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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약한 재료에 가한 ‘폭력’…흉터로 드러난 본질

프랑스 작가 도미니크 드 비어展, 내달 2일까지 중구 갤러리 604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 | 2019.10.13 19:17
- 종이의 표면을 구멍뚫고 벗겨내
- 물질의 숨은 성질 표현하는 작업

유럽 현대미술 작가의 독특한 작품 세계와 표현기법을 볼 수 있는 전시가 부산의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프랑스의 여류 화가 도미니크 드 비어(55)가 주인공이다. 가볍고 연약한 재료에 작가의 행위로 만들어지는 다양한 질감과 표면, 그 아래 숨겨진 얼굴들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도미니크 드 비어의 ‘Alteration’. 갤러리 604 제공
갤러리 604(부산 중구 중앙동)는 다음 달 2일까지 도미니크 드 비어의 개인전 ‘Under the skin(표면 아래)’을 개최한다. 100여 점의 드로잉을 포함해 회화 및 부조 작품 127점을 선보인다. 조나단 글래이저 감독의 동명 영화에서 인용한 이번 전시 제목은 모든 사물의 껍질(겉모습)보다 표면 아래에 있는 본질이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도미니크의 한국 개인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작가는 프랑스 파리 국립예술학교인 에콜 드 보자르 출신으로 유럽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1994년 점자(點字)를 배우면서 작업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작가는 여러 종류의 종이를 사용하는 섬세한 평면 작업과 종이 표면에 구멍을 뚫을 수 있는 도구를 직접 발명해 사용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그림의 본질과 창의적인 작업 과정을 탐구하는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해왔다.

‘Digression’.
작품 제작 과정은 이렇다. 작가는 자연 상태이거나 왁스를 입힌 나뭇잎에서부터 카본지, 종이상자, 폴리스티렌(스티로폼) 등의 폐품 위에 직접 촬영한 사진을 인쇄하거나 색을 칠한다. 그리곤 그 위에 펀치, 바늘, 메스, 스파이크 사다리, 부츠 등 직접 제작한 다양한 도구를 반복적으로 사용해 구멍을 뚫고 벗겨낸다. 이렇게 하면 이미 그려진 형태와 색은 뭉개지고 종이 위엔 다양한 형태의 흉터가 남는다. “종이에 천공, 타격, 연마, 박리 등 일종의 ‘폭력’을 행사해 재료의 두께와 뒷면의 존재를 보여주려 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불확실한 과정을 거친 결과 작품은 별이 빛나는 하늘, 미지의 대륙 지도, 스테인드글라스의 창 등 수수께끼 같은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 종이는 단순한 작품의 재료가 아니다. 작품의 주제와 작가의 생각을 표현하는 필수적이고 물질적인 요소이다. 그 자체로 독립적이며, 주제가 되는 동시에 변화의 대상이자 과정이고 완결성을 갖는다. 전시작을 모두 감상하고 나면 전시 제목의 의미를 공감하게 된다. 종이의 저향력과 파손성을 활용해 재료의 두께를 가시화하고 잘 보이지 않는 종이 뒷면의 존재를 알려준다.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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