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식 전 부총리의 환란 이야기 <7> 기아의 허상과 실상
전문경영 기아, 내부는 노사유착 복마전회장·노조위원장 사실상 한 몸, 노사간 견제 실종
'재벌놀음' 빠져 차입경영· 회계 조작 4조 적자 숨겨
부도후엔 구조조정보다 정치력 동원 위기모면 시도
잊을 수 없는 일들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2007.04.15 20:40
![]() |
| 지난 1997년 8월 당시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위원이 기아자동차 소하리 공장을 방문, 기아 회생을 위한 당과 정부의 지원책을 밝히고 있다. |
기아는 재계 8위의 대기업이었다. 그런 기아가 부도 위기에 몰리게 됐다. 기아의 이미지는 좋았고 국민들의 애정은 각별했다. 기아는 '전문 경영인'이 경영하는 '가장 모범적인 기업'으로 알려졌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 전문경영인 체제, 종업원 지주제도와 주식소유 분산 등 모든 면에서 다른 대기업과는 달랐다. 오너가 없는 모범 기업으로 두 발 자전거에서 출발, 세 발 오토바이를 거쳐 네 바퀴 자동차를 생산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하였고, 특히 봉고를 만든 기아로 서민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었다. 기아는'국민 기업'으로 불릴 정도였다. 그러기에 정부가 적극 나서 기아를 살려야 한다는 것이 당시의 압도적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는 기아의 허상이었다. 기아의 실상은 이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불행하게도 부도에 몰린 당시 기아의 실상은 허상에 가려져 있었다.
기아에는 대주주가 없다고 알려졌지만 우리 사주 조합과 경영발전위원회가 지배주주로서 다른 기업의 대주주 격이었다. 사실상 종업원의 대표가 대주주 행세를 하다 보니 김선홍 회장은 근로자에 대해 '온정주의'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노조의 요구를 쉽게 들어주게 됐고 노조는 그런 김 회장을 보호하기 위해 파업도 불사하는, 기묘한 노사 간의 유착 관계가 만들어졌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전문 경영인'이 경영하는 가장 모범적인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실상은 회장과 노조 위원장이 한 몸인 셈이었다. 경영과 노사 간의 견제 장치가 없어졌고 경영 자체가 없어지고 말았다.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지만 경영 실패에 대해 책임을 묻을 일은 없었다.
전문 경영인이 경영하는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알려졌던 기아도 계열기업을 28개까지 거느리는 등 '재벌 놀음'에 빠져 있었다. 자동차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건설 5개사, 금융 3개사, 정보통신 3개사를 거느리는 등 문어발의 전형이었다. 덩치만 키우면 안 망한다는'대마불사'의 미신에 사로잡혀 있는 것도 다른 재벌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이런 무모한 사업 확장을 위해 닥치는 대로 차입을 했다.부도에 몰릴 때까지 은행들은 기아와 거래를 하기 위해 앞다투는 형국이었다. 자금을 조달하는 데 애로를 느껴본 일이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부도난 뒤에도 채권단에 대해서 고자세였다. 그런 기아도 한 번 부도에 몰리자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갔다. 채권자 회의에 무려 150개 기관이 참석했다. 만일 기아가 이런 재벌 놀음을 하지 않고 자동차에만 전념했더라면 부도에 몰리는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었다. 기산, 기아특수강, 아시아자동차 등 계열기업에 대해 3조7000억 원에 이르는 빚보증을 선 것이 자금난에 몰리는 직접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후 기아와 아시아 자동차가 7년간 4조5000억 원에 이르는 적자를 숨기고 이익이 난 것처럼 회계 처리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다. 1997년 말 당기 순손실도 3829억 원에서 3조3977억 원으로 무려 3조 이상 늘어났다. 기아자동차는 말하자면 분식회계의 결정판이었다. 전사적 차원에서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분식회계에 나선 사실이 밝혀지면서 기아는 '국민 기업'에서 경영진과 노조가 짜고 사리 추구를 해 온 '범죄 집단'으로 추락했다.
기아는 구조조정을 하는 등 경제 원칙에 따라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정치적인 영향력을 동원해서 어려운 상황을 모면하려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했다. 기아는 기업이라기보다는 정치 집단이었다. '기아 살리기'는 기업을 살리라는 것이 아니었다. '김선홍 회장과 노조'의 요구를 옳고 그름을 가리지 말고 그대로 다 들어주라는 것이었다. 기아가 정부 방침에 순응, 구조조정 노력을 보였다면 해외에서의 기아에 대한 평가는 물론 우리 경제에 대한 평가도 좋은 쪽으로 바뀔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처음부터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실상을 꿰뚫어보고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원론적 해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이 나의 가장 큰 실책이 되고 말았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창간기획] 낙동강 하구 0.9℃의 경고](design/m_littletern2025.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