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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히어로 <4> 다시 찾은 곰내터널의 영웅들

4년 전 기장 곰내터널 유치원 버스 전복사고 기억하십니까
그때 그 영웅의 한마디 “구해준 아이들, 커서 도움 주는 어른 됐으면”
박호걸 신지영 기자 rafael@kookje.co.kr | 2020.04.07 18:56

  
# 시민 활약 빛났던 당시 사고

- 빗길에 미끄러진 유치원 버스
- 터널 지나던 시민들이 구조·수습

# 유리창 깨 아이들 꺼낸 김호신 씨

- “차 안에 대롱대롱 매달린 아이들
- 몇년 지난 지금 생각해도 울컥
- 함께 돕고 살라고 말해주고파”

# 119 구조요청한 강성복 씨

- “아이들 트라우마 생겼을까 걱정
- 얘들아, 항상 너희들 주변엔
- 지켜줄 이가 있다는 걸 잊지마”

2016년 9월 2일 시민들이 부산 기장군 곰내터널에서 넘어진 유치원 버스에서 어린이들을 구조하고 있다. 국제신문DB
부산 동래구 사직동을 출발한 유치원 버스는 어느새 기장군에 들어섰다. 목적지인 장안읍 유아교육원까지 20분 남짓 남았다. 운명의 시간은 점점 다가왔다. 그때가 2016년 9월 2일 비가 내리던 오전 11시.

21명의 아이를 포함해 23명이 탄 노란색 버스는 곰내터널에 진입했다. 그리고 300m쯤 갔을 때였다. 편도 2차로를 달리던 버스는 갑자기 빗길에 미끄러진 듯 균형을 잃었다. 운전자 김 모(당시 76세) 씨는 혼신의 힘을 다해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버스는 오른쪽 벽면을 충돌한 뒤 튕겨서 다시 왼쪽 벽면에 부딪혔다. 충격으로 버스는 오른쪽으로 넘어졌다. 눈 깜짝할 사이 벌어진 절체절명의 순간, 버스에 탄 아이들이 공포에 휩싸여 있었을 때 우리 곁의 시민 영웅, 히든 히어로가 나타났다.

■안전벨트 맨 채 대롱대롱

김호신 씨. 동영상 캡처
김호신(당시 65세) 씨는 사고가 나는 걸 본 후 동승자에게 “빨리 신고하라”고 말한 뒤 버스로 뛰어갔다. 서둘러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김 씨가 버스 내부를 들여다보니 아이들이 안전벨트에 걸려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김 씨는 손주 같은 아이들을 보고 가슴이 울컥했다. 그는 앞뒤 가리지 않고 “도웁시다”, “구합시다”라고 소리쳤다. 아이들을 버스에서 구출하기 위해 발로 유리를 찼지만 깨지지 않았다. 그는 급하게 자신의 차에 있던 망치를 가져와서 버스 뒷유리를 깼다.

김 씨가 유리창을 깨자 다른 시민이 서둘러 차 안으로 들어갔다. 김 씨는 밖에서 “애들 많이 안 다쳤냐”고 물었다. 잠시 후 안에 있던 시민이 아이 한 명을 바깥으로 내보냈다. 김 씨는 그 아이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아이는 울지 않고 “괜찮다”고 씩씩하게 답했다. 다른 시민도 달려와 손을 보탰다. 두 명의 시민이 차 안으로 들어가 안전벨트를 풀어서 아이들을 버스 밖으로 내보내면 밖에서 아이를 받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강성복 씨. 동영상 캡처
당시 외근 후 회사로 복귀하던 강성복(당시 35세) 씨도 손을 보탰다. 강 씨는 119에 전화를 한 후 버스로 달려갔다. 한 60대 남성(김호신 씨)이 망치로 유리를 깨고 있었다. 그는 아이 한 명이 찰과상으로 피를 흘리고 있자 “괜찮다”며 다독였다. 강 씨가 살펴보니 다행히 유치원 교사가 안전벨트를 모두 매게 해 크게 다친 아이는 없었다. 강 씨는 아이를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아이는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그는 “조금 있으면 119 아저씨들 와서 치료도 해주고, 엄마도 오실 거다. 괜찮다”고 안심시켰다. 경찰과 119구조대가 오기 전까지 시민 영웅 11명은 아이들을 다독이며 함께 있었다. 사고 발생 약 10분 후 119구조대와 경찰이 오고 나서야 그들은 조용히 자리를 떴다.

정관지구대 소속으로 ‘곰내터널에 유치원 버스 전복 사고가 났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부산 기장경찰서 이규동 경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사이렌을 울리고 갔지만 터널 내 사고라 차가 많이 막혀 있었습니다. 도착까지 10분 정도 걸렸던 것 같습니다. 마음이 너무 급했는데 도착했을 때 상황을 보고 너무 놀랐습니다. 시민들의 활약으로 거의 정리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이 경사는 지금도 히든 히어로들의 활약을 떠올리면 감사함과 든든함을 동시에 느낀다. 그는 “경찰이 교통사고 현장에서 하는 매뉴얼과 크게 차이가 없을 정도로 시민들이 잘 대처해줬다. 만약 조금 늦었다면 터널 내 2차 사고가 날 가능성도 있었고, 피해자가 아이라 정신적으로도 힘들어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남의 일 돕는 어른이 되길”

사고가 난 지 4년이 지났다. 국제신문은 부산경찰청의 도움을 받아 당시 시민 영웅 11명과 연락을 시도했다. 그 가운데 김호신 씨와 강성복 씨, 두 명과 연락이 닿았다. 취재진은 지난 2일 강서구 건설 현장에서 안전관리기사로 일하는 김 씨를 만났다. 그는 “그때 울산 가던 길이었죠. 구한 아이들 한 명 한 명 다 생각나요”라고 말을 꺼냈다. 김 씨는 “나도 올해 일곱 살이 된 손주가 있다. 사고 당시 아이들이 딱 그만한 나이어서 생각이 가끔 난다”며 “당시 아이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거 떠올리면 아직도 울컥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동구에서 만난 강성복 씨도 “노란 버스 하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차 아니냐. 너무 놀라서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이었다. 그냥 애들부터 구하자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고 생생하게 기억을 되살려냈다.

김 씨는 “울지도 않고 버티던 아이들이 어찌나 기특하던지…. 그러다 한 명이 울기 시작하니까 다 같이 울음을 터뜨렸지”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잘 있는지 궁금하고, 보고 싶기도 해서 언젠가 한 번 찾아가려고 했지. 그런데 다른 사람이 ‘혹시 학부모나 유치원 쪽에서 뭐 받으러 왔다고 오해할 수도 있으니 가지 말자’고 하더라. 그래서 안 찾아갔지”라고 아쉬워했다.

아이들이 궁금한 두 사람에게 혹시 아이들에게 전할 말이 있냐고 물었다. 김 씨는 “사람은 작은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행복해진다. 아이들도 크면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 외면하지 말고 돕고 살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강 씨는 “사고의 경험으로 트라우마가 없을지 걱정된다. 만약 있다면 잘 극복하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주위에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항상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도 커서 큰일이 일어났을 때 바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멋진 청년이 됐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두 분께 감사한 마음을 담아서 통닭을 드렸다. 사양 끝에 “잘 먹겠다”며 호쾌하게 웃는 모습에 취재진도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갔다. “땡큐, 마이 히든 히어로!”

박호걸 신지영 기자 rafael@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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