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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재다능 사상가…‘군주론’ 바쳤지만 반역 죄로 투옥

마키아벨리 일생
서부국 서평가 | 2021.10.14 19:01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문인(극작가 시인) 정치사상가 외교관 군사전략가 역사가로서 활동 영역이 넓었다. 쟁쟁한 정치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은거할 때도 많았다. 말년 메디치 가문 축출과 함께 58세로 눈을 감았다.

마키아벨리 동상.
몰락한 피렌체 지역 귀족 출신. 유년기에 정규 교육을 못 받고, 집에서 문학과 역사를 익혔다. 신분을 상승하려 노력한 그는 14~18세기 지역 맹주인 메디치 가문에 매달렸다. 이 가문이 한때 쫓겨난 시기인 29세(1498년)에 직장인이 됐다. 피렌체 공화국 10인군사위원회 사무국장직을 얻었다. 여기서 14년간 일하며 프랑스 독일 스위스 같은 외국을 방문해 공무를 보고 외교관으로서 교섭을 벌였다. 1506~1507년 군인을 모집하는 행정직을 맡았다. 그는 시민군 창설이라는 업적을 인정받았고, 1509년 피사를 함락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런 일을 하는 동안 ‘만드라골라(희곡)’ ‘이탈리아 10년사:1494~1504’ ‘프랑스 사정기’를 썼다.

1502년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로 복귀하면서 마키아벨리는 공직을 잃고 산 카스치아노 저택에 은거해 ‘군주론’ ‘리비우스 역사 논고’를 다듬었다. 1513년 군주론을 메디치 가문에 바쳤지만, 관심을 끌기는커녕 반역 가담 혐의로 투옥돼 고문 당하다가 무죄로 풀려났다. 1519년 메디치 가문이 집필을 요청한 ‘피렌체 정부 개혁론’을 펴냈다.

1521년 ‘전술론’을 펴냈다. 1527년 폭동으로 다시 메디치 가문은 피렌체에서 추방되었고 앞서 공직을 받아 재기를 꿈꾸었던 마키아벨리는 낙심하다 1개월 뒤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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