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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바다…인문학으로 항해하다 <27> 재일 한인 역사자료관을 소개합니다

재일한인, 한국과 힘 합쳐 그들의 역사를 보존·공유하다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2019.07.11 19:39
- 1980년대 후반 일본에서는
- 재일한인의 삶을 증명할 기록을
- 모으고 정리해야 한다는
-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 그 중심에 있던 박경식의 뜻은
- 2000년대 들어서야 구체화됐고
- 재일한인 역사학자 강덕상 등이
- 모국 정부·학자 등과 힘 합쳐
- 마침내 재일한인 역사자료관을
- 2005년 도쿄에 설립했다

-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 온갖 생활용품과 기록·증언이
- 소박하고 담담하게 전시됐다

일본 도쿄 신주쿠(新宿)에서 멀지 않은 곳에 미나미아자부(南麻布)라는 동네가 있다. 주변에 각국 대사관과 고급 주택이 즐비한, 도쿄에서도 세련된 지역 중 하나로 알려진 동네이다. 이 동네 한쪽에 조금 이질적인 공간이 존재한다. 바로 ‘재일한인 역사자료관’이다. 재일본 대한민국 민단(민단) 중앙본부가 들어선 한국중앙회관의 별관에 위치하며 ‘100년의 역사를 후세에게’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재일코리안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다.
일본 도쿄 미나미아주부에 자리 잡은 재일한인 역사자료관의 입구 모습. 일본 위키피디아
재일한인 역사자료관은 전시공간(실내·실외)뿐만 아니라 도서·영상 자료실, 세미나실을 갖추고, 재일코리안의 역사를 다양한 자료와 방법으로 전하고 있다. 웅장하고 화려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오히려 소박함과 잔잔함에서 나오는 힘을 가진다는 느낌을 준다. 필자가 처음 이 자료관을 알고 방문했을 때의 감상은 이러한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재일코리안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공간이 도쿄 시내 한복판에 존재하다니! 그리고 놀라움에 이어 한 가지 궁금한 사실이 생겼다. 오랜 기간 일본 사회에서 편견과 차별의 대상이 되었던 재일코리안의 삶이 어떻게 ‘공공’의 공간에서 전시될 수 있었는지 말이다.

■시작과 좌절

재일한인 역사자료관이 소장한 사진 가운데 1960년대 재일 코리안들의 건국학교.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재일코리안 1세의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이들의 역사, 특히 개인이 남긴 일기나 편지 같은 각종 기록, 증언을 체계적으로 모으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재일코리안 사회 내부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이러한 목소리가 구체적인 움직임으로 이어진 것은 1990년대 중반 재일코리안 역사학자 박경식 선생에 의해서였다.

경북 봉화 출신으로 1920년대 후반 부모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일본 사회에 강제동원 문제를 공론화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박경식 선생은 “앞으로 재일동포들이 살아가는 데 마음의 양식이 되고 희망적인 미래를 전망할 수 있도록 재일코리안의 올바른 역사를 다루는 종합적인 시설이 필요하다”며 ‘재일동포 역사자료관 구상’을 제안하였다. 그의 제안에 뜻을 함께하는 재일코리안 유지들이 생겨났다. 이 중에는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재일코리안 기업가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재일동포 역사자료관 설립준비위원회를 만들고 회원 모집과 모금 활동에 힘썼다. 모금도 중요했지만, 재일코리안 1세들이 가진 자료는 시간이 지나면 모을 수 없다는 초조함이 있었기에 일본 전역에서 회원을 늘려 자료를 수집하는 데 많은 노력을 쏟았다. 그러나 일본 경제의 버블이 꺼지면서 재일코리안 기업가의 재정적 지원을 기대하기 힘들어졌고, 무엇보다 박경식 선생이 교통사고로 급서하면서 ‘재일동포 역사자료관 구상’은 멈춰 섰다. 자료관 설계도까지 나온 상황에서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다.

■다시 시작 그리고 설립

일본에서도 활동한 춤 예술가 최승희와 마라토너 손기정 선수가 함께 찍은 사진. 재일한인 역사자료관의 소장품이다.
좌절되었던 자료관 설립 움직임은 다행히 2000년대 들어 민단에 의해 다시 시작됐다. 일본 국적 취득자 증가, 일본인과 혼인 증가, 청년층의 민족 정체성 약화 등 재일코리안 커뮤니티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비전 제시에 고심하던 민단은 2000년 ‘21세기 위원회’를 만든다. 바로 여기에서 재일코리안의 역사를 전시하기 위한 자료관 설립의 필요성이 다시 제기된 것이다.

2003년 공식적으로 재일동포 역사자료 조사위원회가 만들어졌고, 일본 전역 민단 지부가 협력하는 형태로 해방 60주년인 2005년 자료관 개관을 목표로 활동을 시작한다. 같은 해, 민단은 대한민국 정부와 면담하고 자료관 설립에 대한 지원을 요청해 동의를 얻어냈다. 한편, 재일한인 역사자료관 설립 과정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한 또 한 명의 재일코리안 역사학자가 있다. 바로 강덕상 선생이다.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곧바로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한국 근현대사 연구를 전문으로 하면서 박경식 선생의 ‘재일동포 역사자료관 구상’을 잘 이해했다. 그는 재일코리안뿐 아니라 일본인 학자·문화인·시민과 연대해 관련 자료 수집에 힘썼고, 2005년 11월 ‘재일한인 역사자료관 개관’과 더불어 초대 관장으로 취임한다.

■내년이면 개관 15주년

내년이면 개관 15년이 되는 재일한인 역사자료관은 상설전시를 통해 일본을 향한 도항(渡航)부터 의식주 생활상, 일본 사회에 대한 투쟁 등 역사를 망라하여 보여준다. 재일코리안 1세가 직접 썼던 여행 가방, 요강, 빨랫방망이 등 생활용품과 외국인등록증, 학교 성적표 등을 기증받아 전시한다는 점도 큰 특징이다. 이러한 전시 방법을 택한 이유는 어려운 말이나 자료가 아니라 누가 봐도 알기 쉬운 형태로 재일코리안 역사를 공유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재일한인 역사자료관은 다양한 주제의 특별전을 열고, 지역을 돌면서 전시를 진행하며 더 많은 사람이 재일코리안이라는 존재를 알고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한다. 2012년에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도 속의 아리랑’이라는 특별전을 열었다. 재일한인 역사자료관이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오늘날에 이르게 된 데는 재일코리안 커뮤니티의 노력이 가장 컸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와 더불어 모국의 지원과 일부이기는 하지만 일본 시민과의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러한 과정이야말로 모국 사회와 정주국인 일본 사회를 동시에 살아가는 재일코리안의 모습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겠다.

■한 번쯤 들러보시길

1990년대 들어 세계에 많은 이민박물관이 설립됐다. 미국의 엘리스 아일랜드 이민박물관(1990년), 호주 멜버른 이민박물관(1998년), 피어 21 캐나다 이민박물관(1999년), 프랑스 이민사 박물관(2007년)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유행’은 박물관을 통한 이민의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편견을 없애고 미래지향적인 관계 구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벌써 여러 세대에 걸쳐 일본 사회에 뿌리내린 재일코리안 또한 실질적으로는 이민에 가까운 존재라는 점에서 재일한인 역사자료관은 이민박물관의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다른 나라 사례와 달리, 정주국 일본이 아닌 민단이라는 민족단체 주도로 모국 한국과 협력 속에 탄생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물론 이는 일본 사회에서 재일코리안이라는 존재가 여전히 ‘승인’ 받지 못함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긴 호흡으로 역사 흐름을 본다면 도쿄 시내 중심에 재일한인 역사자료관 같은 공간이 탄생한 것 자체는 큰 변화라고 할 수 있겠다. 바다를 건넌 재일코리안의 역사를 공유하는 장으로서 역할이 더욱 빛나길 바란다. 국적 민족 젠더 나이와 상관없이 더 많은 사람이 재일코리안의 삶을 공유하였으면 좋겠다. 국제적인 인구 이동이 늘면서 다양성 인정과 함께 서로를 존중하기 위한 보편적인 기준이 절실한 글로벌화 시대. 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영감을 재일코리안의 삶을 공유함으로써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도쿄에 갈 일이 있다면 재일한인 역사자료관을 한 번쯤 들러 보길 권한다.

최민경 부경대 HK 연구 교수

※ 공동기획:부경대 HK+ 사업단,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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