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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그 고장 소울푸드 <15> 영천 돔배기

제사상에 올리던 귀한 돔배기… 영남 내륙 밥상까지 점령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2018.09.21 18:10
- 염장시킨 상어고기
- 돔박돔박 네모지게 썰어 산적·탕수·탕국으로
- 제사상에 진설하는 내륙지방 영천 식재료

- 귀상어는 양지, 청상아리는 모노
- 악상어는 준달이
- 불리는 이름도 다양

- 고기 반, 소금 반
- 전통의 맛 탈피해 완자전·연잎밥 등
-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현대화시켜 보급

경북 내륙지방 사람들이 즐겨 먹는 생선을 꼽으라면, 고등어에 소금 간을 한 ‘간고등어’와 상어를 토막 내 조리한 ‘돔배기’가 단연 대표적이라 하겠다.
경북 영천시 돔배기시장의 오래된 어물전에서 손님들이 돔배기를 사고 있다.
이 두 생선 모두 바다에서 내륙으로 오기까지 지난한 노정 동안,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한 조치로 소금 간을 했다는 점이 독특하다. 때문에 염장발효의 진하면서도 쫄깃하고 개운한 맛이 경북 내륙 사람들의 입맛을 오랫동안 다스려 왔다.

그중 ‘돔배기’는 귀상어를 비롯하여 청상아리, 참상어, 악상어 등의 상어고기를 직사각형으로 ‘돔박돔박’ 네모지게 썰어서 소금 간을 한 뒤, 굽거나 삶아 산적이나 탕수 등으로 제사상에 진설하는 음식이다. 조상 제사상에 필히 올리는 대표적인 제수(祭需)로, 주로 산적이나 탕국으로 진설한다. “돔배기만 장만하면 제사 준비는 다 했다” 할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음식이 돔배기다. 생선 비린내가 없고, 담백하여 육고기 대용으로도 활용되었기에 남녀노소에게 널리 사랑받아왔다. 또한 다양한 상어의 다양한 부위를 재료로 활용하기에 여러 가지로 조리할 수 있는 음식이기도 하다.

■“상어고기는 영천서 다 가져간다”

영천 돔배기 시장 입구에 설치한 조형물.
특히 경북 영천시는 돔배기의 최대 생산지이자 소비지로 유명하다. “공설시장이 들어서기 전, 염매시장 시절부터 좌판에서 돔배기를 팔았다”는 영천공설시장 상인들의 증언으로 유추해 볼 때, 최소 60년은 훌쩍 넘기는 세월 동안 이들이 돔배기를 취급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시장 안에는 돔배기를 파는 어물전이 20여 곳 있는데, 모든 가게가 50~60년 세월을 이겨낸 ‘노포’들이다. ‘최씨어물전’과 ‘윤만상어물전’ 등은 아직까지 현역 1세대가 운영하고 있는데, 나이들이 70대에서 80대로 50~60여 년 돔배기 시장을 지키고 있다. ‘만물수산’ 등은 2세가 이어받아 돔배기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돔배기 장터 어물전을 살펴보니 진열해 놓은 돔배기 재료인 상어고기의 색깔이 조금씩 다르다. 어떤 놈은 색깔이 밝게 붉은빛이 돌고, 또 어떤 놈은 어두운 회색빛이 돌기도 한다. 한 상인에게 “어떤 상어들이냐?”고 물으니 무심한 듯 “이놈은 ‘모노’고, 저놈은 ‘양지’고…”라고 한다. 모노? 양지? 그런 상어도 있었던가?

옆에서 취재를 지켜보던 영천 토박이 이중기 시인이 “양재기(양지)는 귀상어 고기고, 모노는 청상아리 고기”라고 말해준다. 돔배기의 재료인 상어는 대부분 부산공동어시장에서 대량 구입해 영천으로 들어온다. 영천의 큰 도매상이 크고 좋은 상어는 모조리 수매해, 크기에 맞게 토막 내어 상인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그래서 부산공동어시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상어고기는 영천에서 다 가져가고, 그 내장은 부산 사람들이 다 먹는다. 고기는 영천의 돔배기 재료로 쓰이고, 내장은 부산의 두투를 만든다.”

■양지? 모노? 그런 상어도 있나?

돔배기 산적
원래 돔배기를 만드는 상어는 대가리 부분이 뭉툭하게 튀어나온 귀상어. 그러니 어릴 적부터 돔배기를 즐겨 먹어 왔던 사람들은 귀상어 특유의 은은한 고기 향을 ‘돔배기 향’이라 여기는데, 이런 그윽한 향이 없는 돔배기는 돔배기 취급을 안 한다고.

귀상어 고기를 영천에서는 양지, 양재기라 부르는데 이는 옛날부터 제상에 올리는 음식이었던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청상아리 고기인 모노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는데 모노와 구별하기 위해 ‘옛날 돔배기’라 부르기도 한다. 이와 반대로 청상아리, 참상어 고기 등으로 만든 모노는 영천에 도입된 지 35년 정도밖에 안 됐단다. 워낙 담백하고 깔끔한 맛에 잡내가 없어 요즘 젊은이나 여성이 좋아한다. 그래서 모노를 ‘참돔배기’라 부르기도 한다. 그 외 악상어인 준달이 등도 취급한다.

돔배기 연잎밥
상어의 종류나 부위에 따라 돔배기 가격이 다양하게 형성되는데, 보통 킬로그램 당 1만~3만 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고. 양지는 3만 원, 모노는 1만~1만 5000원, 모노 뱃살 부위는 2만 원 정도에 거래된다.

전 부침용, 산적용 등 조리 용도에 따라 상어고기의 두께를 다르게 썰어내는데, 전으로 부칠 것은 조금 얇게, 산적은 두껍게 썰어 소금을 뿌려 장만한다. 제수로 올리기 위해서는 간을 한 돔배기를 여름에는 1~2일, 겨울에는 3~4일 정도 실온에서 숙성시킨 뒤 씻어서 하루 정도 말려 조리한다.

■경북 내륙 사람들의 삶 간직

돔배기 만두. 영천시 제공
돔배기 장만은 일단 한 덩어리 상어 토막의 고기 부분을 칼로 껍질 가까이까지 썰어낸 뒤, 껍질 안으로 고기와 껍질을 분리하여 차곡차곡 쌓아 포장한다. 이때 상어껍질도 함께 포장하는데, 껍질은 데쳐서 오돌오돌한 돌기를 칼로 긁어내고 초장에 찍어 먹거나 탕국의 탕수 재료로 쓴다. 쫄깃쫄깃, 꼬들꼬들한 식감에 남녀가 모두 좋아한다고. 술안주로는 바로 조리하여 따뜻하게 먹는 것이 좋고, 두고두고 음식으로는 먹으려면 차게 해서 먹는 것이 좋단다. 이중기 시인이 “따끈따끈한 돔배기 산적을 제주(祭酒)와 함께 먹으면 그저 그만”이라고 하니, 만물수산 한성수 씨는 “차게 해서 먹어야 돔배기의 쫄깃한 맛도 살아나고, 탕국도 뻑뻑한 느낌과 시원한 맛이 더 난다”고 주장한다.

이 돔배기를 소금단지에 묻어두고 소금꽃이 필 때쯤 꺼내, 날로 조금씩 뜯어 반찬으로 먹거나 가장의 술안주로 냈단다. “어릴 때 어머니께서 영천장에서 돔배기를 사 오시면, 언제나 소금단지 속 소금에 돔배기를 깊이 묻어놓으셨어요. 돔배기가 오래도록 염장 숙성되면 돔배기 표면에 하얀 곰팡이가 슬듯 희디흰 소금꽃이 핍니다. 이때 돔배기를 꺼내 먹는데, 워낙 짜기에 조금씩 떼서 반찬으로 두고두고 먹었지요.” 이중기 시인의 회고다.

■돔배기는 새롭게 변신 중

이처럼 돔배기는 ‘소금 반, 고기 반으로 먹는 음식’이다. 그만큼 장시간 염장하여 먹었다는 얘기다. 이를 뒤집어 보면 오랜 세월 우리 서민의 힘겹고 팍팍한 삶을 읽을 수가 있다. 밥은커녕 찬거리조차 맘껏 먹지 못했던 가족의 삶과 그런 가족들을 배불리 먹이지 못했던 부모들의 아린 마음이 오롯한 것이다.

한편 영천시는 영천시민의 소울푸드인 돔배기를 새롭게 재해석하여 다양한 음식으로 개발·보급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기존 전통음식인 ‘돔배기 산적’ ‘돔배기 탕국’을 비롯하여 ‘돔배기 연잎밥’ ‘돔배기 완자전’ ‘돔배기 김치찜’ 등 남녀노소가 거부감 없이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현대화 하여 보급하고 있다. 바야흐로 소울푸드도 세태에 따라 변화 과정을 겪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음식문화 칼럼니스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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