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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그 고장 소울푸드 <16> 현풍 수구레국밥

“소가죽에 붙은 살 한 점도 우째 버리겄노”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2018.10.12 20:03
- ‘수구레’ ‘수구리’ ‘소구레’
- 소 살코기와 겉가죽 사이 부위
- 어려운 시절 서민 영양공급원

- 특유의 누린내에 강하게 양념
- 손질할 때 손도 많이 가는 재료
- 선지와 끓여 얼큰하게 국밥으로
- 볶으면 돼지껍데기·막창 느낌

- 경상도 큰 牛시장 서는 창녕
- 교통요충지 현풍 등 명맥 유지
- 소비가 많았던 1950~70년대
- 헌 소가죽·군화 삶은 것 괴담도

다들 잘 아시다시피 우리나라는 한때 전형적인 농경국가였다. 그래서 농사를 짓는 데 필수적인 소를 재산목록 제1호로 여기고, 가족처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며 의존했다. 그만큼 소는 농사에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던 존재였다.

집안에 잉여 노동력이 생기거나 노동력이 더 필요하게 되면 소시장에서 소를 사고팔았다. 예전에는 지역별로 소시장이 오일장 서듯 섰다. 소시장이 열릴 때면 그 인근 지역의 소가 수십, 수백 마리씩 모여드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때 으레 소 판 사람이나 소 산 사람이나, 소시장 옆 주막에서 막걸리 한 잔에 국밥 한 그릇 추렴하는 것은 일상다반사였다. 이럴 때 말아 나오던 국밥이 소머리국밥, 선짓국밥과 더불어 수구레국밥이었다.

■소 부위 120가지 구분해 먹은 민족

대구시 달성군 현풍면의 장날에 현풍백년도깨비시장을 찾아갔더니 수구레국밥집의 가마솥에서 수구렛국이 한가득 끓고 있었다.
귀한 동물이기에, 우리 민족은 소를 도축하면 약 120여 가지 부위와 부산물을 구분하여 먹었다. 다른 민족의 40~50여 부위보다 배나 많다. 그중 한 부위가 ‘수구레’이다.

수구레는 소가죽을 벗겨내면 가죽 안쪽에 붙어있는 피하 조직을 말한다. 소의 가죽과 살코기 사이에 붙은 콜라겐 성분과 연관된 부산물이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수구리’ ‘소구레’라고도 한다. 소가죽에 붙은 부위이다 보니 ‘오죽하면 소가죽 쪽을 음식으로 만들어 먹을까’ 하고 생각하는 이도 많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소의 특수 부위 가운데 가장 하대받던 부위이면서 별다르게 특별한 맛이나 풍미를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니다.

장만을 잘못하면 특유의 누린 냄새가 나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양념을 강하게 하여 조리하는 식재료이기도 하다. 거친 식재료일수록 손길이 많이 가는 법. 수구레 또한 잘 끊기지 않거나 질겨 먹기 어려울 뿐 아니라, 센 불에 오래 삶으며 기름기를 제거하는 등의 정성과 손질을 요하는 음식재료이다. 그러나 춥고 배고픈 시절 서민에게는 엄연한 소고기 부위로, 싸고 친숙한 영양 보충 음식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쫀득쫀득 부드러우면서도 꼬들꼬들 질긴 식감을 가지고 있고, 씹을수록 구수한 맛이 나기에 야무진 식감을 선호하는 서민에게는 그저 그만인 음식재료였다.

■수구레의 추억

푹 삶아낸 수구레는 썰어서 선지 등과 함께 국밥으로 끓여 먹거나 술안주용으로 전골과 볶음으로 조리해 먹는다. 국밥으로 내면 소고기국밥이나 선짓국밥 같고, 볶음으로 내면 식감이 돼지껍데기나 막창 맛이 난다. 한때 필자도 남구 대연동 부산문화회관 근처 간판도 없는 수구레집에서 부산시립예술단 단원들과 수구레볶음으로 자주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당시 함께 술잔을 기울인 이들은 무명의 시인이나 연극배우, 음악 하던 이들로 젊기도 했거니와 시립예술단원 활동 말고는 별다른 벌이가 없어 주머니가 가벼울 수밖에 없었다.

수구레볶음.
기억컨대 모두 수구레볶음 한 접시에 소주 두세 병씩을 비워냈는데, 싸고 영양 만점인 수구레 안주 덕분에 그럭저럭 몸을 견뎌내던 시절이었다. 수구레를 먹던 호기롭던 젊은 예술인들은 지금은 예술계의 중견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을 터이다.

원래 수구레국밥은 소시장 근처 어디서나 먹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전국적으로 소시장의 흔적이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한두 곳 정도 영업하는 형편이다. 그나마 경상도에서 제일 큰 소시장이 있던 창녕이나 경상지역 교통요충지였던 현풍에서 10여 집의 수구레국밥 전문 식당이 골목을 이루고 있는 정도다.

■현풍장에 여전한 수구레 식당가

현풍백년도깨비시장의 수구레국밥집들.
수구레국밥을 먹으러 현풍장을 찾았다. 현풍장은 일제강점기인 1918년 개설해 100년 세월을 이어오는 장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소시장이 섰기에 수구레국밥 또한 연륜이 묻어 진하고도 구수하다는 평가이다. 장터 ‘현풍백년도깨비시장’ 한쪽에 10여 집 식당가가 있는데, 이곳에 들면 구수하고 매콤한 수구레국밥 냄새가 나그네를 반긴다. 국밥집마다 커다란 가마솥을 두어 개씩 걸어놓고, 한 솥 그득 수구렛국을 끓여내고 있다. 벌건 국물이 언뜻 보기에도 진하고 칼칼해 보인다.

한쪽에는 수구레가 가득하고, 한쪽에는 큼지막한 선지가 넉넉하다. 콩나물과 굵직굵직하게 썰어놓은 대파 등속이 국물을 더욱 시원하게 우려내고 있다. 그 위로 붉은 고춧가루가 고명처럼 덮여 나그네의 식욕을 더욱 자극한다.

수구레국밥은 깨끗하게 손질한 수구레를 선지와 함께 가마솥에 넣고 끓인 후, 콩나물, 대파, 양파를 넣고 고춧가루, 간장, 제피가루와 마늘 등 양념을 강하게 하여 다시금 푹 끓여낸다. 이를 밥과 함께 내면 얼큰한 수구레국밥이 되는 것이다. 수구레국밥 한 그릇 시킨다. 뚝배기에 수구렛국이 찰랑찰랑 한 고봉 들어앉았다. 그 위에 수구레와 선지가 송송 썬 파와 함께 옹골지다. 국물 위로 붉은 기름이 동동 뜨는 것이 침이 절로 고인다. 한 입 떠먹는다. 진한 소고기 국물이 입안 가득 퍼지며 구수하기 짝이 없다.

수구레가 쫄깃쫄깃 씹히며 고소하다. 콩나물은 사각사각 식감을 자극한다. 가끔 파가 씹혀 국물이 향기롭기까지 하다. 국물의 매운맛이 입술 언저리를 얼얼하게 자극하는 것도 아주 괜찮다. 막걸리 한 잔 벌컥벌컥 들이켜고 선지 한 입 뚝 떼어 먹는다. 부드럽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깍두기 한 입 씹어 먹으니 입 안이 새로이 개운하다. 하루 내내 가마솥에 끓여내기에 국물은 진하고, 중간중간 계속 보충하는 채소 덕분에 시원한 맛 또한 유지된다.

■우리 음식문화의 자산

지금이야 다양한 음식과 먹을 것이 넘쳐나는 시대이지만, 한 세대 전만 해도 싸고 영양가 높은 수구레국밥은 서민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던 소중한 한 끼였으며, 가장들에게는 얼큰하게 입을 다시던 안성맞춤 술국이었다.

이렇게 서민이 싸게 먹을 수 있어서 소비가 많았던 수구레는, 한때 이를 악용한 이들 때문에 많은 오해와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1950~70년대 헌 소가죽을 독한 화공약품으로 가공해 수구레로 둔갑시켜 유통하던 일당과 수구레로 설렁탕을 만들어 팔던 식당 업주들이 경찰에 적발되기도 하고, 쓰고 버린 미군 군화를 몇 시간이고 삶아 음식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는 괴담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던 것.

어찌 됐든 해방 공간과 한국전쟁기를 넘어 산업화 시대에 이르기까지, 당장 끼니가 아쉬운 서민들은 이런 서글픈 현실 속에도 질긴 목숨처럼 소가죽을 씹어대며 삶을 살아내야 했다. 이는 수구레가 품은 우리 음식문화사의 역사이기도 하면서, 가슴 먹먹했던 시절의 단편이기도 하다.

음식문화 칼럼니스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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