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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로 권좌 지킨 스포르차, 잔혹한 공포정치 보르자

군주론 속 권력자 열전
서부국 서평가 | 2021.10.14 18:59
군주론은 흥망을 거듭하는 권력이 쓴 가면을 벗긴다. 그들은 어떻게 권좌를 지켰을까.
왼쪽부터 체사레 보르자, 여동생 루크레치아 보르자, 아버지 알렉산데르 6세 교황. 보르자가 청년에게 포도주를 마시게 한 후 독약을 넣은 술이라고 말하고 있다.
신분 상승 사다리가 주어진 영웅시대일수록 부침이 컸다. 출신이 미천해도 뛰어난 능력을 갖춘 개인은 추종 세력을 등에 업고 군주로 떠올랐다. 밀라노를 창건한 프란체스코 스포르차(1401~1466)가 그렇다. 그는 농부 서자였지만 이탈리아 용병대장으로 명성을 쌓은 후 암브로시아 공화국 정복(1447년)에 이어 밀라노 대공에 올라(1450년) 롬바르디아와 북부 이탈리아를 손에 쥐었다. 그는 자신 군대를 잘 통솔해 권좌를 지켰다. 저자는 “전시보다 평화로울 때 더 군비에 주력해야 하는 법”이란 말을 남겼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위기에 유연하게 대응하라며 ‘이리를 쫓으려면 사자처럼, 함정을 피하려면 여우처럼’을 외쳤다. 18장 ‘군주에 대한 신뢰를 지속시키는 방법’에 나온다. 이 같은 통치자는 세베루스 알렉산데르(208~235) 로마 24대 황제. 그는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권좌를 안았다. 힘을 과시하듯 군대를 움직여 원로원을 압박해 율리아누스 황제를 처형대에 세웠다. 즉위하자 정적인 니게르·알비누스 장군을 성동격서 기만술로 물리쳤다.

저자가 군주론을 쓰는 데 큰 영감을 준 군주는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서자인 체사레 보르자(1475~1507)였다. 그는 17세에 추기경이 된 후 페사로·우르비노·피옴비노 등지를 통일한 뒤 공포 정치를 펴 악명을 얻었다. 민심을 제압하려고 가신 레미로를 토막 낸 뒤 나뭇잎으로 덮고, 피 묻은 칼을 광장에 내걸었다. 얄팍한 지모로 버티다가 결국 정적 율리우스 2세에게 붙잡혀 죽었다. 잔혹한 권력자 말로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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