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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음식 사람 <23> 인천 면식(麵食)

쫄면·세숫대야 냉면도 여기가 고향…인천의 못 말리는 ‘면 사랑’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2020.12.01 19:53
- 1883년 개항 이후 화교들 이주
- 일본 제분주식회사도 들어와
- 쌀 귀한 시대 분식 대중화 계기
- 짜장면은 산동 작장면서 변형

- 한국전 때 피란 온 이북도민들
- 까나리액젓 넣은 냉면 개발
- 직경 27㎝ 대접에 먹는 맛 쏠쏠

- 면 사출기로 ‘밀가루 냉면’ 뽑아
- 매콤 양념 비빈 게 쫄면 시초

인천과 인천사람들은 그들의 면식(麵食)과 면식문화(麵食文化)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전국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여러 가지 면식이 있고, 인천을 중심으로 전국으로 퍼져나간 국민 면식 또한 다수가 있기에 그렇다. ‘짜장면’이 그렇고 ‘세숫대야 냉면’이 그러하며 ‘쫄면’이 그렇다. ‘까나리 냉면’ 같은 독특한 면식문화도 가지고 있다.
인천의 면식(麵食)은 개항과 함께 탄생한 음식문화다. 왼쪽부터 황해도 피란민이 정착시킨 인천냉면, 인천에서 탄생한 쫄면, 중국 노동자의 주린 배를 불리던 작장면이 원조인 짜장면. 최원준·국제신문DB
인천에서 발상돼 ‘국민 분식’ ‘국민 간식’의 자리를 차지한 면식들에게 보내는 인천사람들의 애정과 지지는 남다르다. 그러면 왜 인천에서 유독 면식이 발달했고 인천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것일까? 그것은 인천 개항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한다.

■제분회사에서 비롯된 인천 면식

1883년 인천이 개항하면서 청국 조계지가 들어서고 이후 일본 근대산업 문물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이때 중국에서 수많은 화교 노동자들이 이주를 하게 되고, 1920년대 일본 자본의 일본제분주식회사가 인천에 들어서면서 ‘인천 면식의 배경’이 생성되게 된다.

당시 쿨리(苦力)라 불리던 중국 노동자들은 고된 노동 속에서도 그나마 고향의 음식을 먹고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 “그들이 싸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은 중국 산동성의 작장면(炸醬麵)이 현지화 된 것으로 중국된장인 미옌장(甛麵醬)을 수타면에 비벼먹는 면식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우리 식의 춘장을 개발, 캐러멜과 걸쭉한 전분을 함께 넣고 볶아 달고 감칠맛 나는 오늘의 짜장면을 탄생시킨 것이죠.” 박정배 음식역사칼럼니스트의 설명이다.

당시 서울의 관문이자 배후지인 인천에 들어선 일본제분주식회사는 서울을 중심으로 밀가루를 대량 공급했는데, 이는 당시 일본으로 수탈해 갔던 우리 쌀 대신 밀가루 면식의 상용화를 가져왔다. 특히 서민에게는 아주 친숙하고 익숙한 음식이었을 수밖에 없었다.

1952년 일본제분을 인수한 인천의 대한제분은 22㎏ 들이 밀가루를 연간 100여만 포 생산해냈다. 한때 1000여 명의 노무자들이 곰표 밀가루 생산에 몸을 담았던 시대도 있었다고 하니, 당연히 지역사회에 밀가루 관련 음식들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1960년대 ‘혼·분식 장려정책’에 따라 다양한 분식요리가 대중화 되고 짜장면, 칼국수를 중심으로 면식이 우리 식탁에 주식(主食)화 되는 계기를 가져왔다.

■피란민에 의해 현지화된 냉면

인천의 냉면 또한 인천의 면식 중 특별한 음식으로 자리를 잡는다. 인천냉면은 한국전쟁 이후 황해도에서 피란 온 이북도민들이 인천 만석동, 백령도 등지에 이주, 정착하는 과정에서 해먹었던 음식이다. 부산의 밀면처럼 식재료나 양념 등이 이주한 곳의 사정에 의해 대체, 현지화 된 것이 현재의 인천냉면이다. 다시 말해 인천냉면은 이북 피란민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졌으되 이북식과는 다른 ‘인천식 냉면’으로 정착한 음식이란 뜻이다.

‘인천냉면’은 크게 ‘백령도식 냉면’과 ‘화평동식 냉면’으로 나뉜다. 모두 메밀에 밀가루가 들어가 부드럽고 감칠맛이 도는 특징이 있다. 일명 ‘까나리 냉면’이라 불리는 ‘백령도식 냉면’은 메밀가루에 밀가루를 섞은 굵은 면발과 사골국물과 함께 ‘까나리액젓’을 넣은 육수가 독특하다. 한국전쟁 시기 황해도 사람들이 백령도에 정착하면서 백령도식 냉면이 시작됐는데, 이들이 인천으로 나와 이 냉면을 팔면서 ‘인천냉면’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사골국물에 졸인 장으로 육수를 내는데 단맛이 아주 강하다. 그러나 까나리액젓과 어우러지면서 단맛은 강한 감칠맛으로 변한다. ‘단짠단짠의 대표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요즘은 호불호 때문인지 까나리액젓을 소스통에 따로 두고 입맛에 따라 곁들여 먹게 하는 곳도 있다. 메뉴도 물냉면과 비빔냉면 이외에 ‘반냉면’이라는 것이 있는데, 물냉면 위에 비빔장을 얹어 먹을 수도 있게 내놓는다. 인천 화평동에는 ‘화평동 냉면골목’이 있다. 1970, 80년대 이곳 부근에는 전국 최대의 목재가구단지와 제철소 등이 밀집해 있었는데, 이들 노동자를 대상으로 대략 스무 곳의 냉면집이 골목을 이뤘다. 일명 ‘세숫대야 냉면’의 발상지이다. 맛은 평범하지만 노동자들을 위해 그릇에 담겨진 냉면의 양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릇만도 직경 27㎝. 일반 냉면 그릇의 2, 3배다. 한창 성업하던 시절에는 한 그릇 무게만도 2㎏을 넘길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면 위에는 시큼하게 삭은 열무김치가 고명으로 올라가 여름에 시원하게 배불리 먹던 서민친화형 냉면이다. 요즘은 홍어, 골뱅이 등을 고명으로 올려서 내는 홍어냉면, 골뱅이 냉면도 제철 따라 판매하고 있기도 하다.

■인천서 처음 탄생한 쫄면

인천 하면 빠지지 않고 회자되는 또 하나의 밀가루 면식이 있는데 바로 ‘쫄면’이다. 1970년대 초 인천의 ‘광신제면’에서 고무줄처럼 질긴 식감의 굵은 냉면가락이 탄생된다. 우리나라 최초이다. 이를 인천사람들은 ‘쫄면’으로 이름 붙였다.

쫄면의 탄생을 두고 여러 일화가 있다. 주문이 밀려들어 바쁜 나머지 굵은 면 사출기에 밀가루 냉면을 뽑아낸 것이 시작이라고도 하고, 원래 주문이 그렇게 들어왔는데 반응이 좋아 계속 생산하면서 쫄면이란 이름으로 판매하게 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요즘은 후자의 말에 무게를 두는 것 같아요. 광신제면 하경우 대표가 창업주 장보성 할머니께 어렴풋하지만 그렇게 들었던 것 같다고 말을 하시더군요.” 경인지역 음식연구가 김인규씨의 이야기다. 뭐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랴? 이런 풍성한 뒷이야기들이 쫄면의 맛과 추억을 버무려 인천 음식문화의 넉넉함을 지키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굵게 뽑아낸 쫄면은 한때 떡볶이, 만두와 함께 없어서는 안 될 국민간식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여하튼 가위로 잘라 먹는다고 할 정도로 쫄깃한 면발에 매콤하면서도 달콤한 소스, 아삭한 콩나물과 채 썬 양배추의 환상적인 조합으로 인해 쫄면은 인천 중고교생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이후 1970, 80년대 전국의 분식집을 석권하며 청춘음식의 한 정점에 서기도 했던 것이다. 타의에 의한 개항과 전쟁에 의한 이주, 정착 속에서 자리 잡은 인천의 면식문화. 그리고 먹을 것 제대로 없던 시절, 가벼운 살림살이 속에서도 든든한 한 끼 식사를 책임졌던 인천의 면식들. 그리고 보니 우리 부산의 음식들과도 많이 닮았다. 그래서인지, 인천 사람들 잘 거둬 먹인 그들의 노고에 응원의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시인 · 음식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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