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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그 고장 소울푸드 <19> 창원시 ‘마산 통술’

한 상으론 부족한 안주행렬… 애환 깃든 술병이 병풍 이룬다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2018.11.29 19:09
- 1960~70년 등장한 마산 술상
- 통영 다찌, 진주 실비와 함께
- 경남의 독특한 서민 술집 문화

- 20~30가지 제철 음식 내놔
- 기본 술값에 안줏값도 포함
- 술 추가하면 계속 안주서비스

- 어시장 인근이라 해산물 푸짐
- 입맛 돋우는 굴무침·가오리찜
- 볼락구이·홍합만둣국도 별미

멀리에 벗이 있으면 그 또한 좋다. 가끔씩 그리워하다가, 문득 보고 싶을 때 한달음에 달려가 박주일배(薄酒一杯) 기울일 수 있기에 그렇다. 그가 와도 좋으나 그에게 가는 시간의 즐거움이 더 큰 나이에 나는 이르렀다.
마산 통술집의 정겹고 푸짐한 상차림. 윗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삶은 소라, 볼락구이, 양념가오리찜, 호래기회, 과메기, 굴무침, 꽃게와 가리비조개찜. 안주로 나오는 요리들이 맛의 대향연을 펼친다.
시외버스 타고 끄덕끄덕 마산으로 술 마시러 가는 일이 기껍고 흔쾌한 날, 그도 그런 마음인지는 모르겠으되, 멀리서 한달음에 마중 나온 그의 모습이 보이자 서로 왈칵 반갑다. 여고 선생님을 퇴직하고 하루에도 시 몇 편씩 퇴고하며 사는, 마산의 성선경 시인 손에 이끌려 신마산 통술집에 앉는다.한 상 가득 차려지는 술상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그도 그럴 것이 한때 통술집은 마산 문화예술인의 참새방앗간이었고, 타지 손님을 극진히 모셔 대접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통술집 방안에서 ‘술병으로 병풍을 세우며 밤새 마시던 호기’ 또한 마산 사람들의 시원시원한 기질을 여실히 반영하던 자리였다.

그래서 통술은 마산 사람의 성정을 이해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3·15 의거와 부마항쟁 등 역사의 한 페이지를 들추지 않더라도 그들의 투박하면서도 세심하고, 열정적이면서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자리가 통술집이다.

■ 경남의 독특한 술집 문화 3걸은?

마산 통술집 안주를 한 상에 모아 찍은 사진.
경남에는 마산의 통술집처럼 독특한 술집 문화가 여럿 자리 잡고 있다. 통영의 ‘다찌집’과 진주의 ‘실비집’ 그리고 마산 일대의 ‘통술집’이 그것이다. 각각의 지역 특성과 문화를 잘 살린 술집들로, 대부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시기를 견뎌야 했던 서민의 아픔을 기억하는 곳이다. 이 세 지역의 술집은 모두 앉자마자 술과 함께 안주가 푸짐하게 한 상 차려져 나오는 것이 특징인데, 그 종류나 가지 수가 20~30여 가지에 이른다. 술값 안에 안주 가격이 포함되는 방식으로 ‘술 몇 병에 안주 한 상’을 기본으로 해서, 이후 추가로 주문하는 술 한 병에 새로운 안주가 제공되는 방식이다.

그중 제일 맏형 격이 통영 다찌이다. 통영 다찌는 일본인이 조선 수산물을 수탈하던 거점이던 통영지역의 근대사와 관계가 깊다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어획량이 급증한 통영항 주변에는 넉넉한 호주머니의 일본인 어부들을 위한 독특한 음주 문화가 정착하는데 이것이 통영 다찌의 시작이라는 것. 통영 다찌를 일본의 ‘다치노미(다찌노미)’ 문화에서 그 근거를 찾는 이가 많다. ‘다치노미야’는 ‘서서 마시는 술집’이란 뜻으로 일본 서민이 애용하는 일본 전통 선술집이다. 의자 없이 긴 카운터에 여러 사람이 둘러서서 잔술을 마시는 곳이다.

진주 실비는 싼값에 술과 안주를 제공한다는 뜻에서 ‘실비(實費)집’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소주 만 원, 맥주 6000원이면 안주가 공짜다. 술을 마실수록 새로운 안주가 추가된다. 마산 통술의 유래는 술상 한 상을 통으로 냈기 때문이라는 설과 술을 통 안에 담아 제공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분분하다.

■ 상다리가 ‘소박하게’ 휘어진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두월동 신마산통술거리의 상징 조형물.
이들 세 종류 술집 가운데 통영의 다찌 문화가 가장 오래됐고 통술집은 대략 1960·1970년대, 실비집은 1980년대 무렵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이들의 탄생 배경을 통영다찌에서 근거를 찾는 전문가가 많다. 어찌 됐든 마산의 통술은 마산의 대표적인 술상 문화로 마산 서민의 큰 사랑을 오래 받아왔다. 1960·1970년대 마산의 고급 요정들이 쇠퇴하자 그 자리에 싱싱하고 다양한 안주를 싸고 가볍게 판매하는 집들이 생겼는데, 이것이 통술집의 시작이라 한다.

통술집은 오동동과 합성동 뒷골목에서 한 집 두 집 생기기 시작했는데, 마산어시장이 근처이다 보니 싱싱한 해산물을 싸게 사 푸짐하게 음식을 내놓은 것이 지금에 이른다. 지금은 통술집골목이 두 곳에 걸쳐 있는데 ‘오동동 통술집 골목’과 ‘신마산 통술거리’가 그것이다. 통술집의 특징은 처음에 한 상 차려진 음식이 가득한데도,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음식이 계속 줄을 잇는다는 점이다.

그날그날 잡은 해산물로 음식을 내기에 푸짐한 해산물 잔칫상을 받는 느낌이다. 제철 식재료를 활용하기에 사철의 술상 변화가 뚜렷한 점도 통술만의 특징이라면 특징이겠다. 소박하지만 ‘상다리가 휘어지는 풍경’ 바로 그것이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몇 병 술과 함께 바다 냄새 물씬 나는 굴무침이 나온다. 쪽파와 땡초를 함께 넣고 조물조물 무친 굴무침은 겨울철 입맛 돋우는 데는 최고 반열이다. 매콤짭짤하면서도 들큰하게 고소한 맛이 그저 그만이다.

■ “좋다. 참 좋다…정말 좋다.”

신마산통술거리의 요즘 풍광.
본격적으로 통술 안주가 상에 오르는데, 겨울철 식재료로 조리한 음식이 눈에 띈다. 빨간 양념을 올린 가오리찜, 붉은 메기(나막스)구이 등 따뜻하고 짭조름한 음식이 속을 데우고 입맛을 다시게 한다. 바삭바삭 튀긴 학공치 튀김도 고소하기 이를 데 없다. 곧이어 해산물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투명하게 싱싱한 호래기 회를 시작으로 꼬들꼬들 해삼, 쫄깃쫄깃 소라, 부드럽고 달디단 가리비조개, 키조개 관자구이가 속속 상을 채운다. 빨갛게 잘 익은 꽃게도 풍성하게 접시에 앉는다. 부드럽고 달콤한 게살이 알알이 꽉 차 흥겹다. 오랜만에 볼락구이를 맛본다. 두 손으로 들고 살을 발겨 먹는다. 작은 볼락은 대가리부터 꼬리까지 다 먹을 수 있어 좋다. 볼락을 씹어 먹고, 발겨 먹고, ‘쪽쪽’ 빨아 먹는다. 그 고소함이 어디 비할 데가 없다. 장어구이탕수도 달콤짭조름해 자꾸 손이 가는 매력이 있다. 추운 날 몸을 데워주는 홍합만둣국도 좋다. 땡초를 넉넉하게 넣어 시원하면서도 칼칼함이 두드러진다. 한 술 두 술 뜰 때마다 그 시원함이 끝이 없다. 말미에 출렁이는 바다 냄새 또한 참으로 기껍다.

좋다. 참 좋다. 오랜만에 만난 벗과 통술로 통음하는 자리. 그가 권하는 술에 취하고, 그가 전하는 말에 취하고, 그가 흥얼대는 노래에 취하여 밤이 깊어간다.

참 괜찮은 저녁이 흐르고, 참 괜찮은 취기가 도도히 흐른다. 참 괜찮은 벗의 배웅을 받으며, 참 괜찮은 그의 시집을 읽으며 부산을 향한다. 참 괜찮았던 시간, 이 모두 통술 같은 벗과 통술로 통음했기 때문이리라.

음식문화 칼럼니스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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