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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음식 사람 <14> 양양 뚜거리탕

송강 정철도 반한 강원도 어탕 … 추억의 별미이자 복날 보양식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2020.07.21 19:45
- 영동지역 하천에서 서식하는
- 10㎝ 내외 망둑엇과 민물고기
- 꾹저구·뚜거지·뿌구리로 불려
- 버드나무 가지 묶은 '송장'으로
- 강바닥 긁듯 전통방식으로 잡아

- 뚜거리 통째 넣거나 삶아 간 것
- 고추장·막장 푼 장국에 끓여
- 파 고사리 부추 버섯 등 넣고
- 당면·달걀·제피·수제비 첨가도
- 비린내 없고 얼큰 담백한 맛

복달임. 삼복(三伏)에 들어 날씨가 달아올라 무더운 복달 기간 또는 복날의 더위를 물리친다는 뜻으로, 보양식 재료로 국을 끓여 먹는 것을 의미한다. 이 복달임은 삼복을 건강하고 지혜롭게 나기 위해 지내는 우리 전통의 세시풍속이다.
‘남문 뚜거리’에서 받은 뚜거리탕 한상. 추어탕과 비슷한 맛이지만 더 담백하다.
그래서 지역마다 다양한 식재료로 복달임을 했는데, 특히 영양소가 높거나 제철 식재료로 음식을 넉넉히 만들어 지인들과 함께 서로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며 나눠 먹었다. 지금은 많이 쇠퇴한 보신탕을 비롯해 삼계탕·용봉탕·자라탕·육개장·해신탕 등이 대표적이다.

강원도 양양에도 복달임으로 먹던 대표적인 음식이 있다. 양양 사람들은 복날이면 남대천에서 천렵으로 잡은 뚜거리로 탕을 끓여 먹었는데, 이것을 ‘복대림’ ‘복놀이’ ‘복대듬’이라고 불렀다.

뚜거리는 동해바다와 접한 영동지역 하천에 서식하는 10㎝ 내외 망둑엇과의 작은 물고기다. 1995년 강원도에서 발간한 ‘강원의 토종동식물’을 보면 뚜거리의 표준어는 ‘꾹저구’다. 강릉에서는 ‘꾹저구’로 고성에서는 ‘뚝저구’ 삼척에서는 ‘뿌구리’로 불리며, 지역에 따라 ‘꺽자구’ ‘뚜거지’ ‘쭉정이’로도 불린다. 양양·강릉·속초 등 영동지역에서는 어탕의 식재료로 쓰이는데, 이곳 사람들에겐 삶의 애환이 깃든 토속음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밥에 만 뚜거리탕 한 술.
‘꾹저구’의 어원 속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사미인곡·관동별곡 등의 시가(詩歌)를 남긴 조선시대 문인이자 정치가였던 송강 정철(鄭澈)이 강원도 관찰사 재임 시절의 일이다. 당시 강릉 연곡지역을 순시하면서 연곡천의 이름 없는 물고기로 끓여낸 어탕을 주민들로부터 대접받았는데, 그 맛이 시원하고 담백한지라 고기 이름을 묻자 “저구새(물수리)가 ‘꾹’ 집어 먹은 물고기”라는 답을 들었다. 이에 송강은 “그러면 앞으로 이 고기를 ‘꾹저구’라 부르면 되겠다”고 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강릉 연곡천변에는 꾹저구로 끓여내는 ‘꾹저구탕’ 전문식당들이 산재해 있는데, 지역 사람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다.

뚜거리는 강바닥에 서식하는 소형어종이기에 낚시보다는 족대·반두 등의 손 그물로 주로 잡는다. 특히 양양에서는 ‘송장 끌기’라는 전통어로방식으로 뚜거리를 잡는다. 남대천 가에 자라는 버드나무 가지를 3m 정도로 잘라 여러 겹으로 잰 후, 칡넝쿨이나 짚으로 30㎝ 간격으로 묶어 놓은 것이 ‘송장’이다. 이 송장 끝에 길게 줄을 매달아 몇 사람이 잡고 강바닥을 끄는 것을 송장 끌기라 한다. 여러 사람이 이 송장으로 강바닥을 훑으면 반대편에서는 놀라서 튀어나온 뚜거리를 족대나 반두로 잡아낸다.

뚜거리탕 국물의 주요 재료인 고추장.
양양의 중년 이상 주민이라면 안 해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송장 끌기는 지역의 민속놀이였다. 그들은 “마치 ‘죽은 송장을 끄는 것 같다’고 하여 송장 끌기라고 불렀다”며 “지금은 재현행사 때나 볼 수 있어 아쉬움이 많이 남는 천렵문화”라고 한다.

이렇게 송장끌기로 잡은 뚜거리로 양양사람들은 여름철 보양식인 ‘뚜거리탕’을 끓여 즐겨 먹었다. 뚜거리탕은 뚜거리를 손질한 뒤 취향에 따라 통째로 끓이기도 하고, 갈아서 체에 걸러 끓이기도 한다. 고추장·막장 등을 풀어 넣은 육수에 파·고사리·부추·깻잎 등 채소와 버섯을 넣어 오래도록 푹 끓여내면 된다. 당면이나 달걀을 풀어 넣기도 하고, 뚜거리에 밀가루 옷을 입히거나 수제비를 떠 넣기도 한다. 신선한 뚜거리와 직접 담가 3년 이상 묵힌 고추장을 쓰는 것이 맛의 핵심이다.

대대로 먹어온 양양의 별미음식이지만 천렵으로 뚜거리탕을 먹기가 어려워지자 1980년대 말부터 전문식당이 생겨났다. 현재 남대천 인근과 양양장 근처에 식당들이 들어서있는데 월웅식당, 천선식당, 꺽지랑 뚜거리랑, 남문 뚜거리 등이 대표적이다.

‘남문 뚜거리’ 식당 주인이 강원 양양 남대천에서 잡은 뚜거리를 살펴보고 있다.
양양장 인근에 있는 ‘남문 뚜거리’를 찾았다. 남편인 김상호(74) 씨가 남대천에서 직접 잡은 뚜거리를 주인장 신명숙(70)씨가 ‘뚜거리탕’으로 조리하여 팔고 있다. 30여 년째 남대천에서 잡은 뚜거리, 은어만 조리해 밥상을 낸다.

뚜거리탕이 나온다. 언뜻 보기에는 추어탕 같다. 휘적거려보니 대파가 넉넉히 들어가고 고사리·팽이버섯 등과 함께 당면이 들어갔다. 그 위로 계란을 풀어 마무리했다. 탕에 당면을 넣고 계란 푼 것이 특이하다면 특이하다 하겠다. 뚜거리는 잘게 썰어 밀가루에 궁굴려서 넣었다.

“직접 담근 고추장이에요. 조금 넣으세요. 얼큰하고 진한 맛이 날 거에요. 제피도 조금 넣으면 좋아요.” 신 씨가 먹는 법을 조곤조곤 알려준다. 국물 한술 뜬다. 민물생선 특유의 맛은 나지만 비린내가 없어 호불호는 없겠다. 제피를 넣으니 추어탕과 비슷한 맛이다. 그러나 추어탕의 짙은 맛보다 담백함이 매력적이다. 맛이 무겁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다. 넉넉히 들어간 파가 시원함을 내고, 집에서 3년간 묵힌 고추장이 얼큰하면서도 구수한 맛을 낸다.

영동지방은 육수를 주로 고추장에 풀어 국물을 낸다. 육수를 ‘장국’이라고 부르며, 그 대표적인 음식이 양양에서는 ‘뚜거리탕’ ‘섭국’ ‘장칼국수’다. ‘섭국’은 동해안 토종 홍합을 고추장 푼 육수에 팔팔 끓어낸 국이고, ‘장칼국수’ 또한 고추장 육수에 칼국수를 넣어 끓여 먹는다.

밥을 몇 술 만다. 밥알에 뜨거운 뚜거리 국물이 배면서 넉넉해진다. 허벅허벅 입에 넣는다. 온갖 거섶이 아삭거리고 뚜거리가 아작아작 씹히며 고소한 맛을 자아낸다. 토속적인 제철 반찬 또한 탕과 잘 어울린다. 호박나물·부지깽이나물과 함께 배추·얼갈이·총각무로 담근 각종 김치가 묵은지로 생김치로 각각 제맛을 내며 입맛 따라 변화무상하다. 탕 맛이 얼큰하고 깊어 김치만 곁들여도 훌륭한 밥상이 되는 것이다.

예부터 양양사람들에게 있어 뚜거리탕은 고향집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편안하고 따뜻한 음식으로 각인되어 있다. 전통 토속음식으로나, 여름 한 철 보양식으로나, 양양사람들에게는 ‘삶의 일부’인 음식이다. 해서 탕 한 그릇 뚝딱하고 나면, 고향 남대천의 추억이 새록새록 살아날 것만 같은 음식이기도 하다.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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