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北, 대남 의존적 정책 탈피 결정
- 북미 비핵화 협상도 진전 없어
- 최선희 동행 美 제재에 메시지

- 김, 아세안정상회의 참석 희박
- 현대아산 당혹감 “당국과 협조”
- 개성공단 입주기업 불똥 우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3일 남측 금강산 관광시설을 철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대북 제재가 유지되는 현실에서 남한과 실질적인 관계를 개선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결과로 보인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 진전되지 않으면 금강산 관광 등 남북 경제협력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이 독자 개발로 정책 방향을 선회하겠다는 얘기다.

북한 김정은(오른쪽) 국무위원장이 금강산 관광지구를 현지 지도하며 금강산에 설치된 남측 시설을 철거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위원장의 발언은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의 대남 의존정책에 대한 비판을 넘어 향후 대남정책에서 과거처럼 남측의 협력만 바라는 국정 운영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2018년 1월부터 1년10개월간 남측 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켜보면서 한미 공조를 절대로 뛰어넘지 못할 것이라는 정책적 판단에 따라 대남 의존적 정책을 탈피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한미 양측의 대북 제재 공조로 남측의 협력과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더는 남측의 협력을 기다리지 않고 자체적으로 금강산을 세계적인 관광지로 조성해 외국인 관광객에게 개방, 외화 수입을 올리겠다는 의도가 깔렸다.

‘선대 유산’을 탈피해 ‘김정일표’가 아닌, ‘김정은표’ 경제정책을 보여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집권 이후 선대 수령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면서도 자신의 지향점과 다르거나 시대의 흐름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선대의 정책을 과감히 접는 모습을 보여왔다.

김 위원장은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 집권 시절 남측의 현대그룹 등과 함께 추진한 금강산관광에 대해 “국력이 여릴 적에 남에게 의존하려 했던 선임자의 의존정책이 매우 잘못되었다”고 강하게 비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 위원장의 현지 지도에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동행한 것을 놓고 사실상 관광 재개를 막는 미국을 염두에 둔 메시지라는 해석도 나온다. 남북 관계가 또다시 얼어붙으면서 다음 달 25, 26일 부산에서 열리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김 위원장이 참석할 가능성은 작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남북 경협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현대그룹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현대그룹은 이날 ‘현안 관련 현대아산 입장’이라는 제목의 자료를 내고 “관광 재개를 준비하는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보도에 당혹스럽지만 차분히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주영 회장 때부터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30여 년간 신뢰를 바탕으로 이어온 남북 경협이 쉽게 중단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희망을 잃지 않고 당국과 협조하고 준비하겠다”고 덧붙였다.

개성공단에 입주했던 부산지역 업계는 금강산 문제를 개성공단으로 확대 해석하는 데 경계감을 나타내면서도 불똥이 튀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이 없고 정치적으로 해결할 여지도 남아 있어서다.

개성공단 전체 125개 입주사 가운데 부산 경남지역 업체는 10여 곳이다. 삼덕통상 문창섭 회장은 “아직 개성공단 철회 가능성에 관한 분석은 이르다”며 “금강산 문제를 정부가 어떻게 풀어내는지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옥재 민건태 김해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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