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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음식 사람 <3> 통영 ‘다찌’

그날그날 다른 ‘통영 바다 한 상’… 유치환·백석도 술잔 기울였을까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2020.02.11 19:10
- 제철 식재료로 만든 요리를
- 주는대로 먹는 술집 ‘다찌’
- 일본어 ‘다찌노미’가 어원같지만
- 통영의 고유 식문화 된지 오래
- 예술가에게도 영감 준 술집

- 해방 후 강구안 ‘민주당집’이
- 현재 다찌의 원조·원형인 듯
- 실비집들 ‘다찌’이름 걸지만
- ‘제철 식재료로 통영식 요리’
- 유지하는 가게는 몇 안돼

통영에는 ‘다찌’라고 불리는 유명한 술상 문화가 있다. ‘다찌’는 안주가 따로 없고, 주인이 그날그날 만든 음식을 주는 대로 먹는 술집이다. 술을 주문할 때마다 근처 시장에서 나는 제철 식재료로 조리한 안주가 제공되기에, 날마다 메뉴가 바뀌고 철마다 음식이 달라져 음식 헤아리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통영의 보편적 음식문화가 가장 잘 반영된 것이 ‘다찌’라는 뜻이다.
통영 다찌. 굴·멍게·전복 등 각종 해산물과 어류를 이용한 구이·찜,회, 그리고 해조류 무침이 한상에 오른다. 이상희 통영음식문화연구소장 제공
‘다찌’의 어원은 일반적으로 일본어의 ‘다찌노미’에서 유래됐다는 견해가 널리 알려져 있다. ‘선 채 마시는 일’이란 뜻으로, 우리말로는 ‘선술’ 정도 되겠다. 일본의 서서 마시는 대중 선술집 다찌노미야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다찌를 일제강점기 일본인 어항으로 번성을 이루던 시대의 일본식 술집문화 잔재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진가이자 통영음식문화연구소 이상희 소장은 ‘다찌의 유래와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다찌의 정의에 큰 오류를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말만 일본식 이름인 다찌이지, 다찌노미와는 전혀 무관한 통영 고유의 음식문화임을 쉽게 알 수가 있다’는 것이다. ‘다찌’는 간판도 없는 허름한 집에서 찬 새미(우물)에 음식을 보관해놓고 밥과 잔술을 싸게 파는 ‘실비집’에서 시작됐다. 지금으로 치면 ‘백반집’ 같은 분위기였다는 것.

한국음식문화포럼 회원들이 경남 통영의 한 다찌집에서 통영 음식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소장은 설명한다. “그 시작은 해방 후 강구안 골목에 있던 ‘민주당집’이었습니다. 그 집 주인장 남편이 당시 민주당원이라 ‘민주당집’으로 부르게 됐는데, 언제나 다양한 음식들이 나오고, 수산 관련 사람들, 정치 관련 한량들, 문화계 사람들, 지역 유지 등이 모여서 왁자하게 한 잔씩 먹고 가는 집이었죠. 여기저기서 아는 안면들이라 이 테이블에서 술 보내고 저 테이블에서 술값 대신 내고 가고. 때문에 당시 통영의 술상문화를 대표하던 ‘민주당집’을 다찌의 원형으로 잡아야 합니다.”

‘민주당집’과 함께 통영청과조합 근처에는 삼가정이 영업을 하면서 이 두 실비집이 다찌의 시작이라는 것. 그렇다면 왜 일본식 어원인 다찌란 말이 붙었을까? 해양수산경기가 좋아 흥청망청하던 시절, 당시 통영 또한 접대문화가 발달했다. 당시 일식집은 꽤 고급음식점으로 인식되던 시절이라 접대 정소로 일식집을 자주 이용했다고 한다. 특히 일식집 주방장 앞의 좌석은 주방장과 함께 일본 음식 정보를 접할 수 있고, 주방장이 제공하는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어 일식 마니아들에게는 꽤 인기가 있었다.

이 카운터석은 원래 주석(酒席)으로 들기 전 임시로 기다리던 자리다. 다찌는 ‘서서 하는 일’이란 뜻도 있지만, ‘임시로, 잠시’ 등의 뜻도 있으므로 ‘잠시 기다라는 자리’를 ‘다찌 석’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통영에서는 다찌 석에 앉아 ‘다찌 한 잔 먹었다’는 말은 ‘맛있는 음식 대접받았다’는 자랑의 의미로 통용됐다. 이 소장은 “당시 주머니가 가벼워 일식집을 못 가던 사람들이, 일식집처럼 이것저것 여러 음식을 챙겨주는 실비집을 ‘다찌 못지않다’는 뜻에서 ‘다찌 먹었다, 다찌 먹으러 가자’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이것이 지금의 다찌로 변용됐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후 실비집은 강구안 뒤쪽 ‘도깨비골목’으로 모여드는데, ‘니나노집’이라 하기도 하고 ‘방석집’이라 부르던 ‘작부집’들이 밀집되어 있던 곳이었다. 어부들이 자주 드나들었는데 안주 한 상에 술을 상자째 팔던 곳이다.

작부집이 퇴락하면서 이 골목을 실비집이 대신 채우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한양집’ ‘해거름’ ‘청주집’ 등이 유명했다. 이 방석집 문화를 이어받아 실비집 또한 ‘한 상에 얼마’씩 박스로 술을 팔기 시작하다가, 이후 지금처럼 양동이(바께스)에 담아서 나오는 방식으로 변화하게 된다.

이 소장은 “이 실비집들이 다찌란 이름을 달고 호황을 누리자 너도나도 다찌라는 이름을 단다. 음식 수도 경쟁하듯 늘려 손님들에게 제공했다. 그 중 ‘연정실비’가 통영의 모든 식재료를 활용한 대표적인 ‘다찌술상’을 차렸는데, 이 시기가 1990년대로 ‘다찌문화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고 떠올렸다.

지금은 통영에 다찌, 반다찌, 온다찌, 한 상, 두 당 만 원짜리 다찌 등 다양한 다찌가 생겨나고 분화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 통영을 대표하던 다찌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 몇 없을 뿐 아니라 그 가치 또한 훼손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통영에서 나는 제철 식재료로 그날그날 음식을 조리하되, 통영의 조리법으로 만들어내야 고유의 통영다찌다. 때문에 통영의 소중한 문화자산이자 지키고 보존해야 되는 통영의 음식문화의 고갱이라 할 수가 있다.

통영의 음식문화가 고스란히 남은 다찌는 통영 예술가들에게도 다양한 예술적 영감을 주던 장소였다. 수구초심이라던가? 통영의 예술가들도 어머니 같은 고향음식을 그리워했다. 초정 김상옥은 방풍탕평채를, 전혁림 화백은 도미찜을 그렇게 좋아 했다고 한다.

해방 후 시인 김춘수, 작곡가 윤이상, 화가 전혁림, 소설가 김용익 등이 강구안 뒷골목에서 술추렴으로 예술을 논하고, 화가 이중섭이 즐겨 술을 마시던 새미집과 방 다다미에 잉크로 그림을 그리다 주인 할멈에게 지청구를 들었던 복자집.

청마 유치환이 한술 거나해서 젓가락 두드리며 노래 부르고, 하보 장응두 시인은 단골 술집에 볼락 없다고 선 자리에서 돌아 나오던 볼락마니아였다. 백석 시인은 통영처녀 ‘난’이를 짝사랑해, 통영을 오가며 강구안 대폿집에서 청춘을 방황하기도 했다.

그런 통영의 소울푸드와 스토리가 총망라된 것이 ‘통영다찌’이자 ‘다찌문화’다. 통영의 음식문화가 녹아있고, 통영에서 생산되는 모든 음식물을 망라하여 음미할 수 있으며, 통영 예술가들의 예술적 향기가 절절하게 배어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 소장과 다찌집 원형이 그럭저럭 보존되어 있다는 ‘대추나무 다찌’에서 다찌상을 받는다. 상 전체가 음식으로 차곡차곡 빼곡하다. 방어회와 밀치회를 비롯해 호래기·굴·멍게·전복·피조개 등 해물, 볼락구이와 문어숙회, 가리비찜에다 해삼초회·해삼창자젓갈·대합으로 만든 조개유곽, 장어내장수육·생선전, 각종 해조류 무침과 과일.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백석의 시 ‘통영’ 중에서)

‘어물전에서도 금빛 털을 세우는 / 짚신게, 웬지 동리 선생 입 안에서 / 심각한 맛을 낸 / 볼락 젓, 그리고 / 멸치의 고바가 있고 / 고바보다 더 작은 치리멘도 있다.’ (김춘수의 시 ‘통영’ 중에서)

통영의 바다는 사철 풍성하다. 사계가 모두 유순하고 도타운 까닭이다. 그러하기에 다양한 통영음식이 사철 상에 올라오는 다찌가 통영에 자리 잡을 수 있는 이유다.

시인·동의대 부산음식해설사 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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