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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음식 사람 <13> 제주 검은 쇠 '흑우'(하)

천연기념물의 맛 … 마블링 적다 섭섭해 마라, 신선한 육향 그득하니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2020.07.07 19:41
- 주로 초원서 방목해 키워
- 체내 지방 함유량 적어 담백
- 한우보다 등급 낮지만 비싸

- 느끼하지 않고 식감 촉촉해
- 생고기로 먹어도 누린내 없고
- 소금 없이 구워도 풍미 오래가

- 제주 전통음식 메밀놈삐국
- 구수한 흑우 사골 육수에
- 토종 무·메밀가루 넣어 별미

제주도 검은 쇠, 흑우(黑牛). 대한민국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제546호. 일제는 1924년 201마리의 우량종 제주 흑우를 싹쓸이하다시피 수탈해갔다. 4년 뒤에 일본 ‘와규(和牛)’의 원조인 미시마(見島) 소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다. 일부 학자들은 일본 미시마 소와 우리 흑우의 유전자가 상당 부분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제주 흑우만 취급하는 ‘검은쇠 몰고오는’의 흑우 코스요리. 흑우의 부위별 모듬(위 사진), 흑우 육회(아래 왼쪽), 흑우 족편.
1938년, 일제는 ‘조선소는 황색, 일본소는 흑색을 표준으로 한다’는 ‘모색 통일 심사표준법’을 제정한다. 일본 와규의 정통성을 합리화하고 맛이 월등한 흑우 계통의 소를 독점하기 위해서이다. 일제가 흑우의 맛과 우수성을 일찌감치 잘 알고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얼마 전 제주도 흑우전문식당 ‘검은쇠 몰고오는’에서 전국 지역음식문화연구자들의 모임인 ‘한국음식문화포럼’ 제주세미나가 있었다. 이때 흑우 음식 시식회도 함께 열렸는데,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담박하다, 깔끔하고 정갈하다, 육향이 좋고 은은하다, 식감이 촉촉하고 육즙의 균형이 적확하다’고 평가했다. 기름지거나, 느끼하거나, 지나치게 부드럽거나, 과도한 육향과 육즙에 의한 피로감이 없다는 이야기다.

제주도 사람들은 흑우를 제주 조랑말처럼 주로 초원에 방목한다. 들판에서 뛰어놀다 보니 체내 지방 함유량 또한 적다. 고기에 눈이 내리듯 지방이 하얗게 잘 배인 한우에 비해, 한우품질기준인 마블링이 턱없이 적기에 좋은 등급을 받지도 못한다.

흑우는 한우 육우에 비해 크기도 작고 성장 속도도 더디다. 때문에 일반 한우보다 1년은 더 키워야 도축을 할 수가 있다. 당연히 마리당 가격도 비싸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판단해보면 흑우는 한우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

그러나 음식전문가나 미식가들의 견해는 다르다.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소고기는 육향으로 먹는다’이다. “흑우는 마블링이 없어도 이미 넉넉하게 고소하고, 생고기를 먹어도 누린내가 없이 담백하면서도 신선한 육향을 머금고 있다”는 것. 때문에 흑우를 제대로 먹으려면 양념이 없는 생고기로 즐기는 것이 좋다. 느끼하지 않고 담백하면서도 식감이 촉촉하다. 간은 최대한 약하게 해서 흑우 특유의 고기 향을 음미해야한다. 구울수록 육향이 좋아 소금을 안 찍어도 풍미가 오래간다.
흑우 우둔샐러드(왼쪽), 지글지글 잘 익고 있는 흑우.
식육식당 ‘검은쇠 몰고오는’에서 흑우 코스요리를 한상 받는다. 흑우 모둠과 ‘흑우우둔샐러드’ ‘흑우냉채’ ‘흑우육회’ ‘흑우 우족편육’ ‘메밀놈삐국’ 등 흑우 요리로 식탁을 채워 빼곡하다. 우선 전채 요리로 우둔샐러드와 우족편육을 맛본다.

우둔살 한 점을 입에 넣는다. 처음엔 부드럽게 혀에 감기면서 씹을수록 끈끈한 육질의 식감이 경쾌해진다. 흑우 엉덩이 살을 겉만 익혀 샐러드와 함께 낸다. 당근소스에 양파 채와 푸른 새싹을 올려 흑우의 붉은 살과 대비되면서 식감을 돋운다. 이어 우족편육을 맛본다. 입에 넣자마자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적당한 크기로 자른 우족편 위에 라즈베리 소스, 마요네즈 꿀 소스에 농도를 맞춘 겨자소스와 함께 제공되는데, 우족편의 고소함과 각종 소스가 어우러지면서 맛의 조화가 잘 어울린다.

흑우 모둠은 꽃등심, 업진살, 치맛살, 차돌박이, 부채살, 제비추리, 늑간살 등을 부위 별로 담아서 낸다. 불판에 흑우를 한 점씩 올려 굽는다.



‘치지직~’ 고기 익는 소리가 소나기 내리듯 수런거린다. 선홍빛 소고기가 마치 한 떨기 꽃잎과도 같다. 그 꽃잎 위에는 하얀 마블링이 눈꽃처럼 내려앉았다. 열기가 더해지자 고기 위로 육즙이 꽃망울처럼 송글송글 붉게 맺힌다.

아~ 꽃이 핀다. 붉디붉은 꽃봉오리가 벙근다. 꽃 중에서도 가장 농염한 꽃, 홍매화가 한 송이씩 방울방울 ‘톡톡’ 터져 오르는 것이다. 불판 위에서 ‘난분분~ 난분분~’ 대며, 사람들 애간장을 절절하게 녹이고 있다. 고기 익는 모습이, 이토록 아름답고 그윽할 수가 있을까?

(저서 ‘부산탐식프로젝트’ 중)

부위별로 맛을 일별하면서 한 점씩 음미해 본다. 차돌박이는 부드럽고 고소하기가 정점을 찍고, 치맛살은 식감이 치밀하고 씹으니 육즙이 쏟아진다. 꽃등심은 고소하면서 육질이 부드럽게 혀끝으로 와 닿고, 늑간살은 쫀득쫀득하면서 향이 진해 입안에서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다. 업진살은 꼬독꼬독 쫄깃쫄깃, 부채살 또한 육향이 그윽한 것이 흔쾌하다.



풍성하다. 현란하다. 현란하다 못해 화려하고 풍만한 구수함이 끝 갈 데 없다. 음식 본연의 ‘궁극의 맛’이 이런 것일까? 오래도록 기꺼움이 입 안에서 돌고 또 돈다. (저서 ‘부산탐식프로젝트’ 중)



제주 토종무 ‘놈삐’로 만든 놈삐국.
밥과 곁들여 메밀놈삐국을 맛본다. 메밀놈삐국은 흑우 사골육수에 제주 토종 놈삐(무)와 제주 토종 메밀가루를 넣고 파와 함께 푹 끓여낸 제주 전통음식이다. 제주의 국은 고기의 진한 맛을 느끼기 위해 메밀을 넣어먹는데, 메밀놈삐국 또한 메밀의 걸쭉함, 무의 시원함, 사골의 구수하고 진한 풍미를 모두 느낄 수 있는 음식이다.

흑우육회도 한 점 맛본다. 채를 썰어 고기 본연의 향이 쑥 들어온다. 참 진하다. 적당한 씹힘과 육즙이 균형 잡힌 채 다가와 건강한 단맛이 물씬하다. 입가심 육포는 흑우의 우둔살, 설도 부위의 설깃살을 말려 만든다. 씹다 보면 특유의 육향이 서서히 올라오고 육질이 부드럽게 풀리면서 고소함이 입 안 가득 퍼져난다.

제주전통음식보전연구원 양용진 원장은 “잘 차린 정찬을 한 상 받은 기분”이라며 “소고기를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건강하다는 느낌, 정갈한 식사를 한 끼 대접받은 것 같다”고 흑우의 맛을 평가했다.

제주 흑우만 취급하는 ‘검은쇠 몰고오는’은 제주흑우 인증 1호점(제주 검은 쇠) 지정업체. 지난 10여 년간 제주에서 유일하게 흑우만을 사용, 지난 4월 제주자치도 제주향토식품산업 지원조례가 통과되면서 제주흑우 인증점으로 지정되었다.

‘검은쇠 몰고오는’의 유양봉 대표는 “부친이 한우 목장을 하셨기에 한우 관련음식을 하다가, 제주 검은 쇠의 존재와 맛을 알고 이를 알려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무작정 시작하게 되었다”며 “흑우뿐만 아니라 모든 식재료를 제주의 것으로 사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흑우 사육농가에게 마리 당 200만 원씩의 인센티브를 주면서도 사육을 권장, 흑우 유통망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유 대표. 유 대표 또한 제주흑우의 보존과 식재료로서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있어 그 든든함이 새삼 기꺼울 따름이다.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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