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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누나·남동생…온 식구 한 방서 쪼그려 자요

재래식 변소·쥐 나오는 부엌, 좁은 방이 전부인 정현이 집
부산 주거빈곤 아동 5만 명…집이 소중해진 코로나 시대, 더 크게 느끼는 가난의 고통
하송이 기자 songya@kookje.co.kr | 2020.09.22 22:05
“밤에 쥐가 뭘 갉아먹는 소리가 나서 부엌에는 절대 안 가요. 쥐덫을 놓기만 하면 매일 쥐가 잡혀있을 정도로 많아요. 어렸을 때는 이만한 지네에 물린 적도 있어요.” 양손을 15㎝쯤 벌린 정현이(가명·14·여)는 “진짜 아팠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정현이네 다섯 식구가 사는 집은 동구 초량동 산복도로에서도 가파른 계단을 수십 개는 더 올라간 비탈길에 있다. 정현이 아빠는 “40년은 훨씬 넘었다”고 말했다. 마룻바닥은 오래전에 내려앉았고, 먼지가 잔뜩 낀 방충망에 구멍이 난지도 한참됐다. 정현이와 두 동생 기억 속 ‘집’이라고는 이곳이 전부다. 매일 코를 틀어막고 문 밖 ‘푸세식’ 화장실에 가야 하고, 겨울엔 칼바람이 집안까지 불어닥쳤지만 그래도 어릴 땐 크게 불편한 줄 몰랐다. 정현이는 “다들 나처럼 사는 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우리 집이 친구 집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책상, 책장, 1인용 침대가 들어찬 3평 남짓한 방에서 두 동생에다 엄마까지 넷이 생활하다 보니 밤에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건 사치가 됐다. 남동생과 같은 방을 써야 하는 것도 고역이다. 초3인 막내(여)는 화장실이 무서워 아직도 유아용 변기를 쓴다. 집을 통째로 집어삼킨 곰팡이는 환기가 안 되는 겨울이 되면 더 기승을 부린다.

2인용 전기장판이 겨우 깔리는 바닥에서 엄마, 동생과 ‘포개져’ 자는 둘째(12)도 불만이긴 마찬가지다. “키가 계속 크니까 이제는 돌아 눕기만 하면 어디든지 부딪혀요. 코로나19 때문에 학교도 잘 안 가는데, 좁은 방에 동생과 맨날 같이 있으니까 진짜 많이 싸워요.” 뭐가 가장 불편하냐는 질문에 정현이는 “솔직히… 이 집이 애들이 살 수 있는 집은 아니잖아요” 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정현이 남매처럼 최소주거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주거빈곤 상황의 부산지역 아동은 줄잡아 5만 명(통계청 2015 인구주택총조사). 코로나19로 전 세계인의 일상이 달라진 지금, 학교도 가지 못하는 아이에게 집은 하루를 온전히 보내는 공간이다. 그러나 저소득가정 아이들이 사는 집은 빈곤의 최일선에 내몰려 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부산아동옹호센터가 지난 7월 주거 취약지역으로 꼽히는 서구와 동구의 저소득 아동 가구 아동 553명을 대상으로 주거 실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 10명 중 1명은 ‘집에 있어도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한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37.3%가 ‘벽과 천장에 곰팡이가 있다’고 했으며, 22.1%는 ‘집 천장에서 비가 샌 적이 있다’고 말했다. 경성대 정규석(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빈곤은 모든 연령층에 악영향을 미치지만, 특히 성장기의 아동은 전 생애에 걸쳐 영향을 받는다”며 “주거환경은 아이가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과 연결돼 있어 그 비중이 높다”고 말했다.

국제신문은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함께 ‘10대의 빈곤 시즌2-아이에게 집다운 집을’ 기획시리즈를 시작한다. 이를 통해 부산지역 아동 주거 빈곤 현황을 짚어보고 해결책을 모색해 본다.

하송이 기자 songya@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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