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

menu search

최원준의 그 고장 소울푸드 <21> 김해 돼지 뒷고기와 뒷통구이

몰래 빼돌려 먹던 돼지고기… 시중에 없던 부위 그 맛이 기막히네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2019.01.01 18:53
- 도축업자들 정형 뒤 남은 고기
- 식당업주에게 싼 값에 넘겨
- 1980년대부터 뒷고기집 성행

- 볼살·혀살·턱살 등 종류 많지만
- 부위별 수급 그때 그때 달라
- 매일 고기맛 다른 ‘복불복 메뉴’

- 한 점 한 점 식감과 맛 천지차이
- 가격도 저렴해 서민에게 인기
- 지역주민 식문화 큰 영향 끼쳐

한때 김해에서 기자 생활을 몇 년 한 적이 있다. 늘 반복되는 취재 뒤 쫓기듯 원고를 마감하고 나면, 헛헛증이 몰려와 막소주 한 잔에 뭔가를 씹어야 했다. 그때 늘 먹던 단골 술안주가 ‘돼지 뒷고기’였다. 다른 돼지고기 부위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기도 했거니와 그 맛 또한 좋아 자주 먹었던 기억이 난다.
불판 위에서 김해 뒷고기가 지글지글 먹음직스럽게 구워지고 있다. 김치를 곁들여 올리니 더욱 맛깔스럽다.
김해는 안동과 주촌에 도축장이 있어서 소와 돼지의 다양한 부위가 유통된다. 그중 돼지는 도축 양이 많아 부산을 비롯한 인근 도시 지역에 양질의 돼지고기를 대량으로 공급하고 있다. 이 돼지를 도축할 때는 부위별로 분류하여 정형을 하는데, 한때 정형하고 남는 고기를 도축기술자들이 몰래 빼돌려, 인근 실비식당이나 선술집에서 구워 먹거나 헐값으로 팔았다고 한다. 말인즉슨 ‘뒤로 빼돌려 유통된 돼지고기’라 하여 ‘돼지 뒷고기’라 불리게 된 것이다.

뒷고기는 주로 돼지머리 부위를 중심으로 사용하는데 눈살, 볼살, 혀살, 코살, 턱살, 머릿살, 항정살 등 7가지 정도의 부위로 구성된다. 돼지의 머리 부분을 목덜미살까지 넉넉하게 잘라내 뒷고기용 재료로 유통했다. 예전에는 뱃살과 엉덩잇살을 쓰기도 했다. 다양한 부위의 고기를 모아놓았기에 각각의 식감과 고소함의 차이를 느껴 가며 즐기는 재미도 있을뿐더러, 삼겹살이나 돼지갈비의 반값 정도로 싼 가격에 먹을 수 있어 금세 김해의 서민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쫀득쫀득 고소한 맛, “무슨 고기요?”

돼지 뒷통 한 접시.
한때 김해의 그 신문사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신현우 씨와 연락이 되어 내외동의 ‘양가네 뒷고기집’에 앉았다. 이 집 대표인 양현식 씨는 오래도록 뒷고기 전문식당을 운영한 뒷고기 전문가이다. 신 씨의 지인인 양영진 씨 등 중년의 김해 주당들이 모여 오랜만에 뒷고기로 옛날 이야기 꽃을 피운다.

“1980년대 초 전하동, 봉황동 주변으로 노점 같은 대폿집이 많았어요. 한번은 비가 촉촉하게 오는 날 이곳을 지나는데, 고기 굽는 냄새가 너무나 구수하게 나는 거예요. 바로 들어가 시켜서 먹는데, 쫀득쫀득하면서도 고소한 게 맛이 좋아요. 그래서 ‘무슨 고기요?’ 물었더니 ‘도축장에서 뒤로 몰래 빼낸 고기’라는 거예요. 그 뒤부터 단골로 이 고기를 먹으며 ‘뒤로 빼돌린 고기니까 뒷고기라 하면 되겠네’ 하며 불리게 된 이름이 ‘뒷고기’입니다.” 양현식 대표의 말이다.

“원래 김해는 김해평야를 중심으로 하는 농업 지역이었지요. 이곳에 공단이 들어서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상권이 형성되는데요. 이때 서민을 중심으로 형성된 외식 문화 중 한자리를 차지한 음식이 바로 뒷고기였어요.” 신 씨가 말을 이었다.

“맞습니다. 김해는 뒷고기에서 서민들 외식문화가 정착되었다고 봅니다. 당시 삼겹살이나 돼지갈비는 비싸서 자주 먹을 수가 없었어요. 그 자리를 대체한 음식이 바로 뒷고기였는데, 당시 한 대접에 2000원 정도 했나? 한 대접이면 지금으로 치자면 한 5인분 정도 될 겁니다.” 양 씨가 이렇게 말을 받는다.

그 때문에 김해의 중년들은 뒷고기로 술을 배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김해 시내 곳곳에 뒷고기집이 있었고, 사람을 만날 때나 운동, 등산 후에도 꼭 뒷고기로 뒤풀이를 할 정도로 김해 사람들에게는 생활 속 음식이 되었다.

■“뒷고기 한 접시, 됐나?”

김해시 내외동의 전문 식당 ‘양가네 뒷고기집’에 모인 50대 친구들이 뒷고기를 맛보며 추억을 이야기하는 모습.
한때 김해 주당들끼리 술 약속은 “뒷고기 한 접시 됐나?”가 통용어였다. ‘술 한잔하자’는 말이나 ‘일간 한번 만나자’는 인사말 또한 “뒷고기 한 접시 하자”로 통했다. 젊은이들은 내기 당구를 치면서 짜장면이 아니라 소주 한 잔에 뒷고기 한 접시를 내기로 걸었고, 배포 없고 얌체 짓을 잘하는 이에게는 ‘뒷고기도 못 살 놈’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처럼 뒷고기는 김해 사람들의 생활문화 속에서도 깊숙이 개입해 있던 식재료였다.

이 뒷고기는 다른 정식 부위와 달리 제대로 정형되어 유통되지 않기에, 가게마다 먹기 좋게 직접 장만해야 했다. 그 때문에 가게 주인장 손길에 따라 뒷고기의 식감이 달라, 같은 부위라도 가게마다 그 맛이 달랐다. 또한 뒷고기 부위의 수급이 매일매일 일정하지 않았기에 같은 가게라도 어제와 오늘 고기 맛이 다른 재미가 있었던 것이 뒷고기였다. 그래서 하루하루 어떤 부위가 올라올지 몰라 ‘복불복 음식’이라고 불릴 정도로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단골 중에는 유독 자기가 좋아하는 부위를 콕 찍어서 달라고 하여 즐기는 이도 있었는데, ‘돼지 뒷통구이’가 그렇게 탄생한 것으로 볼 수가 있다.

돼지 뒷통은 돼지고기 목 뒷덜미 항정살 부위를 정형하고 남은 고기를 말하는데, ‘돼지 뒷통수 쪽 부위를 구워 먹는다’ 해서 ‘돼지 뒷통구이’라 한다. 이 또한 뒷고기이지만 뒷통 부위만을 좋아하는 이들을 위해 따로 구분하여 전문적으로 팔고 있다. 꼬들꼬들하면서 구수한 풍미에, 요 몇 년 사이 전문식당이 부쩍 늘어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부위마다 다채로운 맛의 잔치

소주 한 순배 돌리는 동안 불판에서 다양한 부위의 뒷고기가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다. “뒷고기는 고기가 울퉁불퉁해 자주 뒤집으며 구워야 맛있어요. 바싹 구우면 씹는 맛이 없기 때문에 노르스름할 때 먹어야 제맛이 납니다.” 양 대표의 말이다.

고기 속 기름기가 자글자글 배 나온다. 한 점 맛본다. 어떤 부위는 부드럽고 어떤 부위는 쫄깃하고, 어느 살점은 고소하고 어느 살점은 담백하고, 쫀득쫀득 보들보들 살강살강…. 그 식감조차 씹을 때마다 현란하고 변화무쌍해 흔쾌하기 이를 데 없다.

혀살은 담백하며 타박타박하고, 뒷통(항정살 부위)은 뒷맛이 고소하다. 머릿살은 쫀득하고 볼살은 쫄깃하다. 턱살은 꼬들꼬들하고 코살은 약간 질긴 듯 식감이 탄탄하다. 눈살은 상대적으로 조금 부드러운 맛을 낸다. 고기와 함께 먹는 ‘정구지 김치’도 좋다. 뒷고기는 기름진 부위가 다수 포함되기에 알싸하고 향이 좋은 ‘정구지 김치’와 잘 어우러진다. 상추나 깻잎에 뒷고기와 마늘, 땡초를 얹어 싸 먹어도 꽤 괜찮다.

남녀노소 모두에게 가성비 좋고 맛있고 양 많은 음식 뒷고기. 주머니 가벼운 서민의 따뜻한 한 끼 음식으로, 든든한 술안주로, 널리 사랑받는 김해의 소울푸드이다. 지금도 김해의 넉넉한 고기 인심은 남다르다. 그것은 김해의 뒷고기 인심이 김해의 음식 유산 속에서 면면히 흐르고 있어서가 아닐까? 그만큼 뒷고기는 김해 사람들의 식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 식재료이기도 하겠다.

음식문화칼럼니스트·시인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트위터 페이스북
관련기사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