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

menu search

최원준의 음식 사람 <5> 봄 바지락과 김제 바지락밥상

‘바지락바지락’… 갯벌의 보물 캐는 소리에 침이 고인다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2020.03.10 19:20
- 3~4월 산란 직전 맛·영양 으뜸
- ‘호미로 갯벌 긁어 잡는 소리’에
- 반지락 빤지락 반지래기로 불려
- 번식·성장 빠르고 집단 서식해
- 종패 뿌려 키우는 양식 발달

- 시원 감칠맛 내는 국물 재료로
- 쫄깃한 살은 회무침·찜·전·젓갈
- 햇쑥 넣어 향긋한 바지락쑥국
- 부드럽게 끓여 담담한 죽까지
- 다양한 음식서 봄철 입맛 돋워

깔끔하고 시원한 국물로 봄의 미각을 깨우는 봄의 전령 바지락. 굴·홍합·전복과 함께 국내 조개류 생산량의 상위를 차지하는 바지락은 그 개체 수가 많으면서도 갯벌 어디에서나 손쉽게 채취할 수가 있어 서민들이 가장 손쉽게 조리해 먹는 식재료 중 하나다. 서남해안의 갯벌이나 돌이 섞인 혼합갯벌에서 주로 서식하는 바지락은 봄이 시작되는 3, 4월 산란 직전에 그 맛과 영양이 가장 좋다. 그래서 봄 바다를 대표하는 식재료로 손꼽히기도 한다.
여성들이 봄 갯벌에서 살이 통통하게 오른 바지락을 캐고 있다. 한국음식문화포럼 김준 박사 제공
소금 간으로 시원하게 끓인 바지락국은 술꾼들의 좋은 해장국이 되고, 쑥이나 냉이 등 봄나물과 함께 끓인 바지락된장국은 봄의 풍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음식이다. 바지락을 죽이나 칼국수로 먹으면 봄철 보양식이 따로 없고, 입맛 없을 때 야채와 함께 조물조물 무쳐내는 바지락초무침이나 짭조름한 바지락젓갈 등도 밥도둑으로 한몫하는 음식들이다.

바지락은 호미나 갈고리로 갯벌을 긁어서 잡는다. 바지락이라는 이름 또한 호미로 갯벌을 긁을 때 ‘바지락 바지락’ 소리가 난다고 붙여진 것만 봐도 쉬 알 수가 있다. 지역에 따라 반지락(서해안, 전라도), 빤지락(동해안), 반지래기(경남), 바스레기(황해도)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일본에는 아사리(アサリ), 중국에는 황합(黃蛤) 또는 소합(小蛤) 등으로 불린다.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바지락을 ‘천합(淺蛤)’이라고 하여 ‘살도 풍부하고 맛이 좋다’고 기록하고 있다.

바지락은 채취 장소와 서식 환경에 따라 색깔과 무늬, 크기가 각각 다르다. 채취 도구인 호미 또한 채취되는 지역의 갯벌 상황에 따라 폭과 날이 다르다. 광주전남연구원 김준 박사는 “돌이 많은 곳에서는 호미 날이 좁으면서 길고, 물이 많고 모래가 많은 곳에서는 폭이 크고 넓적하다”고 설명했다.

바지락 코스 요리로 유명한 전북 김제의 한 식당에서 차려낸 바지락 밥상. 위에서부터 바지락찜, 바지락회무침, 바지락죽, 바지락전. 햇쑥과 된장을 육수에 풀어 넣어 끓인 바지락쑥국.
전남 고흥에서는 물이 빠진 후 갯벌에서 캐는 바지락을 ‘참바지락’, 물에 잠긴 깊은 바다에서 배를 끌어서 채취하는 바지락을 ‘물바지락’이라 부른다. 고흥반도와 내나로도, 외나로도 수로에는 물바지락이 유명한데, 내내 물에서 먹이활동을 하기에 갯벌 바지락보다 크고 통통하다. 김 박사는 “예전에 이곳 사람들은 꼬챙이에 깐 물바지락을 꿰어 해풍에 말렸다. 이를 ‘바지락꼬지’라 했는데, 나로도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음식이자 도시락 반찬이고 술안주였다”고 말했다.

바지락은 번식과 성장이 빠르고 거의 한 지역에 머무르면서 집단서식하기에 오래전부터 종패를 뿌려 키우는 양식이 발달했다. 거의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갯벌이 있는 마을에는 공동 바지락 밭을 운영하고 있을 정도다. 어떤 마을에는 집마다 바지락 밭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김 박사는 “보성이나 고흥에서는 이를 두고 ‘방천’이라고도 하는데, 일종의 ‘갯밭’이다. ‘바다 밭’이란 뜻이다”며 “농사를 짓듯 바다에서 갯것들을 기르기에 그렇게 부른다. 그래서 갯밭에서 하는 양식어업을 어민들은 미역농사·바지락농사·굴농사 등으로 부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지락 양식은 양식이라고는 하지만 생산량이 적을 때나 어린 종패를 구입해 뿌리는 정도라 갯벌이 대부분 키운다고 볼 수 있다. 서남해 갯벌 지역 어민들에게는 바지락이 가계의 큰 소득원 중에 하나다. 한때는 ‘바지락 밭 몇 개만 잘 건사하면 대학생 하나 키우는데 어렵지 않았다’고 말할 정도였다.

갯벌이 열린 서산 가로림만에서 아낙 여럿이 갯벌로 나선다. 바지락은 주로 여성들이 조성·양식·채취 등을 도맡아서 한다. 갯벌 바닥에 작은 구멍들이 송송 뚫린 것을 보고 아낙들은 “바지락이 눈 떴다”고 표현한다. 바지락이 집을 짓고 들어앉은 숨구멍을 일러 하는 말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호미를 긁다 보면 통통한 봄 바지락을 잡을 수가 있다.

이렇게 채취한 바지락은 다양한 음식으로 조리되어 봄철 입맛을 풍요롭게 돋운다. 국으로 찜으로, 죽과 칼국수, 무침과 젓갈, 부침개 등 다양한 요리에 활용된다. 바지락이 많이 생산되는 지역에는 바지락탕 냄비가 밥상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 잡기도 한다. 바지락이 밥상의 중심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갯벌 사람과 서민에게는 가장 친근하면서도 소중한 식재료 중 하나가 바지락이다.

바지락 코스 요리로 유명한 전북 김제의 한 식당에서 봄의 바지락 밥상을 받는다. 바지락을 이용한 다양한 음식들을 내는 곳인데, 바지락탕·바지락회무침·바지락찜·바지락전·바지락죽 등의 음식과 김제 특산의 백합조개찜·가리맛조개구이·갯벌굴 등과 병어회·소고기육사시미·홍어삼합 등의 음식이 차례로 밥상을 채운다.

진하면서도 개운하고 시원한 국물 맛이 조화로운 바지락탕, 탱글탱글 쫀득쫀득한 식감이 흔쾌한 바지락찜, 고소한 맛이 입안에서 오래도록 남는 바지락전, 씹을수록 온 입안을 상쾌하고 싱그럽게 하는 바지락회무침과 담담한 죽 속에 바지락살이 부드럽게 씹히는 바지락죽 등 바지락으로 조리할 수 있는 것들이 총출동한 느낌이다. 거기에 갯벌 좋은 곳에서만 난다는 백합과 가리맛, 그리고 갯벌굴 등이 더해져 밥상에서 봄바람이 살랑살랑 흥청댄다.

며칠 전에는 시장에서 봄 바지락과 햇쑥이 보이기에 바지락쑥국을 끓였다. 집안 가득 쑥 향기가 등천하고 구수한 본가의 된장육수에 감칠맛 좋은 바지락살이 어우러져 제대로 된 봄을 한 그릇 가득 만끽했다. 오랜만에 받아보는 기꺼운 봄의 밥상. 그래, 이제 봄이다. 바지락은 봄에 가장 맛있는 봄철 식재료다. 주 산란기인 늦봄부터 초여름까지는 독성이 있어 채취도 금하고 조리해 먹지도 않는다. 그래서 보기와 달리 별 이득이 없는 상황을 ‘오뉴월 땡볕의 바지락 풍년’이라는 속담으로 남기고 있기도 하다.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트위터 페이스북
관련기사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원준의 음식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