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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는 기업범죄다 <중> 외줄 타는 노동자

기일이 된 한가위…참사 예견된 현장에 노동자만 출근했다
푼돈에 기업책임 무마되니…‘구명줄 둬라’는 법규도 추락
권혁범 임동우 신심범 기자 mets@kookje.co.kr | 2020.08.04 22:33
- 안전 책임자도 없는 명절연휴
- 일터 불려나온 하청 노동자들
- 위태로운 작업 중 사망·중상
- ‘불의의 사고’가 아닌 인재

- 곤돌라 안전난간 한쪽만 두거나
- 끊어져 있는 로프 선 방치하는 등
- 안전 관리·감독 소홀히한 사업주
- 법원 질책했지만 결국 낮은 형량
- 수칙 어긴 노동자 과실 들기도

민족 최대 명절에도 누군가는 일한다. 품삯 몇 푼 모아서 떼돈 만들겠다고 욕심부리는 게 아니다. 고용주가 “일하라”고 시키면 노동자는 가족을 뒤로한 채 집을 나서야 한다. 신분이 불안정한 하청·재하청 노동자일수록 고용주의 요구를 뿌리치기 어렵다. ‘다단계 고용 구조’ 맨 아래에 있는 노동자는 남들 다 쉬는 명절에도 제 몸을 부려야 한다. “쉬겠다”며 ‘정당한 권리’를 내세웠다가는 ‘부당한 해고’를 걱정할 수밖에 없다.
국제신문이 분석한 2017년~올해 5월 산업재해(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 판결문(부산지역 법원 확정판결 81건)에도 비슷한 사례가 더러 있다. A(당시 40) 씨도 그랬다. 2017년 10월 8일. A 씨는 부산에서 경북의 한 건물 신축 공사장까지 일하러 갔다. 재해 역시 명절이라고 쉬지 않았다. A 씨는 건물 3층 높이(10m)에서 떨어져 고관절을 다쳤다. 금속 창호 유리 설치업체 노동자인 A 씨와 동료 B(당시 47) 씨는 건물 창틀에 하나당 52㎏짜리 유리 4개를 끼우라는 지시를 받았다. 회사가 한 하청 건설사로부터 다시 하도급받은 작업이었다.

A, B 씨는 곤돌라(건물 옥상이나 중간층에 로프를 걸어 외벽이나 창의 보수 등에 사용하는 간이 비계)를 타고 건물 외벽을 올랐다. 10m 상공에서 이뤄진 불안한 노동이었다. 두 하청 노동자는 곤돌라가 흔들리지 않도록 외벽에 고리를 걸었다. 그런데 이 고리가 풀리면서 곤돌라와 건물 사이에 간격이 생겼다. 동시에 곤돌라는 한쪽이 아래로 기울면서 크게 휘청거렸다. 중심을 잃어버린 두 노동자는 그대로 지상으로 추락했다.

A 씨는 전치 13주의 중상을 입었다. 그가 응급 치료를 받을 때 동료 B 씨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B 씨는 중증 뇌 손상으로 숨졌다. 이들에게 비극이 들이닥친 날은 추석 연휴였다.

당시 공사장의 안전시설은 매우 부실했다. 현장에 두 노동자의 안전을 책임질 관리자는 아예 없었다. 안전관리 책임자인 회사 현장소장은 추석 연휴라는 이유로 출근하지 않았다. 두 하청 노동자에게 닥친 재해는 결코 ‘불의의 사고’가 아니었던 셈이다.

산업안전보건기준상 곤돌라 같은 탑승형 기구는 운반구에 사람을 태워선 안 된다. 내부에는 안전대나 구명줄을 설치해야 한다. 높이 2m 이상에서의 작업을 지시할 때 사업주는 노동자에게 반드시 안전대를 지급하고 착용하게끔 해야 한다.

■기일이 돼버린 한가위

현장은 ‘활자’와 달랐다. 두 노동자가 재해를 당한 곤돌라에는 안전대를 걸 설비가 없었다. 안전난간은 양방향 중 한쪽에만 있었다. 특히 A, B 씨는 애초 사업주에게서 안전대 자체를 지급받지 못했다. 여기에다 현장소장마저 없었으니, 비극은 어찌 보면 예고돼 있었다. 재판부는 “심지어 피고인(현장소장)은 안전·보건관리 책임자임에도 추석 연휴라는 이유로 공사 현장에 부재했다”며 기업의 안전불감증을 질책했다.

그러나 법정에 선 기업과 책임자들은 중형을 선고받지 않았다. ‘자백’ ‘반성’ ‘합의’ 등이 이유였다. 선고된 형량은 하청 건설사 벌금 400만 원, 재하청 회사 벌금 600만 원, 하청 현장소장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재하청 현장소장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이었다.

■서푼짜리 청년 목숨

생때같던 청년이 하루아침에 숨져도 돈 몇 푼이면 법적 책임이 면제된다. 2018년 4월 24일 배관공 C(당시 29) 씨는 부산의 한 선박 부품 제조공장에서 배관 용접을 하고 있었다. 회사가 하도급 계약을 했기에 ‘남의 공장’에서 일했다. 어느 정도 작업이 진행된 후 C 씨는 용접 상태를 확인하려고 배관 안으로 들어갔다. 밀폐된 공간에서 일하려면 반드시 산소·유해가스 농도를 측정해야 하지만, 이를 감독할 관리자는 없었다.

C 씨는 배관 속에서 숨이 막혀 죽었다. 아르곤 가스가 원인이었다. 수많은 불법이 확인됐다. 작업장에는 안전 공간이 확보되지 않았다. 가스가 새는 산소절단기가 사용된 사실도 드러났다. 작업에 쓰인 와이어로프 중에는 소선(로프 한 가닥에 든 작은 선)이 10% 이상 끊어진 것도 발견됐다. 현장은 ‘불안의 도가니’였다.

재판부는 “이 같은 불충분한 안전 조치가 결합돼 언제든지 중대한 재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꾸짖었다. 그러나 형벌은 국민 법 감정과는 차이가 컸다. 원청 회사는 벌금 700만 원, 하청 회사는 벌금 500만 원, 하청 대표이사와 원청 전직 공장장은 벌금 500만 원, 원청 현직 공장장은 벌금 4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관리’되지 않는 안전

산재 대부분은 법을 지키지 않아서 발생한다. 관련 법·지침은 안전관리 책임자가 지도·감독해야 할 다양한 상황과 행동, 의무를 설명한다. 노동자가 안전수칙을 어겼다면, 이를 관리하지 않은 책임자의 잘못이 크다. 그러나 죽어서 말 못 하는 ‘피해자의 과실’은 산재 사범을 ‘선처’하는 주요 근거가 된다.

특수화물 운송업체 사장 D 씨는 2016년 8월 6일 노동자 E(당시 40), F(당시 35) 씨에게 탱크로리에 든 황산(농도 98%)을 다른 탱크로리로 옮기라고 지시했다. 두 노동자는 탱크로리 간 호스를 연결했다. 그런데 황산을 밀어내는 펌프의 압력을 호스가 이겨내지 못해 황산이 사방으로 분출됐다. 둘은 전신 화상을 입었다. E 씨는 1주일 뒤 숨졌다.

사업주는 농도 20% 이상인 황산을 다룰 때 방호 조치를 하고, 노동자가 보호복·보호 장갑·장화 등을 착용하도록 해야 한다. 사장인 D 씨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재판부가 내린 형벌은 벌금 300만 원에 그쳤다. 판결문에는 ‘피해자들이 보호장비를 착용하지 않았다’고 짧게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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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범 임동우 신심범 기자 mets@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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