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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그 고장 소울푸드 <36> 기타큐슈시 선술집 ‘카쿠우치’

그 시절 강제동원 노동자처럼 선채 술 한 잔 털어 넣는다, 속이 쓰다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2019.08.13 18:58
- 태평양전쟁 무기 재료 생산한
- 전범기업들 다수 소재한 도시
- 많은 조선인 강제 노역 동원돼

- 요즘 유행 ‘편의점서 맥주’처럼
- 주류 판매장 한 모퉁이에 서서
- 잔술 마시는 ‘카쿠우치’ 번성
- 오래 머물거나 많은 동행 삼가야

- 고쿠라 시내 남아있는 노포 주점
- 소시지·어포·통조림 안주 갖춰
- 생선조림·계란말이·장아찌 등
- 간단하게 만든 것 내놓는 곳도

태평양전쟁을 수행한 일본의 전범 기업이 다수 소재했던 일본 규슈 지역의 기타큐슈시를 방문했다. 일본이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불만을 품고,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으로 반도체 관련 소재 수출허가제와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 카드로 한창 으름장을 놓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기타큐슈 중에서도 전범 기업 소재 지역과 관련 유산 등을 둘러보았는데, 야하타의 ‘야하타제철소’, 와카마쓰의 ‘미쓰비시 기타큐슈 지점’, 무명의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한데 묻혀 있는 ‘오다야마 묘지’ 등이다.
일본 규슈 기타큐슈시의 카쿠우치인 ‘히라오주점(平尾酒店)’에서 주인장(왼쪽)이 간단한 소시지 안주를 장만하는 모습을 최원준 시인이 보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강제 동원된 조선 사람이 가장 많이 노역했던 곳이 규슈 지역으로, 나가사키현, 후쿠오카현 등이 그곳이다. 더 구체적으로 보면 ‘군함도’라 일컫는 나가사키의 하시마섬 탄광(전범 기업 미쓰비시가 운영했다), 신일본제철(현재 대한민국 대법이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내린 기업 중 하나이다)의 기반이 됐던 기타큐슈의 야하타제철소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기타큐슈시는 일본 규슈 동북단에 자리한 전형적인 공업도시로, 고쿠라·와카마쓰·야하타·도바타·모지 등 5개 도시를 통합해 만든 광역도시다. 일본 중공업의 발상지이면서 태평양전쟁을 앞장서 수행한 전범 기업들의 석탄 및 제철 관련 산업이 발달했던 곳이다. 그중 야하타제철소는 태평양전쟁 시기 밤낮으로 전쟁에 필요한 무기 재료인 철을 생산했다. 하루 3교대로 수많은 노동자가 열악한 환경에서 노역했는데, 당시 조선인 강제 동원 노동자 다수도 이곳에서 강제 노역을 해야 했다.

■우리의 ‘가맥’과 ‘편맥’ 떠올라

카쿠우치 ‘아카카베주점(赤壁酒店)’의 계란말이 안주와 잔술.
기타큐슈 지역에는 조선인 노동자가 이용한 독특한 선술집 ‘카쿠우치(角打ち)’가 번성했다. 주머니 가벼운 노동자들이 고된 하루 노동의 피로를 털어내고 가볍게 한잔하던 술집이 카쿠우치였다. 카쿠우치는 주류 판매장 한 모서리에 서서 간단하게 잔술 한 잔 마시는 곳을 말한다. 선 채 한 잔 독한 술로 극한의 노동을 위로받던 곳이다. 일본의 ‘서서 마시는 술집’을 다찌노미야(立ち飮み屋)라고 하는데, 서서 간단하게 한 잔 마시는 구조는 비슷하다.

그러나 다찌노미야는 술을 마시러 방문한 고객을 접대하는 서비스업이다. 카쿠우치는 주류 및 잡화를 판매하는 가게 개념인데, 매장 안 자투리 공간에 간단하게 술맛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해 놓은 곳이라는 데 차이점이 있다. 가게 한쪽 빈 곳에서 병술이나 잔술 그리고 통조림이나 포장된 건어물 등을 사서 한 잔하는 식이다. 우리로 치자면 구멍가게, 점방 같은 곳의 평상에서 오징어나 땅콩, 참치캔 등을 앞에 놓고 소주나 막걸리 한 잔 마시고 가는 식이다. 최근 젊은 층에서 인기를 끄는 ‘가맥(가게 맥주)’이나, ‘편맥(편의점 앞 파라솔에서 먹는 맥주)’ 등과 유사할 수도 있겠다.

‘카쿠우치’라는 말은 원래 ‘모서리(角) 치기(打ち)’란 뜻이다. ‘술을 마스(ます, 升)의 모서리(角. 카쿠) 쪽으로 마시는데, 그 모서리가 미간을 친다(打ち. 우치)’고 해서 쓰인 말이다. ‘마스’는 액체·곡물 등을 계량하는 그릇을 뜻한다. ‘됫박’쯤 되겠다. 일본은 예부터 술을 술독에서 퍼내 일정량 되로 재서 팔았다. 모주꾼들은 그 술을 사가기 전, 선 자리에서 마스로 한 잔 맛보기도 했는데 그때 마스 모서리로 술을 마신 것이 ‘카쿠우치’의 유래가 됐다. 그 외 ‘가게의 구석(카쿠) 자리에서 마시기에’ ‘술집이 많은 길이 교차되는 허름한 한 모퉁이(카쿠)에 있어서’ 등의 유래를 대기도 한다.

■“노동자의 생활과 밀접”

기타큐슈시에 있는 야하타제철소 히가시다 용광로 제1고로 사적 광장(위)과 그 안에 조성한 노동자들의 모습.
기타큐슈시립대 마쓰 유토 교수의 글에 따르면 ‘기타큐슈 내 주점 280곳 중 100여 곳이 카쿠우치를 할 수 있는 곳’이다. 또 카쿠우치에는 기타큐슈 공업 지대의 역사가 관련돼 있다.

마쓰 유토 교수는 “1901년 야하타제철소 개업을 계기로 카쿠우치가 번성하는데, 24시간 교대로 일하는 노동자들이 지친 몸과 마음을 위안받던 곳이었다”고 설명한다. 기타큐슈시에는 카쿠우치를 기타큐슈의 지역문화로 인식하고, 연구·보존하는 ‘카쿠우치문화연구회(角文硏·카쿠분켄)’라는 민간단체가 있다.

이 단체는 카쿠우치 문화와 지역별 유명 카쿠우치를 소개하는 책자를 발간·배포하고, 카쿠우치를 순례하는 모임을 만들어 카쿠우치를 기타큐슈 지역의 독특한 노동자 문화 자산으로 가꾸고 있다. 노동자의 땀과 눈물, 애환이 묻은 기타큐슈의 카쿠우치를 취재하면서 이곳으로 유난히 많이 끌려왔던 조선인 강제 동원 노동자들의 지친 퇴근길을 생각했다.

이 단체는 카쿠우치 에티켓도 소개한다. 카쿠우치는 술을 서비스하는 본격 주점이 아니기에 과도한 요구는 자제하고 오래 머물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30분에서 1시간이 적당하다.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하지 않도록, 많은 인원의 동행은 삼가야 한다. 이곳은 지역 사람이 하루 일을 마무리하고 찾는 사교장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웃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배려도 필요하다.

■그날 그곳 소주 맛은 쓰디썼다

고쿠라 시내의 카쿠우치 몇 곳을 찾았다. 노동자들이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 달랬던 곳에서, 그들의 신산했던 마음 한쪽이라도 느낄 수 있을까 해서다.

이 지역으로 강제 징용돼 왔던 우리 동포의 힘겨운 뒷모습도 상상해보았다. 고쿠라 시내 기타큐슈다이이치호텔 근처 카쿠우치 ‘히라오주점(平尾酒店)’에 든다. 여주인장이 온화하게 맞이하며 대화도 곧잘 받아준다. 카쿠우치를 취재하러 왔다고 하니, 카쿠우치 소개 책자를 건넨다.

대표 안주가 ‘소시지’인데, 소시지에 양파를 넉넉히 올리고, 마요네즈와 식초로 간을 한 음식이다. 새콤하고 고소한 맛에 여름철 시원한 맥주와 함께 곁들여 먹으면 좋겠다. 다양한 어포와 통조림 등도 구비해 놓았다.

아카카베주점(赤壁酒店)은 ‘고쿠라의 부엌’ 탄가시장(旦過市場) 안에 있는 카쿠우치로, 원래 고쿠라 연병대 마구간의 목재를 이용해서 지은 노포이다. 현재 4대째 운영 중인데, 아들이 돕고 있으니 곧 5대째가 되겠다. 전형적인 주류 판매점 성격을 고스란히 가진 곳으로, 각양각색 주류가 가득하다. 호주머니에 든 동전으로도 한 잔 술을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하고 서민적인 곳이다.

대표 안주는 고쿠라의 명물 음식 누카미소다키. 고등어, 정어리 같은 등 푸른 생선을 쌀겨를 섞은 미소된장 양념으로 졸여서 만드는 생선조림이다. 그 외에도 계란말이, 어묵, 채소장아찌 등 간단한 안주를 낸다.

야하타제철소에는 우리나라 강제징용 피해자들도 다수 근무하며 고된 노동을 강요당했을 터이다. 직접적인 자료는 찾지 못했으나, 이들 또한 혹독한 현실과 암담한 미래를 떠올리며 카쿠우치에서 독한 술 한 잔으로 잠시나마 시름을 내려놓았을 것만 같다. 그 생각을 하니 카쿠우치에 머문 시간과 오다야마 묘지의 ‘조선인 조난자 위령비’의 적막한 풍경이 무겁게 다가왔다.

카쿠우치 안에서 쓰디쓴 고구마 소주 한 잔 털어 넣는다.

시인·동의대 음식문화해설사 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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