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검증 후 공판까지 마쳐

“섬에서 재판받으려 배를 타고 육지로 나와 또 차를 타고 재판부가 있는 곳까지 오기 힘드시죠.”

판사들이 섬에 사는 피고인, 피해자 등이 재판을 받으려 일부러 육지로 나오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직접 섬을 찾았다.

부산고법 창원재판부 형사1부(권순형 고법 부장판사)는 20일 경남 통영시 사량도에서 이웃 여성을 강제 추행하고 보복 폭행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기소된 이모(60) 씨에 대한 형사 항소심 재판을 진행했다.

사량도는 통영에서 배를 타면 40분 정도 걸리는 섬이다.

배만 탄다면 얼마 걸리지 않지만 2심 법원인 부산고법 창원재판부는 배를 타고 나온 후 다시 1시간 넘게 차를 타야 할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어 찾아가기가 매우 번거롭다.

자가용 없이 배와 버스를 이용한다면 재판 시간에 맞추기 힘들고 재판을 받은 후 귀가도 문제다.사량도와 통영을 오가는 배가 2시간마다 운행하는 데다 오후 5시에 끊기는 배를 놓치면 하룻밤을 다른 곳에서 묵어야 할 수도 있다.

피고인 이 씨는 물론 피해자, 증인으로 채택된 경찰관 등이 모두 사량도에 살거나 사량도와 가까운 섬에서 근무한다.

1심 재판부인 창원지법 통영지원은 통영 시내에 있어 비교적 가깝다. 섬으로 찾아가는 법정을 열지 않고도 피고인 등이 어려움 없이 재판을 받았다. 그러나 2심 법원이 있는 곳은 창원이다. 피고인 혼자 재판을 받는다면 배를 타고 나와 차량을 이용해 법원을 찾으면 되지만 피해자, 증인 등 여러 명도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원을 찾아야 한다.

결국, 재판부는 이들의 사정을 고려해 섬을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재판에 앞서 현장검증을 위해 재판부가 사량도를 방문해야 하는 데다 증거 조사 등 정확한 실체관계를 파악하기 위해서도 사량도에서 ‘섬으로 찾아가는 법정’을 여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권순형 부장판사 등 형사1부 법관 3명은 이날 오전 배를 타고 사량도에 들어갔다. 재판부는 오전에는 강제추행과 보복폭행이 벌어졌던 현장을 직접 검증했다. 이어 오후부터는 사량면사무소에 마련된 임시법정에서 증인·피고인을 상대로 심문을 진행하고 최후 변론까지 듣는 등 공판절차를 모두 끝내는 방법으로 소송 관계인들의 수고를 덜어줬다.

노수윤 기자 synh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