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

menu search

'명품마을' 혁신을 찾아서 <10> 창원시 오동동

옛 마산 경제 중심이자 민주성지, 문화·예술로 제2 황금기 꿈꿔
이종호 기자 jhlee@kookje.co.kr | 2020.05.17 19:40
- 수출자유지역·한일합섬 번성해
- 1960~80년대엔 서울 명동 견줘
- 4·19혁명 도화선·6월항쟁 발원
- 이원수 등 문화예술인 발자취도

- 2011년 원도심 재생사업 시작
- 좁은 골목 곳곳 예술작품 즐비
- 예술단지 창동예술촌 자리잡자
- 관광객 등 돌아오며 활력 되찾아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과 ‘오동동’은 서울의 명동과 같은 곳이었다. 마산·창원·진해가 창원시로 통합되기 전인 1960~80년대 마산시는 수출자유지역과 한일합섬 공장이 마산시 경제를 주도하면서 전국 7대 도시라는 명성을 얻었다.

마산수출자유지역이 문을 열고 한일합섬 공장이 들어서면서 전국의 노동자가 몰리자 창동과 오동동 거리에는 레스토랑과 카페, 옷 가게 등이 들어섰고,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사람들로 넘쳐났다. 하지만 90년대 후반부터 공장이 중국으로 옮겨가고 한일합섬이 문을 닫는 등 마산자유수출지역이 쇠퇴하자 창동과 오동동 역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문화와 낭만의 거리는 생기를 잃었다.

■옛 마산의 상업·문화 중심지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의 250년 된 골목길. 전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도심 골목이다.
마·창·진 통합 후인 2017년 1월 1일 자로 창원시 마산합포구 동서동, 성호동, 창동, 오동동 등은 ‘오동동’으로 통합됐다. 이곳은 창원의 그 어느 곳보다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곳이다.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 동동주 술타령이 오동동이냐’는 노래 가사를 가진 ‘오동동 타령’은 6·25 전쟁 직후인 1954년 술집 많던 옛 마산의 오동동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노래다.

그 시절 항구를 낀 오동동은 배에서 막 내린 선원들이 자연스레 술집과 밥집을 찾는 곳으로 옛 마산의 3대 먹거리인 아귀찜, 복어, 통술집이 모여 골목길을 형성했다.

1960년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3·15 의거는 오동동 문화의 거리에서 시작됐다. 그 해 4월 11일 당시 고등학생이던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참혹한 모습으로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자 분노한 시민의 시위가 확산되면서 4·19 혁명으로 이어졌다.

무학초등학교 인근에는 3·15의거 기념탑도 우뚝 서 있다. 오동동은 10·16부마민주항쟁, 6월 항쟁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오동동에는 문화 예술인들의 발자취도 풍부하다. 아동문학가 이원수는 오동동의 하숙방에서 ‘고향의 봄’을 창작했다. 또 시인 천상병, 이선관 등 수많은 문화예술인이 이곳의 선술집에서 문인들과 함께 어울려 술을 마시며 창작활동을 했다.

1970~80년대 자유무역지역이 봉암동에 조성되고 한일합섬이 들어서면서 서울의 명동 부럽지 않은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가 됐다. 하지만 90년대 후반부터 창동과 오동동은 쇠락의 길을 걸으며, 사람들의 발길이 현저히 줄었다.

■문화·예술의 옷을 입자 주목

불종거리에서 부림시장까지의 상상길. 2만3000명 세계인들의 이름이 바닥에 새겨져 있다.
창원시는 민주화의 성지이자 마산시민의 자부심을 되살리기 위해 2011년부터 원도심 재생사업을 시작했다. 도시재생테스트베드사업(2011~2014년)과 도시재생선도사업(2014~2017년)으로 오동동은 서서히 회복의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2012년 창동예술촌, 2013년 부림창작공예촌을 개촌하면서 개발에 밀려 감춰졌던 골목은 예술의 옷을 입고 되살아났다. 지역의 젊은 예술가들이 이곳으로 몰려들면서 도심형 예술단지가 조성됐다. 기존 건물을 활용한 탓에 세련된 멋은 덜한 반면 오히려 좁고 오래된 건물에서 느껴지는 향수를 만끽할 있는 공간이 매력을 더한다.

창동은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 선생을 재조명을 하는 ‘문신예술골목’, ‘마산예술흔적골목’, ‘에꼴드창동골목’ 등 3개 골목이 합해져 ‘창동예술촌’이라는 간판을 달았다.

창동예술촌이 운영하고 있는 예술학교에서 시민이 강좌에 참여하고 있다.
이곳은 좁은 골목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골목 곳곳에 채워진 예술작품을 감상하며, 거니는 동안 다양한 벽화와 조형물을 비롯해 옛 마산의 추억에 덧입혀진 예술인들의 흔적과 작품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 1955년에 개업한 ‘학문당’, 클래식 다방 ‘만초’, 버터빵으로 유명한 ‘고려당’, 40년이 넘은 헌책방 ‘영록서점’ 등 지역 전통명가를 통해 창동의 옛 낭만을 느낄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유일하게 원형을 유지한 250년 된 도심 골목도 거닐 수 있다.

2015년에는 불종거리에서 부림시장까지 155m의 창동 중심 거리 바닥에 2만3000명 세계인들의 이름을 새긴 ‘상상길’이 조성됐다. 2016년에는 오동동 문화광장도 들어서 각종 문화·예술을 도심 한가운데서 즐길 수 있게 됐다.

마산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추산동 언덕에는 문신미술관과 시립박물관이 있다. 조각의 본고장답게 이곳들은 자체가 하나의 조각공원이다.

창동예술촌 입촌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판매하는 공간인 창동예술촌 아트센터.
문신미술관은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이 1994년 설립한 곳으로, 문신 타계 후 2003년에 시립미술관으로 거듭났다. 박물관 아래에는 100년 전 생겨난 성호동과 추산동 일대 달동네가 꼬부랑길 담장마다 벽화를 입으면서 ‘가고파 꼬부랑길 벽화마을’로 재탄생했다.

도시의 흥망성쇠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런 가운데 마산의 역사를 오롯이 간직한 오동동은 성공적인 재생에 한걸음 다가서고 있다.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고, 관광객의 발길을 이끌면서 도심 전체가 서서히 활력을 되찾아 가고 있다. 이종호 기자 jhlee@kookje.co.kr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트위터 페이스북
관련기사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