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시영의 '사람&세상' <15> 김철중 부산시바둑협회 고문
40년 부산바둑계 대부 “수읽기 묘미는 세대 초월 … 옛 인기 되살릴 것”
선임기자 ksyoung@kookje.co.kr
| 2021.08.10 20:17
- 1980년대부터 저변 확대에 앞장
- 남녀노소 수많은 제자들 키워내
- 동호인 줄며 기원·아마대회 급감
- 남구·연제구協 창립은 가뭄 단비
- 온·오프라인 혼합식 대회 추진중
- 대면 대국으로 얻는 게 다섯가지
- 그 중 최고는 ‘좋은 벗’ 사귀는 것
과거 바둑은 국민적 취미·여가활동의 하나로 각광받았다. 그만큼 바둑인구가 많았고 대중에게 친숙하게 느껴졌다. 우리 사회의 관용어 중 바둑에서 유래한 것도 수두룩하다. 승부수·악수·자충수·무리수·헛수·정석·포석·패착·미생·완생·장고·수읽기·초읽기 등이 그렇다. 하지만 근래에는 대중적 인기와 관심이 점차 줄어들고 침체에 허덕인다. 게다가 코로나 장기화로 각종 대회를 열지 못하면서 어려움이 가중되는 형국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부산 바둑계의 ‘대부’로 통하는 아마 7단 김철중(70) 선생을 만났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한국기원 김철중 바둑연구소’(연제구 거제동)를 운영하고 한국유소년바둑연맹 상임고문과 부산시바둑협회 고문, 대한바둑협회 심사위원장 등을 맡고 있는 그의 바둑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다.
그는 고향 부산에서 1980년대부터 기원(棋院)의 지도사범으로 활동했다. 1990년 이후로는 대중 바둑교육·보급에 발벗고 나섰다. 1991~2008년 여성 대상의 무료 바둑교실을 18년간 펼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노인복지회관과 아동청소년회관 등에도 무료 강의를 나갔다. 그러니 제자가 셀 수 없이 많고, 지역 바둑계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특히 1997년 7~12월 국제신문 지면에 서울 중심의 바둑이 아닌 ‘부산바둑 이야기’(부산바둑 야사)를 처음으로 연재했던 주인공이다. 전국 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한 그는 국내 ‘아마바둑 강호’로 이름을 날렸고, 프로기사 뺨칠 만큼 실력도 뛰어났다.
-요즘 바둑계가 큰 어려움을 겪는다.
▶코로나 전에는 전국의 연간 (아마추어) 대회가 큰 규모만 80개 정도(대부분 지방자치단체 주최) 였는데, 지금은 거의 올스톱 상태다. 보통 500명 이상 모여서 ‘대면 바둑’을 둬야 하니까 개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회에 나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너무나 안타깝다.
-부산 지역은 어떤가.
▶과거 부산에는 기업체들의 후원(스폰서) 덕분에 큰 대회 수가 6, 7개 됐는데, 현재는 2개(부산시장배 교육감배)밖에 남지 않았다. 대회가 너무 없다 보니 지역 애호가들이 3년 전 활성화 차원에서 (공식대회가 아닌) 부산바둑리그를 만들어 운영했지만 코로나 사태로 중단되었다.
-바둑학원이나 기원도 옛날보다 대폭 줄어든 걸로 보인다.
▶그렇다. 바둑이 중흥기로 잘 나갈 때(1980~90년대, 조훈현 9단의 응창기 제패와 ‘돌부처’ 이창호 9단의 타이틀 석권 등으로 바둑붐이 일었을 때)는 전국적으로 바둑학원이 1000개가 넘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250~300개로 추산된다. ‘방과후교실’이 생기면서 그쪽으로 옮겨간 영향도 크다.
시대 변화로 바둑에 대한 관심과 바둑계 위상은 예전만 못하다. 과거 1000만, 1200만을 헤아리던 바둑인구는 이제 7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국내 신문사들이 전통적으로 개최했던 프로대회와 기전(棋戰)도 줄줄이 없어졌다. 2016년에는 이세돌-알파고(인공지능·AI) 간 세기의 대결, 그리고 바둑 소재의 웹툰과 TV드라마(응답하라 1988), 영화(신의 한수) 등으로 관심이 모아졌지만 지속되지는 않았다. 그의 표현처럼 반짝 붐에 그친 셈이다.
-그런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우선, 젊은층이 바둑을 잘 안 두는 것 같다. 1970~80년대는 고교생이나 대학생들이 기원 등에서 바둑을 자주 뒀다. 그때는 부산의 각 대학에 기우회(바둑동아리)가 있었고, 4개 대학 간 바둑교류전도 펼쳐졌는데 그런 활동들이 없어졌다. 시청이나 국세청 등에서의 바둑모임도 예전에 비해 활발하지 못하다. 과거에는 먹고 살기가 어려워도 생활(마음)에 여유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 반대다. 먹고 사는 것은 나아졌지만, 생활에 여유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일부 기원들의 잘못으로) 기원은 노름방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생긴 것도 영향이 있지 싶다.그는 국내 프로리그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냈다. 예전처럼 일반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 보니,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부산 지역의 바둑이 전반적으로 위축됐지만, 저변 확대를 위한 동호인들의 움직임이 없는 건 아니다. 지난달 연제구바둑협회(초대 회장 백상오)가 ‘김철중 바둑연구실’에서 창립총회를 가진 것이다. 기존 남구협회에 이어 두 번째로 생긴 것으로 부산 바둑계에 가뭄의 단비나 마찬가지다. 백 회장은 “오직 바둑 저변을 확대하려는 취지다. 이런 움직임이 시내 다른 지역으로 전파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연제구협회장배 대회를 연내 마련할 계획이다. 코로나와 사회적 추세를 감안해 예선은 온라인으로, 본선은 소규모 인원이 참석하는 대면대국으로 진행하는 구상도 갖고 있다.
-온라인에서의 비대면 바둑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시대와 세태 변화에 따른 것이겠지만, 바둑의 본질은 역시 서로 마주 앉아서 하는 대면대국이다. 특히 과거 바둑은 예의와 도(道) 인성 품성 등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근래에는 스포츠 종목의 하나가 되면서 (바둑과 관련한) 모든 것이 빨라지고, 이기는 것만이 최고인 것으로 바뀐 모양새다.
사실, 인터넷 바둑을 둬 보면 장점도 있지만 단점을 많이 느끼게 된다.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반면 속기로 너무 빨리 이뤄지다 보니, 싫증을 느끼고 흥미를 잃기 쉽다. 온라인의 특성을 악용한 비매너 행위도 다반사로 벌어진다. 예를 들면 대마가 죽어 승부가 맹백히 졌는데도, 두지 않고 시간만 끄는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바둑의 원래 가치는 영원하지 않겠나.
▶그 가치는 한마디로 생각하는 힘이다. 바둑용어로는 ‘수읽기’다. 바둑은 어릴 때부터 생각하는 힘과 머리를 쓰는 힘, 집중력을 길러준다. 그뿐만 아니라 기도오득(棋道五得)이란 표현도 있다. 이는 ‘바둑을 하면 얻는 다섯 가지’를 뜻한다. 그것은 좋은 벗, 인화(사람과의 화목), 인생의 교훈, 마음의 깨달음, 천수(天壽 ·타고난 수명)다. 그런데 오래 살지 못하는 사람도 있으니, ‘천수’를 얻는다는 것은 맞지 않다는 얘기도 있다(웃음).
그가 ‘오득’ 중 제일로 꼽고 마음에 들어하는 것은 역시 득호우(得好友)다. 그의 반세기 바둑인생에서 체득한 것이다. 전국 곳곳에 그의 지인이 많고 프로기사들과 친한 이유이기도 하다. 유명 가수이자 바둑광이었던 고 함중아와도 바둑으로 친분을 쌓았다. 잘 모르는 사람과도 바둑 한 판을 두고 나면, ‘복기’와 ‘수담’ 등으로 금방 친해지고 다시 만나게 되는 게 바둑이기 때문이다. 반상에 361개의 칸으로 이뤄진 바둑은 ‘경우의 수’가 워낙 많아서 어렵지만, 그것을 알면 알수록 재미있다며 그는 바둑예찬론을 편다. 남녀노소 함께 즐길 수 있고, 젊은 세대와도 바둑을 매개로 대화가 된다는 얘기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얘기한다면.
▶젊은 시절 군 입대를 앞두고 서울의 한국기원에 갔을 때 (고) 조남철 선생님(한국 바둑의 개척자이자 대부로 불린 인물)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그때 조 선생님이 후배 프로기사들의 잘못된 행동을 꾸짖으며 바둑 두는 사람의 올바른 자세를 일깨워주던 모습이 아직도 생각난다.
그는 영원한 바둑인이다. 가장 바라는 것이 뭐냐는 질문에 서슴없이 “바둑 대중화와 활성화”라고 말한다. 그만큼 저변 확대에 목이 마르다. 그런 점에서 코로나 사태가 조속히 끝나고 부산시장배 시민바둑대회(부산시·국제신문 주최)를 비롯한 각종 바둑대회가 다시 열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그가 1978년 만든 일석회는 부산의 가장 오래된 바둑동호회 중 하나로 꼽힌다. 40년 넘도록 지역 바둑계의 전통과 명맥을 잇고 있는 것이다. 그처럼 김철중 고문의 바둑에 대한 열정과 부산바둑 이야기는 끝이 없어 보인다.
선임기자 ksyoung@kookje.co.kr
- 남녀노소 수많은 제자들 키워내
- 동호인 줄며 기원·아마대회 급감
- 남구·연제구協 창립은 가뭄 단비
- 온·오프라인 혼합식 대회 추진중
- 대면 대국으로 얻는 게 다섯가지
- 그 중 최고는 ‘좋은 벗’ 사귀는 것
과거 바둑은 국민적 취미·여가활동의 하나로 각광받았다. 그만큼 바둑인구가 많았고 대중에게 친숙하게 느껴졌다. 우리 사회의 관용어 중 바둑에서 유래한 것도 수두룩하다. 승부수·악수·자충수·무리수·헛수·정석·포석·패착·미생·완생·장고·수읽기·초읽기 등이 그렇다. 하지만 근래에는 대중적 인기와 관심이 점차 줄어들고 침체에 허덕인다. 게다가 코로나 장기화로 각종 대회를 열지 못하면서 어려움이 가중되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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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바둑계의 ‘대부’이자 산증인으로 불리는 김철중 한국유소년바둑연맹 상임고문은 “시대와 세상이 바뀌어도 바둑의 가치와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생각하는 힘과 머리를 쓰는 힘을 길러주는데 있다”고 말한다. 김종진 기자 kjj1761@kookje.co.kr |
그는 고향 부산에서 1980년대부터 기원(棋院)의 지도사범으로 활동했다. 1990년 이후로는 대중 바둑교육·보급에 발벗고 나섰다. 1991~2008년 여성 대상의 무료 바둑교실을 18년간 펼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노인복지회관과 아동청소년회관 등에도 무료 강의를 나갔다. 그러니 제자가 셀 수 없이 많고, 지역 바둑계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특히 1997년 7~12월 국제신문 지면에 서울 중심의 바둑이 아닌 ‘부산바둑 이야기’(부산바둑 야사)를 처음으로 연재했던 주인공이다. 전국 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한 그는 국내 ‘아마바둑 강호’로 이름을 날렸고, 프로기사 뺨칠 만큼 실력도 뛰어났다.
-요즘 바둑계가 큰 어려움을 겪는다.
▶코로나 전에는 전국의 연간 (아마추어) 대회가 큰 규모만 80개 정도(대부분 지방자치단체 주최) 였는데, 지금은 거의 올스톱 상태다. 보통 500명 이상 모여서 ‘대면 바둑’을 둬야 하니까 개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회에 나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너무나 안타깝다.
-부산 지역은 어떤가.
▶과거 부산에는 기업체들의 후원(스폰서) 덕분에 큰 대회 수가 6, 7개 됐는데, 현재는 2개(부산시장배 교육감배)밖에 남지 않았다. 대회가 너무 없다 보니 지역 애호가들이 3년 전 활성화 차원에서 (공식대회가 아닌) 부산바둑리그를 만들어 운영했지만 코로나 사태로 중단되었다.
-바둑학원이나 기원도 옛날보다 대폭 줄어든 걸로 보인다.
▶그렇다. 바둑이 중흥기로 잘 나갈 때(1980~90년대, 조훈현 9단의 응창기 제패와 ‘돌부처’ 이창호 9단의 타이틀 석권 등으로 바둑붐이 일었을 때)는 전국적으로 바둑학원이 1000개가 넘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250~300개로 추산된다. ‘방과후교실’이 생기면서 그쪽으로 옮겨간 영향도 크다.
시대 변화로 바둑에 대한 관심과 바둑계 위상은 예전만 못하다. 과거 1000만, 1200만을 헤아리던 바둑인구는 이제 7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국내 신문사들이 전통적으로 개최했던 프로대회와 기전(棋戰)도 줄줄이 없어졌다. 2016년에는 이세돌-알파고(인공지능·AI) 간 세기의 대결, 그리고 바둑 소재의 웹툰과 TV드라마(응답하라 1988), 영화(신의 한수) 등으로 관심이 모아졌지만 지속되지는 않았다. 그의 표현처럼 반짝 붐에 그친 셈이다.
-그런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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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바둑연구실 내 해설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철중 고문. 김종진 기자 |
-온라인에서의 비대면 바둑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시대와 세태 변화에 따른 것이겠지만, 바둑의 본질은 역시 서로 마주 앉아서 하는 대면대국이다. 특히 과거 바둑은 예의와 도(道) 인성 품성 등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근래에는 스포츠 종목의 하나가 되면서 (바둑과 관련한) 모든 것이 빨라지고, 이기는 것만이 최고인 것으로 바뀐 모양새다.
사실, 인터넷 바둑을 둬 보면 장점도 있지만 단점을 많이 느끼게 된다.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반면 속기로 너무 빨리 이뤄지다 보니, 싫증을 느끼고 흥미를 잃기 쉽다. 온라인의 특성을 악용한 비매너 행위도 다반사로 벌어진다. 예를 들면 대마가 죽어 승부가 맹백히 졌는데도, 두지 않고 시간만 끄는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바둑의 원래 가치는 영원하지 않겠나.
▶그 가치는 한마디로 생각하는 힘이다. 바둑용어로는 ‘수읽기’다. 바둑은 어릴 때부터 생각하는 힘과 머리를 쓰는 힘, 집중력을 길러준다. 그뿐만 아니라 기도오득(棋道五得)이란 표현도 있다. 이는 ‘바둑을 하면 얻는 다섯 가지’를 뜻한다. 그것은 좋은 벗, 인화(사람과의 화목), 인생의 교훈, 마음의 깨달음, 천수(天壽 ·타고난 수명)다. 그런데 오래 살지 못하는 사람도 있으니, ‘천수’를 얻는다는 것은 맞지 않다는 얘기도 있다(웃음).
그가 ‘오득’ 중 제일로 꼽고 마음에 들어하는 것은 역시 득호우(得好友)다. 그의 반세기 바둑인생에서 체득한 것이다. 전국 곳곳에 그의 지인이 많고 프로기사들과 친한 이유이기도 하다. 유명 가수이자 바둑광이었던 고 함중아와도 바둑으로 친분을 쌓았다. 잘 모르는 사람과도 바둑 한 판을 두고 나면, ‘복기’와 ‘수담’ 등으로 금방 친해지고 다시 만나게 되는 게 바둑이기 때문이다. 반상에 361개의 칸으로 이뤄진 바둑은 ‘경우의 수’가 워낙 많아서 어렵지만, 그것을 알면 알수록 재미있다며 그는 바둑예찬론을 편다. 남녀노소 함께 즐길 수 있고, 젊은 세대와도 바둑을 매개로 대화가 된다는 얘기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얘기한다면.
▶젊은 시절 군 입대를 앞두고 서울의 한국기원에 갔을 때 (고) 조남철 선생님(한국 바둑의 개척자이자 대부로 불린 인물)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그때 조 선생님이 후배 프로기사들의 잘못된 행동을 꾸짖으며 바둑 두는 사람의 올바른 자세를 일깨워주던 모습이 아직도 생각난다.
그는 영원한 바둑인이다. 가장 바라는 것이 뭐냐는 질문에 서슴없이 “바둑 대중화와 활성화”라고 말한다. 그만큼 저변 확대에 목이 마르다. 그런 점에서 코로나 사태가 조속히 끝나고 부산시장배 시민바둑대회(부산시·국제신문 주최)를 비롯한 각종 바둑대회가 다시 열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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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 ksyoun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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