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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그 고장 소울푸드 <31> 영광 법성포 굴비

짭조름 보리굴비 한 점, 냉수에 밥 말아 한술 … 여름철 최고의 호사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2019.06.04 19:18
- 참조기 염장·건조한 슬로푸드
- 두고두고 꺼내 먹는 ‘최고 밥도둑’
- 예부터 칠산 바다 조기 어업 성황
- 인기 진상품이자 세금으로 내기도

- 찌고 굽고 조리고 탕·젓갈까지
- 귀한 굴비 밥상으로 기력 회복을

굴비(屈非). 그 이름이 독특하다. ‘굽을 굴(屈), 아닐 비(非)’, ‘굽지 아니한다’ ‘굴복하지 않겠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굴비’는 잘 알다시피 ‘조기’를 염장해 말린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염장 건조한 조기, ‘굴비’가 어떻게 ‘屈非’란 이름과 뜻을 가지게 된 것일까? ‘굴비’는 고려 인종 때 반역을 도모했다가 전라도 영광으로 유배된 이자겸이 ‘굴비’의 특별한 맛을 보고는 임금께 진상하면서 ‘해배(解配, 유배에서 해제함)를 위한 아부’가 아니라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의미로 ‘굴비(屈非)’라는 글씨를 써 보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된다.
시장에 늘어놓은 영광 법성포 굴비
■참조기 수조기 보구치…

조기는 농어목 민어과 어종으로 우리나라 연안에는 참조기, 수조기, 보구치(백조기), 부세 등 10여 종이 서식한다. 참조기는 서해 칠산 앞바다와 연평도 부근에서 주로 잡히고, 수조기는 부산, 목포, 인천 등 서남해 해역에서, 보구치는 남해에서 주로 잡힌다.

굴비매운탕과 다양한 굴비 음식.
‘고금석림(古今釋林)’에는 “조기는 머리에 돌이 있어 ‘석수어(石首魚)’라 하고, 그 속명은 ‘조기’인데 임금이 피란길에 먹은 생선이 맛있어 나중에 이름은 모르고 머리에 돌이 들어 있는 것을 기억해 ‘석수어’라 했다”고 전한다.

‘기력을 돕는다’ 하여 한자로 ‘조기(助氣)’라고도 표현하는 조기는, 살이 연하고 맛이 좋아 구워 먹고, 지져 먹고, 찜 해 먹고…. 탕으로, 젓갈로, 회로, 다양하게 조리되면서 사랑을 듬뿍 받아온 어종이다. 그 때문에 여름철 입맛 없을 때 두고두고 꺼내 먹는 귀한 음식으로 대접받아왔다. ‘한국수산지’(1908)는 “석수어는 경남도 마산 서북으로부터 평안도에 이르는 연해에서 나고, 조선인이 가장 ‘즐겨하는’ 어류의 하나인데, 관혼상제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물품”이라고 적었다.

■조기로 세금을 내기도

조기 살이 부드러운 굴비전.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원 김준 박사는 “춘삼월에 서해로 북상을 시작한 조기는 칠산 바다를 지나 오뉴월이면 해주(황해도)와 진남포(평안남도) 앞에까지 올라갔다”며 “조기가 지나는 길목의 섬이나 어촌 마을 후미진 해안 모래밭에는 초막을 지어 놓고 술과 웃음으로 뱃사람을 유혹하던 이들이 자리 잡을 정도로 조기 어업은 큰 산업이었다”고 말한다.

김 박사는 또한 “여러 실록과 고문헌을 보면 조기는 제수용품, 진상물품, 하사품, 조세물품, 약재 등으로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쓰였다. 특히 조선 초기부터 조기는 국가의 중요한 재원이었는데, 농사를 짓는 땅의 세금이 쌀이라면 바다의 중요한 세원은 ‘조기’였고 실제로 세금을 조기로 납부하기도 했다”고 설명한다.

이 가운데 참조기를 소금에 절여 말린 것을 일컬어 ‘굴비’라 한다. 바다의 기운을 가득 품은 참조기가 대자연의 기운을 응축해 품은 소금과 함께, 오랜 시간 어우러지고 뒤섞이면서 최고의 ‘슬로푸드’로 탄생한 것이 바로 굴비이다.

■“칠산 바다에 돈 실로 가자”

보리굴비를 찢어 고추장에 버무린 고추장굴비.
그리하여 ‘굴비’란 말속에는 변하지 않는 가치, 귀하게 오래 보존하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이 숨어 있다. 그중 ‘보리굴비’는 굴비 밥상 중 최고 반열로 꼽힌다. 간수를 뺀 소금에 알이 통통한 참조기를 켜켜이 쟁여 말리기를 수차례, 그리고는 보리 뒤주에 몇 달 넣어두었다가 여름철 입맛 없을 때 두고두고 꺼내 먹는 귀한 음식이 ‘보리굴비’인 것.

특히 법성포 인근 칠산 바다에서 곡우를 앞뒤로 산란 직전 알배기 조기를 잡아 만든 보리굴비는, 임금의 수라상 정중앙을 차지할 정도로 ‘인기 진상품’이었다. 서해 칠산 바다의 조기와 영광 염전의 천일염이 합일하여 만들어낸 음식이 ‘영광 굴비’라 하겠다.

영광 법성포. 굴비의 원산지로 모든 것이 굴비와 관련되는 곳이다. 전국에 유통되는 굴비 대부분을 생산하는 법성포는 굴비 공장, 굴비 판매장, 굴비 전문 음식점 등으로 시가지를 이루고 있다. 한때 법성포에 파시가 서면 충청도와 전라도 일대의 어물상이 물려와 북새통을 이루던 전라도 최고의 포구였다. 마을 노인들 말로는 “봄에 파시가 서면 조기 어부들 주머니가 두둑해져, 나라 안의 ‘작부’(술집에서 술 시중들던 여성을 뜻했던 옛말)는 죄다 법성포로 모이고, 강아지도 돈을 물고 다녔다”고 한다.

“돈 실로 가자~ 돈 실로 가자~ 칠산 바다에 돈 실로 가자.” 조기 어부들이 부르던 뱃노래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겠다.

■굴비밥상, 맛의 대향연

굴비구이
굴비밥상을 받는다. 보리굴비, 고추장굴비, 굴비매운탕, 굴비구이, 굴비조림, 굴비전, 굴비젓갈…. 굴비로 내는 음식이 다 모였다. 소주 한 병에 다양한 굴비음식을 맛본다. ‘시간이 만든 음식’이라 맛의 깊이가 여느 음식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먼저 ‘굴비구이’를 젓가락으로 집어 든다. 숯불에 노릇노릇 잘 구워진 굴비 냄새에 입안 가득 침이 고인다. 입에 넣자마자 고소함이 넘쳐난다. 씹을수록 적당한 식감의 짭조름한 고소함이 오래도록 입에서 넘쳐난다.

‘고추장굴비’는 보리굴비를 찢어 고추장에 버무린 것으로, 들큼한 첫맛과 함께 씹을수록 구수함이 기껍다. 굴비살을 발라 전으로 구운 ‘굴비전’은 제법 두툼한 조기 살이 부드럽게 포슬포슬하다. 이들 모두 간식 삼아 술안주 삼아 곁들여도 좋겠다.

‘보리굴비’는 짭조름하면서도 끝 간데없는 구수함이 일품이다. 여름날 냉수에 밥을 말고 보리굴비 한 점 올려 먹으면 최고의 호사였다. 그 때문에 양반집 어른들이나 기력 회복용으로 먹던, 귀하디 귀한 음식이었다.

■그 맛과 문화 잘 보존해야

‘굴비매운탕’은 짭조름하면서도 쿰쿰해, 이 또한 술꾼들 술안주나 해장국으로도 좋겠다. 찌개 속의 굴비도 부드럽고 간간한 게 흔쾌하다. 염장, 건조한 놈을 넣고 끓였기에 간간하면서도 그 맛이 진하고도 깊다. 입맛 없을 때 한 술 떠도 그저 그만이겠다.

먹기 쉽지 않은 ‘굴비젓갈’도 맛본다. 굴비를 통째로 2년여 숙성시켰다는데 그 맛의 깊이가 끝이 없다. 김치도 속잎만으로 생김치를 내는데, ‘황석어 젓갈’을 사용했기에 진한 감칠맛이 그저 그만이다. 김치만으로도 참으로 깊고 정겨운 맛이다.

이제는 서해의 노을처럼 쓸쓸히 사라져 간 영광 칠산 바다의 조기 떼. 지금은 넓은 갯벌 사이로 몇 척의 배만 한가하게 지나갈 뿐 과거의 화려했던 영화의 그림자는 보이질 않는다. 다만 굴비의 고장답게 굴비의 문화를 고스란히 담아, 오래도록 보존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시인·동의대 음식문화해설사 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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