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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그 고장 소울푸드 <40> 서산 게국지

게장 국물에 묵은지 넣고 푹 끓여내니…해장에 이만한 게 없소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2019.10.15 19:28
- 서해안 태안반도 등 토속메뉴로
- 지역음식 활용한 찌개 대표적
- 게장 담가 즐겨 먹던 갯벌 주민
- 남은 국물 알뜰살뜰 챙겨뒀다가
- 푹 익은 김치와 함께 보글보글

- 겟국으로 담근 겉절이식 김치를
- 일부 지역선 ‘게국지’로 불러
- 3년은 묵혀둬야 깊은 맛 우러나

“서산이나 태안으로 가면 ‘우럭젓국’과 ‘게국지’는 꼭 맛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서해안 태안반도와 가로림만 쪽에서는 지극히 토속적인 음식이란 뜻일 게다. 다른 곳에서는 먹어보지 못하는, 독특한 맛 또한 품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겠다. 특히 ‘게국지’는 일반적으로 ‘남은 게장 국물에 묵은 김치를 넣고 찌개로 끓여낸 음식’을 말한다. 특별한 요리라기보다는 지역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식재료를 재이용한 보편적 서민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충남 해안지역에서는 예부터 드넓은 갯벌 환경 속에서 다양한 종류의 게들이 서식하고 있다. 이들 게로 조리하는 여러 음식이 발달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시원한 맛과 칼칼함이 일품인 ‘꽃게매운탕’과 꽃게 살을 발라내어 양념에 무쳐먹는 ‘무젓(꽃게무침)’ 등이다.
충남 서산시의 게국지 전문 식당에서 받은 ‘게국지 밥상’. 국물이 깔끔·담백한데, 게국지 속 박하지(돌게)가 입맛을 돋운다.
■ 게장과 게국지

서민에게 널리 사랑받았던 음식은 단연 ‘게장’이다. 갯벌에 지천인 작은 종류의 게들로 게장을 많이 담가 먹었던 것이다. 가을에 담근 ‘게장’은 겨우내 두고두고 먹었는데, 먹고 남은 게장국물에 봄동이나 얼갈이배추 등속을 겉절이 식으로 버무려 삭혀 놓았다가 찌개로 끓여 먹었다. 이를 ‘게국지’라 부른다.

‘게국지’는 서해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능쟁이(칠게)를 주재료로 하지만, 황발이(붉은발농게) 박하지(돌게) 등을 활용하기도 한다. 말인즉슨 해안에서 손쉽게 잡을 수 있는 게를 이용해 게장을 담가서 먹다가, 김장 하고 남은 허드레 채소를 게 국물에 버무려 숙성시켜 찌개로 만들어 먹었다는 것이다.

원래 서해안 지역에서 ‘게국지’는 여러 의미로 쓰인다. 게국지로 끓여낸 찌개를 이르기도 하거니와 ‘겟국(게장, 게로 담근 젓갈)’으로 담근 겉절이식 김치 또한 ‘게국지’로 불렸다.

김치로서 게국지는, 겟국에다 김장이 끝난 뒤의 상품성이 떨어지는 배추, 무 등 파치 채소에 고추, 마늘, 호박 등속과 버무려 한 달 가량 숙성시킨 음식이다. 이 게국지를 잘 삭혀놓으면 진한 겟국과 채소가 서로 어우러지면서 개운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김치가 된다.

■ 서산 사람들의 소울 푸드

서산의 시장에서 만난 박하지(돌게).게국지 재료 가운데 하나다.
‘한국향토문화대전’에 보면 ‘게국지는 충청남도 서산의 일부 지역에서만 전해 내려오는 음식으로, 겟국지 갯국지 깨꾹지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이는 게장 국물(게국), 또는 바다에서 나오는 해산물의 국물(갯국)을 넣어 만든 김치라는 뜻으로 보인다’로 기술하고 있다.

요즘은 이 게국지 김치를 추억의 별식으로도 먹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렇게 게국지를 바로바로 담가 밥반찬으로 해 먹는다는 것인데 그러나 원 게국지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게국지가 구수하고 시원한 맛을 내려면 최소한 3년 정도는 묵혀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겟국과 채소가 삭을 대로 삭아야만 본연의 게국지 맛을 제대로 맛볼 수 있다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살림이 어려웠던 시절, 서산 지역을 중심으로 충남 해안가 사람들이 마땅히 먹을 것이 없던 겨울부터 봄까지의 밥상을 책임졌던 음식이 바로 ‘게국지’였다. 특히 겨울철 부족해지기 쉬운 단백질이나 무기질 등 영양분을 섭취하는 데도 유효했던 음식이기도 하다.

■ 개운함과 감칠맛, 대단하다

서산에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게국지’ 전문 식당에 자리를 잡는다. 차림표를 일별해 보니 과연 ‘게국지’를 중심으로 음식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주저함 없이 게국지를 주문한다. 식사 시간이라 그런지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빈다. ‘게국지’ 밥상이 한 상 들어온다. 그런데 투가리(뚝배기)가 세 개다. 저마다 각각의 음식을 담고 보글보글 끓어대고 있다.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게국지’와 ‘들깨된장국’, ‘무찌개’ 등이다. 투가리마다 흥미진진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어떤 것은 갯냄새가, 어떤 것은 장국 냄새가 어떤 것은 잘 익은 김치 냄새가 등천을 한다. 반찬도 애호박 볶음, 손두부, 감자조림에 서너 가지 생채나물 등 한 상 거방지다.

‘게국지’ 한 술 떠 먹는다. 찌개라고는 하나 전체적으로 시원하게 짭조름한 김칫국 맛이 난다. 그러나 그 개운함과 감칠맛의 깊이는 대단하다. 달랑 묵은 김치, 박하지 게장 한 토막, 파만 들어갔을 뿐인데도 어쩌면 이리도 맛의 지평이 두터운 것일까?

여러 번 떠 먹으니 속이 환하게 풀리는 느낌이다. 게장 국물에 담근 김치를 푹 익혀 찌개를 끓였으니 당연하기도 하겠다. 게국지 속, 게도 씹어 먹어본다. 게장으로 먹고 남은 자투리 게라 게딱지조차도 부드럽다. 살은 조금 퍽퍽한데 양념을 고스란히 품고 있어 흥미롭다.

■ 들깨된장국과 무찌개도 별미

게국지 밥상에 함께 나오는 들깨된장국.
‘게국지’도 물론이지만 ‘들깨된장국’ ‘무찌개’ 또한 별미다. 게국지 자체가 워낙 개운한 음식이라 나머지는 간이 센 편이다.

‘들깨된장국’은 건새우, 된장, 들깨를 굵게 갈아 들깨 향이 짙고 묵직하다. ‘무찌개’는 건새우 육수로 하여 무를 오래도록 뭉근하게 조려내어 땡초로 매운 맛을 더했다. 짭조름하면서도 시원하고 매콤하면서도 구수하다. 이 세 가지 찌개를 번갈아 먹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밥이 절로 넘어간다.

무찌개.
요즘은 외지 관광객을 위한 ‘게국지’도 이 지역에서 자리 잡는 추세이다. 비교적 고급 식재료로 꼽히는 ‘꽃게’를 중심으로, 싱싱한 해물이 아낌없이 들어가기에 상당히 매력적인 음식이다. 그래서 꽃게가 들어간 게국지 또한 꽃게가 한창인 가을이 제철로 변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새로운 방식의 ‘게국지’가 곱지만은 않다. 가난했던 시절, 추억의 음식이 훼손되고 변질되는 것이 우려스러운 것이다. 그래서인지 몇몇 식당은 아직도 원래의 게국지를 고수하고 있고, 게국지의 추억이 워낙 정겹고 소중하기 때문인지 옛날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음식으로 현지인에게 크게 사랑받고 있다.

게장국물과 묵은 김치의 조화로움이 기껍게 어우러지는, 맛의 풍미가 흥미로운 음식, 게국지. 게국지’는 살림살이가 어려웠던 시절, 허드레 식재료로 만들어 먹었던 음식이었다. 게장 국물조차도 쉬 버리지 않고 알뜰하게 쟁여놓았다가 활용했던 곁들이 음식으로, 서산지역 서민의 소박하고도 지혜로움이 엿보이는 음식이기도 하다.

시인·동의대 음식문화해설사 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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