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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복귀족 출신 금수저, 고법원장직 버리고 집필 시작

몽테스키외 생애
서부국 국장 겸 교열부장 | 2020.10.22 19:33
- 글쓰기에 자부심 가졌던 사상가
- 소설 ‘페르시아인의 편지’ 인기

샤를 루이 드 스콩다 몽테스키외. 18세기 프랑스 계몽사상가이면서 문인이었다. 소설 ‘페르시아인의 편지’(1721년)로 제법 인기를 끌었다. ‘법의 정신’ 속 해학 반어 은유 상징이 넘치는 문장이 보여주듯 글쓰기에 자부심을 가졌던 법 사상가. 1941년에는 ‘여행 수첩’ ‘시간’ 같은 에세이를 출간했다. 이에 앞서 선보인 ‘로마 성쇠 원인론’(1734년)은 ‘법의 정신’을 이어주는 전신(前身)이란 평가를 받았다.
프랑스 남서부인 보르도에 위치한 몽테스키외 생가. 성채와 성지에 관광객이 모여든다.
그는 금수저였다. 프랑스 절대왕정 아래에서 사법 관직을 사고팔았던 이른바 법복귀족 출신. 재력을 갖춘 지방 하급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일생을 유복하게 보냈다. 사생활은 그리 알려진 게 없다. 1689년 파리 남서쪽인 보르도 지역에 자리 잡은 고성에서 자랐다. 4남매 중 장남.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한 이력으로 보르도 고법 평정관으로, 이후 한때 법률가로 활동했다. 1715년 유부남이 됐다. 1726년 백부가 물려준 고법원장직을 버리고 본격 저작 활동을 시작했다. 자손이 없었던 백부는 몽테스키외에게 땅과 작위(남작)를 넘겼다. 2년 후 프랑스 학술원에 들어간 뒤 영국을 포함한 유럽을 여행하면서 집필 자료를 모은 후 1731년 귀향해 ‘법의 정신’ 저술에 착수했다. 이 책은 1748년 제네바에서 익명으로 출간했는데 인기가 좋았다. 몽테스키외가 앞서 역시 익명으로 펴낸 ‘페르시아인의 편지’가 거둔 성공이 몰고 온 후광도 거들었다. 18세기 루이 14세 절대왕정 치하 프랑스 사회를 예리하게 비판해 명성을 얻은 그는 파리로 진출, 다양한 문인과 교류하면서 유명 인사가 됐다.

‘법의 정신’을 낸 후 체력과 시력이 급격히 나빠졌으며 당시 파리를 엄습했던 열병을 이기지 못하고 1755년 6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사후 몽테스키외는 오벨리스크와 생 탕드레 대성당으로 유명한 보르도 캥콩스 광장에 조각상으로 우뚝 서 관광객을 반긴다. 고향에 잘 보존된 생가인 아담한 성채와 영지에도 인파가 모인다. 몽테스키외는 200프랑짜리 지폐(1981~1994년)나 동전(사진)에 모델로 등장해 ‘국민 사상가’로서 명성을 짐작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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