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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모 뺨쳤던 서포의 母, 두 아들 엘리트로 키워

김만중의 생애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2020.11.19 19:02
서포는 출생부터 풍운아답다. 서인 가문에서 자란 그는 문인이자 조선 후기 엘리트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 유배와 재등용이라는 롤러코스터를 탔다. 14세에 진사 초시, 16세에 진사시에 장원, 1665년 정시 문과에 장원급제했고 1671년 암행어사로 마패를 찼다. 인조 효종 현종 숙종 임금을 모시며 조정 요직을 두루 거쳤다. 왕족과 혈맥을 맺으며 문인을 다수 배출한 예학 집안. 증조부 김장생, 조부 김직은 문묘에 배향됐다. 이런 집안에 시집온 어머니 해평 윤씨가 형제·3대 대제학을 길러냈다. 아들 김만기-만중, 손자 증손자가 대제학을 이었다.

21살 때 지아비를 잃은 서포 모친은 가난 속에서도 두 아들을 교육하는 데 정성을 다했다. 두 아들과 자신 사이에 여름엔 발, 겨울엔 병풍을 치고 학문을 가르쳤다. 아들 학업 진척에 일비일희하지 않으려는 표징. 모친은 홍문관 관리에게 책을 빌려 베껴 아들 손자 공부상에 올렸다. 청빈을 강조했으며 자손이 대과에 합격했을 때만 조촐한 잔치를 열었다.

모친도 명문 출신이다. 고조부 윤두수(해원부원군)-증조부 윤방(영의정)-조부(윤신지) 조모 정혜 옹주(선조 딸)-부친 윤지(참판공). 이 중 정혜 옹주를 통해 예법과 학문을 익혔다. 지아비 충정공 김익겸은 영의정으로 추증됐다. 충정공 어머니도 호란 때 같이 자결했다. ‘구운몽’에는 우리 선조 선혈, 모정, 문학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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