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일동안 7차례 걸쳐 재판받고
- 염라대왕 비롯한 재판관 등장 등
- 대부분 내용 불교 경전에서 차용
- 삼차사 존재는 민간신앙이 뿌리
- 중국 ‘시왕경’ 영향 받은 장면도

영화 ‘신과함께-죄와 벌’이 그린 사후 세계는 불교의 사후 세계관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민간신앙 요소를 일부 가미했다. 지난해 불교의 사후 세계를 신자와 대중이 알기 쉽게 풀어쓴 책 ‘불교에서의 죽음 이후, 중음세계와 육도윤회’를 펴낸 동명대 허암 김명우(학부교양대학·53·아래 사진) 교수를 만나 불교의 사후 세계에 대해 자세히 들어봤다. ‘신과함께’는 저승에 온 망자(차태현)가 그를 안내하는 저승 삼차사(하정우, 주지훈, 김향기)와 함께 49일 동안 7개의 지옥에서 재판을 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1881년 그려진 강원도 영월 만봉불화박물관 소장 시왕도 초본과 사자도 초본. 불화를 그릴 때 밑그림으로 제작한 초본이며, 사람이 죽은 후 지옥에서 망자를 심판하는 시왕과 지옥사자를 그렸다. 위 왼쪽부터 진광대왕 초광대왕 송제대왕 오관대왕, 아래 왼쪽부터 염라대왕 태산대왕 변성대왕. 문화재청 제공

-‘신과 함께’에 나타난 사후 세계가 불교의 사후 세계관인가.

▶기본적으로 불교의 사후 세계관과 상당히 일치하나 영화적 재미를 위해서인지 다른 점도 있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중음(중유)세계로 간다고 한다. 현생과 사후 세계의 중간을 말한다. 망자는 49일 동안 현생에서 행한 행위에 대해 7명의 재판관에게 재판을 받는다. 그 재판 결과, 즉 선악의 업보에 따라 여섯 세계(육도 세계=천계 인간 아수라 축생 아귀 지옥)의 어느 곳에 가게 된다. 영화 속에서 49일 동안 7번 재판이 이루어진다는 큰 틀은 일치하는데 재판 기간과 횟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영화의 어떤 장면이 경전과 다른가.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파되면서 사후 세계에 대한 묘사가 중국 사회에 맞게 변형되는 과정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인도와 중국의 영향을 모두 받았다. 중국에서 제작된 ‘시왕경’에 따르면 10명의 왕이 재판을 하고, 유교 제사의 영향으로 100일, 1년, 3년째도 재판을 받는다. 우리나라 사찰의 명부전에 가면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5명의 왕이 앉아 있는데 이는 ‘시왕경’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영화에는 염라대왕이 가장 중요한 재판관으로 마지막 판결을 내리는 존재로 묘사되나, 불교 경전에 따르면 염라대왕은 다섯 번째 판결을 내리는 판관이다. 또, 지극한 선인은 재판 없이 바로 ‘천계’로 가며 평범한 인간은 49일 동안 재판받고, 극악무도한 악인은 재판을 거치지 않고 바로 지옥으로 떨어진다.

-49일간 재판 과정은 .▶망자는 중음세계를 혼자 외롭게 걷다가 7일째를 맞이한다. 여기서 최초 재판관인 진광대왕의 법정에 선다. 진광대왕이 망자에게 “너는 생전에 이유없는 살생을 한 적이 있는가”라고 묻는다. 이 물음에 주저 없이 “아니오”라고 답할 망자는 없을 것이다. 사람을 죽인 적은 없어도 모기나 파리를 때려잡은 경험은 있기 때문이다. 망자가 용서를 빌고 애원하면 진광대왕은 “7일 뒤 초강왕에게 가서 재판을 받거라”고 한다. 망자는 삼도강(삼도천)을 건너 14일째 초강대왕을 만난다. “너의 죄가 무겁다. 지옥으로 가거라”고 하는 초강왕에게 망자는 “저희 가족이 ‘추선공양’을 해줄 것”이라 한다. 추선이란 선행을 추가한다는 의미다. 여기서 망자를 위해 49일 동안 7번 제사를 지내는 ‘49재’가 유래됐다.

세 번째 재판관 송제대왕은 사음죄(남녀의 부도덕한 관계)를 묻고, 네 번째 재판관 오관대왕은 저울로 망자가 생전에 몸이나 입으로 행한 나쁜 일을 한순간에 알려준다. 다섯 번째 염라대왕은 수정으로 만든 거울 ‘업경대’로 생전에 범한 죄를 남김 없이 비춘다. 여섯 번째 변성대왕은 염라대왕의 보고를 참고해 신중하게 재판하고, 일곱 번째 태산대왕은 여섯 개 문을 가리키며 “가고 싶은 문을 선택하라”고 한다. 선택권을 주는 것 같지만, 망자가 선택한 세계는 생전 지은 업에 따라 이미 정해져 있다. 영화와 달리, 재판관들은 판결을 계속 유보한다. 각 재판을 통과하지 못하면 바로 지옥으로 떨어지는 설정은 중국 ‘시왕경’에 따른 것이다.

-경전에는 삼차사의 존재가 없나.

▶불교에서 망자는 혼자 중음 세계를 걷고, 변호사 없이 홀로 법정에 선다. 삼차사는 우리나라 민간신앙에서 나타나는 존재다.

-불교는 왜 이토록 구체적인 사후 세계를 설정했을까.

▶스스로 행한 행위의 결과는 자신이 받는다는 ‘자업자득’ 원칙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선은 열심히, 악은 끊으라는 ‘수선단악’이 지옥을 만든 이유다. 죄에 따라 136개 지옥이 있으면 생전 나쁜 행동에 대해 경각심을 강하게 줄 수 있다. 반대로 생전 행한 수행과 선은 그것대로 판결 근거가 된다. 불교 신자들이 49재를 지내는 것도 좋지만, 49재만으로 망자가 좋은 곳으로 가는 건 아니다. 스스로 행한 화안애어(타인에게 웃는 얼굴로 대하고 부드럽게 말을 거는 보시)와 회광반조(자기의 시선을 내면으로 향하여 마음을 점검한다)로 선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