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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그 고장 소울푸드 <33> 진주냉면, 의령소바

교방 특식 진주냉면, 서민 한 끼 의령소바 … 태생 다른 경남 메밀음식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2019.07.02 18:45
# 교방문화의 꽃 ‘진주냉면’

- 기생 교육소 교방청의 연회음식
- 일제강점기 해체돼 일반에 보급
- 건새우 다시마 등 해물로 육수
- 잘게 썬 소고기육전 듬뿍 얹어내

# 한국식 메밀국수 ‘의령소바’

- 의령전통시장 식당 4곳서 명맥
- 주말엔 전국 식도락가 몰려들어
- 장조림 시금치 단출한 고명 조합
- 멸치장국 말아 먹는 온소바 원조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장마가 시작되는 모양이다. 장마 때는 유독 사람 마음이 간사해진다. 후덥지근한 기온 탓에 시원한 것을 먹고 싶다가도, 습도가 높아 불쾌지수가 올라가면 뜨끈뜨끈한 국물 음식이 당기기도 한다.
해물로 육수를 내고 소고기 육전을 넉넉히 올린 진주냉면(왼쪽)과 뜨끈한 멸치장국에 면을 말아 소고기 장조림, 시금치, 파, 고춧가루를 곁들인 의령소바.
이럴 때 안성맞춤이 메밀로 만든 음식이다. 메밀은 찬 성질을 가진 곡물로 인체의 열을 내려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하기에 메밀음식을 적당히 먹으면 여름을 시원하고 건강하게 나는 데 도움이 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우리 ‘민족 음식’이자 북한의 ‘국민 음식’으로 사랑받는 냉면이 있고 강원도 향토 음식 막국수와 메밀전병, 메밀전, 여름철 즐겨 먹는 메밀국수류 등이 있겠다. 부산에는 발국수, 모밀국수라고 부르는 일본의 자루소바가 여름철 별미로 꼽힌다.

메밀은 흉년이 들 때를 대비해 구황작물로도 널리 재배됐다. 주로 함경도나 강원도 등지의 거친 땅이나 산간에서 재배되는데, 추위 속에서도 비교적 잘 자라고 파종과 수확 사이 기간이 짧아, 많은 이의 시장기를 덜어준 고마운 곡식이기도 했다.

때문에 자급자족이 어렵거나 흉년이 두려웠던 시절 우리나라 어디에서든 메밀을 재배했다. 한때 서부 경남의 산간지역에서도 이 메밀을 재배했는데, 이를 증명이나 하듯 진주에서는 냉면을, 의령에서는 메밀국수를 오래전부터 먹어 왔다고 지역민들은 전한다.

■의령·진주로 메밀음식 기행

의령소바(냉소바)
‘진주냉면’은 ‘교방음식문화의 꽃’으로 불리며 고급 음식으로 여겨졌고, ‘의령소바’는 서민의 음식으로 시작해 발전한다. 비록 두 음식의 태생은 조금씩 다르지만 메밀을 식재료로 한 음식으로, 현재는 그 지역 대표 향토음식으로 자리매김했다는 공통점이 있겠다. 이러나저러나 장맛비가 시작되어 후덥지근한 날, 종일 내리는 빗속에서 서부경남의 메밀음식을 찾으러 휘적휘적 길을 나선다. 진주의 냉면과 의령의 소바를 함께 만나볼 심산인 것이다.

진주는 경상남도의 유서 깊은 도시다. 조선 시대에는 진주목(晋州牧)이 소재했던 경남의 행정, 군사, 문화 중심지였다. 그런 연유로 기생을 교육하고 관리하는 교방청(敎坊廳)이 설치됐고, 교방청에서 비롯된 교방문화가 현재 진주 전통문화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중 하나가 교방음식문화인데, 조선 시대에는 어명을 받든 관리가 한양에서 내려오면 이들을 접대하기 위한 연회가 베풀어지곤 했다. 이때 기생들의 가무와 함께 진주 교방청의 연회음식이 화려하게 펼쳐졌다. 그 중심에 섰던 음식이 ‘칠보화반(七寶花飯)’, ‘꽃밥’이라 일컫는 ‘진주비빔밥’, 해물 육수향이 진한 ‘진주냉면’이었다.

당시 ‘북에 평양기생, 남에 진주기생’이라 할 정도로 진주 교방청 소속 기생은 가무와 미색이 뛰어났고 교방의 음식은 화려했다고 한다. 그중 ‘진주냉면’은 평양냉면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던 음식. 그래서 ‘북에는 평양냉면, 남에는 진주냉면’이라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

■중앙공설시장 화재로 위기 맞아

진주냉면(비빔냉면)
일제강점기에 일제에 의해 교방청이 해체되자 민간 기생조합인 권번이 들어서면서, 교방청 음식을 담당하던 요리사인 숙수가 일반인에게도 진주냉면을 제공하게 되는데, 당시 기생과 지역 권력가, 재력가들이 야참으로 즐겨 먹던 음식 중 하나였다. 이렇게 진주냉면은 대중화 과정을 거치다가 1960년대 들어서는 진주 향토음식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러나 진주 중앙공설시장의 화재로 인해 시장 주변에 집단화돼 있던 냉면집들이 거의 소실돼 버리고 그 명맥이 끊기게 되는데, 이후 2000년대에 들어 진주시에 의해 향토음식으로 다시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진주냉면의 대표 격인 곳에 들어선다. 장맛비 속에서도 냉면을 먹는 손님으로 가게 안은 북새통을 이룬다. ‘물냉면’과 ‘비빔냉면’을 주문한다. 진주냉면은 소고기 육수나 동치미 육수를 쓰는 평양냉면과 달리, 주로 해물을 이용한 육수를 쓴다는 점에서 크게 구분된다. 진주냉면은 메밀과 고구마 전분을 일정량 배합하여 면을 뽑고, 멸치, 명태 대가리, ‘디포리’(밴댕이), 건새우, 건홍합, 다시마 등 해물로 육수를 낸다. 고명으로는 배, 오이, 계란 지단, 편육과 함께 계란을 입혀 지져낸 소고기 육전을 잘게 채 썰어 넉넉히 올리는 것이 특징이다.

지역 사람들은 “달걀옷을 입혀 부친 육전의 고소한 맛이 시원하고 진한 해물육수와 어우러져 면과 함께 곁들여 먹으면 평양냉면과는 다른 특별한 맛을 볼 수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해물육수는 전반적으로 간이 세고 진하다. 그리고 육전의 기름기가 육수에 흘러 들어가 자칫하면 느끼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육전은 다른 그릇에 따로 두었다가 면을 먹을 때에 곁들이면 좋겠고, 육수에는 약간의 식초와 겨자를 넣어 먹으면 훨씬 개운하고 은근한 진주냉면을 맛볼 수 있겠다.

■비 오는 날에도 맛있다!

진주를 떠나 의령으로 향한다. ‘의령소바’는 음식 이름 그대로, 의령의 일본식 메밀국수이다. 해방 이후 일본에서 의령으로 돌아온 귀환 동포 여인이 먹을 것이 마땅찮은 마을 사람들에게 일본의 소바를 우리 식으로 팔았던 것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의령에는 의령전통시장을 중심으로 4집 정도의 유명한 소바집이 영업하고 있는데, 휴일만 되면 이 소바 한 그릇을 먹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식도락가들이 몰리는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현지 주민이 많이 찾는 소바집에 들어선다. 기존 ‘온소바’ ‘냉소바’ ‘비빔소바’에 최근 비빔소바에 냉육수를 자작하게 부어넣은 ‘섞어소바’까지 가세했다. 원래 의령소바의 원형은 뜨거운 멸치장국에 말아 먹는 온소바. 온소바를 주문한다.

김이 솔솔 나는 온소바 위에 결대로 잘게 찢은 소고기 장조림과 시금치, 채 썬 파가 고명으로 단출하게 올려지고, 약간의 고춧가루가 식욕을 더한다. 종업원이 “온소바는 빨리 퍼지니까 어서 드시라”고 채근이다. 밀가루의 배합이 조금 높은가 보다.

뜨끈한 육수를 한 모금 마신다. 멸치육수의 개운함과 온몸으로 퍼지는 온기가, 높은 습도의 날씨에 나쁘지 않다. 후루룩~! 한 젓가락 크게 입에 넣는다. 매끄러운 면이 입안에서 살살 감긴다. 쫀득하면서도 부드럽게 씹히는 것이 편안하다. 고명으로 올린 시금치와 함께 먹어본다. 씹을수록 메밀 면은 고소해지고 고명의 시금치는 특유의 흙내를 슬슬 풍겨 묘하게 어울린다. 가게 밖에는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이 또한 잘 어울려 참 좋다. 잘게 찢은 장조림과도 함께 맛본다. 담박한 국수에 짭조름한 장조림의 조합도 꽤 괜찮다. 뜨끈한 소바 국물을 다시 한번 들이켜곤 그릇을 비운다.

오랜만의 장맛비 속 메밀음식 기행. 비 오는 날, 막걸리에 빈대떡, 파전만큼이나 흔쾌한 조합이다. 부산으로 오는 길. 여름 음식, ‘부산의 밀면’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그래, ‘음식은 그 지역의 역사와 지역 사람의 기질을 담는 그릇’이라는 점, 여름 장맛비 속에서 새삼 느끼게 된다.

시인·동의대 음식문화해설사 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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