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영상 중대한 위협 아냐”
- 판결 적용땐 1조원대 부담
- 상고심까지 유지땐 소급
- 코레일 등 115곳 사업장
- 통상임금 소송 진행에 영향
- 판결 제각각 ‘신의칙’ 혼란
- 명확한 범위지정 지적도
기아자동차 노동자들이 31일 통상임금 1심 소송에서 일부 승소함에 따라 현재 진행 중인 전국 115개 사업장의 통상임금 소송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됐다. 법원은 그동안 사측이 통상임금 범위 확대 소송의 반박 논리로 활용했던 ‘신의 성실의 원칙(신의칙)’을 수용하지 않았다. 신의칙이란 노동자들의 통상임금 청구가 무리한 요구라면 사측의 추가 임금 지급 의무가 없고 반대로 사측이 충분히 감내할 수준의 요구라면 신의칙 위반이 아니어서 노동자들에게 추가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 기아차 부담 1조 원 안팎
이날 1심 판결에 비춰 기아차가 통상임금으로 부담할 비용은 1조 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기아차 노동자 2만7458명이 2008년 8월~2011년 10월(3년)까지 청구한 통상임금 소급 청구액은 6900억 원이다. 재판부는 이 중 3000억 원 상당의 소급 임금과 지연 이자를 더해 4223억 원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기아차 노동자 13명은 2011년 10월~2014년 10월(3년) 통상임금 소급액 약 1조1000억 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추가로 냈다. 1심 재판부의 판결을 적용하면 기아차의 부담액은 1조 원대로 증가할 전망이다. 당초 최대 3조 원으로 추정됐던 부담액이 줄기는 했어도 기아차에는 큰 추가지출인 셈이다. 여기에 항소심과 상고심에서도 1심 판결이 유지되면 2014년 11월부터 최근까지 받지 못한 임금까지 소급 지급해달라는 추가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 사업장·심급별 제각각 판단
최근 4년간 전국 100인 이상 사업장 1만여 곳 중 192곳이 통상임금 소송을 제기했다. 이 가운데 노사 합의와 법원 판결로 소송이 마무리된 곳을 제외한 현대차·코레일을 비롯해 115곳에서 소송이 진행 중이다.
앞서 대법원은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통상임금의 정의·요건과 제한 범위에 관한 원칙을 밝혔다. 하지만 지금까지 통상임금 소송은 심급에 따라 신의칙이 인정됐다가 부정되거나 반대로 부정됐다가 인정되는 경우가 잦았다. 재판부마다 판결이 엇갈린 것이다.
최근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이 낸 통상임금 청구 소송에서 항소심(광주고법) 재판부는 신의칙에 따라 미지급 수당을 사측이 줄 필요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아시아나항공 통상임금 소송의 경우 1심에서 부정된 신의칙이 2심에서는 인정됐다. 동원금속의 경우 대전지법 천안지원이 인정한 신의칙을 대전고법(2심)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대중공업의 통상임금 소송 역시 울산지법은 1심에서 신의칙을 부정한 반면 부산고법은 신의칙을 적용했다. 지난해 현대미포조선의 울산지법 1심(신의칙 부정)과 부산고법 2심(신의칙 인정)도 판결이 뒤바뀐 사례다.■ “大法 ‘신의칙’ 범위 명확히 해야”
통상임금 소송에서 법원 판단의 핵심 기준이 되는 ‘신의칙’은 우리 민법의 대원칙이다. 권리 행사나 의무 이행은 물론 법률행위를 할 때 신의에 따라 상대방을 배려하고 신뢰에 반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는 민법 제2조(신의성실)의 법 조항을 넘어 개인 간 자유로운 계약 관계를 규정하는 근대 사법 전반의 절대 규범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3년 “사용자에게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면 신의칙에 위배되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때부터 ‘신의칙’을 놓고 통상임금 소송의 희비가 엇갈려왔다.
기아차 소송 재판부는 ‘신의칙 위반’ 주장은 엄격하게 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에서 인정되는 권리를 행사하는 것인 만큼 이를 제한하려면 그 조건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나 ‘기업 존립의 위태’라는 말이 모두 “모호하고 불확정적인 내용”이라며 “사측의 추가 부담액이 어느 정도가 돼야 그런 요건을 충족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광주고법은 지난달 금호타이어의 2016년 6월 기준 부채가 4조가량에 달하고 워크아웃 종료 이후 당기순손실이 큰 폭으로 증가해 경영 사정이 악화하고 있는 점을 근거로 추가 수당 청구는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결국 대법원의 2013년 판결 이후에도 계속해 통상임금 인정을 놓고 엇갈린 판결이 나오는 것은 ‘신의칙’을 어디까지 인정할지 기준이 명확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대법원이 이를 판례로 정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비등하다.
※신의성실의 원칙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해야 한다’라고 규정한 민법 2조1항을 말한다. 이는 상대방의 신뢰를 배반하지 않도록 성의를 갖고 행동해야 하는 것을 말하며, 권리남용 금지와 함께 민법을 지배하는 대원칙으로 간주된다.
송진영 기자 roll66@kookje.co.kr
- 판결 적용땐 1조원대 부담
- 상고심까지 유지땐 소급
- 코레일 등 115곳 사업장
- 통상임금 소송 진행에 영향
- 판결 제각각 ‘신의칙’ 혼란
- 명확한 범위지정 지적도
기아자동차 노동자들이 31일 통상임금 1심 소송에서 일부 승소함에 따라 현재 진행 중인 전국 115개 사업장의 통상임금 소송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됐다. 법원은 그동안 사측이 통상임금 범위 확대 소송의 반박 논리로 활용했던 ‘신의 성실의 원칙(신의칙)’을 수용하지 않았다. 신의칙이란 노동자들의 통상임금 청구가 무리한 요구라면 사측의 추가 임금 지급 의무가 없고 반대로 사측이 충분히 감내할 수준의 요구라면 신의칙 위반이 아니어서 노동자들에게 추가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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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1심 판결에 비춰 기아차가 통상임금으로 부담할 비용은 1조 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기아차 노동자 2만7458명이 2008년 8월~2011년 10월(3년)까지 청구한 통상임금 소급 청구액은 6900억 원이다. 재판부는 이 중 3000억 원 상당의 소급 임금과 지연 이자를 더해 4223억 원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기아차 노동자 13명은 2011년 10월~2014년 10월(3년) 통상임금 소급액 약 1조1000억 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추가로 냈다. 1심 재판부의 판결을 적용하면 기아차의 부담액은 1조 원대로 증가할 전망이다. 당초 최대 3조 원으로 추정됐던 부담액이 줄기는 했어도 기아차에는 큰 추가지출인 셈이다. 여기에 항소심과 상고심에서도 1심 판결이 유지되면 2014년 11월부터 최근까지 받지 못한 임금까지 소급 지급해달라는 추가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 사업장·심급별 제각각 판단
최근 4년간 전국 100인 이상 사업장 1만여 곳 중 192곳이 통상임금 소송을 제기했다. 이 가운데 노사 합의와 법원 판결로 소송이 마무리된 곳을 제외한 현대차·코레일을 비롯해 115곳에서 소송이 진행 중이다.
앞서 대법원은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통상임금의 정의·요건과 제한 범위에 관한 원칙을 밝혔다. 하지만 지금까지 통상임금 소송은 심급에 따라 신의칙이 인정됐다가 부정되거나 반대로 부정됐다가 인정되는 경우가 잦았다. 재판부마다 판결이 엇갈린 것이다.
최근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이 낸 통상임금 청구 소송에서 항소심(광주고법) 재판부는 신의칙에 따라 미지급 수당을 사측이 줄 필요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아시아나항공 통상임금 소송의 경우 1심에서 부정된 신의칙이 2심에서는 인정됐다. 동원금속의 경우 대전지법 천안지원이 인정한 신의칙을 대전고법(2심)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대중공업의 통상임금 소송 역시 울산지법은 1심에서 신의칙을 부정한 반면 부산고법은 신의칙을 적용했다. 지난해 현대미포조선의 울산지법 1심(신의칙 부정)과 부산고법 2심(신의칙 인정)도 판결이 뒤바뀐 사례다.■ “大法 ‘신의칙’ 범위 명확히 해야”
통상임금 소송에서 법원 판단의 핵심 기준이 되는 ‘신의칙’은 우리 민법의 대원칙이다. 권리 행사나 의무 이행은 물론 법률행위를 할 때 신의에 따라 상대방을 배려하고 신뢰에 반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는 민법 제2조(신의성실)의 법 조항을 넘어 개인 간 자유로운 계약 관계를 규정하는 근대 사법 전반의 절대 규범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3년 “사용자에게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면 신의칙에 위배되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때부터 ‘신의칙’을 놓고 통상임금 소송의 희비가 엇갈려왔다.
기아차 소송 재판부는 ‘신의칙 위반’ 주장은 엄격하게 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에서 인정되는 권리를 행사하는 것인 만큼 이를 제한하려면 그 조건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나 ‘기업 존립의 위태’라는 말이 모두 “모호하고 불확정적인 내용”이라며 “사측의 추가 부담액이 어느 정도가 돼야 그런 요건을 충족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광주고법은 지난달 금호타이어의 2016년 6월 기준 부채가 4조가량에 달하고 워크아웃 종료 이후 당기순손실이 큰 폭으로 증가해 경영 사정이 악화하고 있는 점을 근거로 추가 수당 청구는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결국 대법원의 2013년 판결 이후에도 계속해 통상임금 인정을 놓고 엇갈린 판결이 나오는 것은 ‘신의칙’을 어디까지 인정할지 기준이 명확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대법원이 이를 판례로 정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비등하다.
※신의성실의 원칙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해야 한다’라고 규정한 민법 2조1항을 말한다. 이는 상대방의 신뢰를 배반하지 않도록 성의를 갖고 행동해야 하는 것을 말하며, 권리남용 금지와 함께 민법을 지배하는 대원칙으로 간주된다.
송진영 기자 roll66@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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