력을 쥐었더라도 선정을 계속 베풀면 번영이 유지돼 그 군주가 살아남는다. 은전(恩典) 사용법도 알려준다. “한 번에 조금씩 베풀어 그 맛을 음미하도록 해야 군주를 향한 충성심이 유지됩니다.” 때 역시 잘 맞춰야 한다. 시련을 등에 업은 군주가 행하는 은전은 효과가 준다. 백성은 그도 똥줄이 타니 별수 없다며 코웃음 친다. 실전형 백성 다스리기다. 저자는 인간 본성을 선악으로 이분해 규정하지 않았다. 민심은 생존이나 이익이라는 현실 앞에서 변하기 마련이라고 보았다.

그런 관점에서 새로 권력을 장악한 군주에게 11가지 조언(7장)을 내놓았다. ①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 ②동지를 규합 ③폭력을 쓰든, 기만을 하든 승리하라 ④백성이 자신을 사랑하면서도 두려워하게 만들 것 ⑤군대가 자기를 따르게 하고 존경하게 해야 한다 ⑥경쟁자나 그럴 여지를 가진 자를 제거 ⑦구법과 구습을 새롭게 바꾸어라 ⑧가혹하면서 인자하라 ⑨관대하고 개방적일 것 ⑩불충한 군대를 없애고 새 군대를 조직 ⑪새 군대와 우호 관계를 맺어 자신을 믿게 만들어라.

이탈리아와 한국은 외세가 개입할 우려를 안은 반도국이다. 두 나라는 강대국 입김을 코밑에서 느껴야 하는 긴장된 국제 정세에 놓였다. ‘사자 심장에 여우 두뇌’를 가져 필승하는 지도자가 절실하다. 마키아벨리가 갈망했듯이. 이탈리아는 다행히도 분할 1300여 년 만인 1871년 통일된 후 G7 국가에 들었고, 내전은 사라졌다. 한국은 여전히 분단국가다.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에서 단테와 함께 조국 통일을 외친 정치사상가로서 대우받는다. 그가 500여 년 전 쓴 군주론이 우리에게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그 속에서 애국이란, 나라를 유지하는 바탕 정신을 만나기 때문일 터이다.

대선을 앞두고 유권자는 고민한다. 분단국에서 외세에 둘러싸여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가 갖춰야 할 자질은 무엇인가? 후보자들이 점차 정체를 드러낸다. 무엇보다, 차선 아니라 최선으로 출마자를 선택하는 대선이 되었으면 바람직하겠다.

서평가·세상관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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