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포티 밈이 유행이다. 10여 년 전 ‘트렌드에 민감하고 자기 관리에 적극적인 40대’를 뜻하던 조어는 이제 조롱의 단어가 됐다. 영포티를 향한 조롱은, 다른 사람은 다 아는데 자신들만 모르는 포티의 착각을 겨냥한다.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취향을 소비하면 영(young)해질 수 있다는 착각, 영포티 룩은 또 어떤가. 포티는 20대들이 입는 옷보다 서너 배 비싼 스트릿 패션 브랜드를 걸치면서 자신이 힙하고 트렌디하다는 것을 과시한다. 젊어 보이지도, 어울리지도 않는데 자신들만 모르는 우스꽝스러움, 영포티는 젊은 여성에게 어필한다고 믿는 자의식 과잉의 40대 남성이고 20대 여성에게 들이대는 정신 나간 ‘개저씨’다. 보수 성향의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40대 민주당 지지자를 조롱하는 의미로도 쓴다. 회사에서는 젊은 감각인 척, 개방적인 사고를 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꽉 막힌 ‘꼰대’이다.

2030은 조롱과 혐오의 밈을 일종의 ‘놀이문화’로 받아들인다. 어느 집단을 조롱하는 게 가장 즐거울까? 나이에 맞는 현실의 무게를 껴안고 살아가는 중년은 애초 대상에서 제외된다. 조롱해 봤자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젊게 산다고 착각하거나 2030을 잘 이해한다고 믿는 꼰대, 돈으로 젊음을 살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그 대상이다. 왜 40대가 타깃이 됐을까. 2030에게 60대가 젊어 보이려 애쓰는 건 애잔하거나 귀엽거나 때론 멋있을 수 있지만, 40대는 전혀 다르다. 40대는 2030과 연결된 나이, 곧 그들의 미래이며 나이 차도 얼마 나지 않는 이웃 어른이다. 오래전에 프로이트가 언급했듯 이웃이란 불편한 침입자에 가깝다. 우리를 불안케 하고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타인이다. 가장 끔찍한 타인은 멀리 사는 원수가 아니라 늘 마주하는 직장의 40대 팀장이다.

20대는 돈은 없는데 젊음은 있다. 자신들의 유일한 무기인 젊음을 돈으로 산 가짜 젊음은 혐오의 대상일 뿐이다. 여기엔 40대의 구매력에 대한 시기심 내지는 내 것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이 내재된 게 아닐까. 나를 호시탐탐 노리는 침입자에 대한 경계심, 포티 역시 늙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짜 젊음의 판타지로 감추려는 게 아닐까. 영포티 밈의 유행에는 이상화된 젊음을 소비하는 소비지상주의의 환멸이 담겨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영포티 밈에 왜 여성은 등장하지 않을까? 20대 여성에게 ‘고백 공격’을 하는 영포티는 있어도 20대 남성에게 들이대는 영포티 여성 밈은 없다. 여기서 이 담론이 상대적으로 기득권 남성인 영포티의 위선과 이중성을 겨냥하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내가 진료실에서 만나는 대다수 40대는 영포티 밈과 확연히 다르다. 인생의 딱 중간인 허리 나이에 가장 왕성한 활동 시기의 한국 중추 세대라고 하지만, 축 처진 어깨에 구부정한 척추측만증의 자화상이 그려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40대를 ‘낀 세대’라 부르기도 했다. 직장 생활에서 위에 치이고 아래에서는 똑똑한 후배들이 치고 올라온다. 젊은 세대와 잘 어울리지 못하고 86세대와의 경쟁에서 박탈감을 경험한다. 앞과 뒤가 다 막혀 있다. 아래로 자녀 양육과 위로는 부모의 노후를 지탱하는 연령대, 그 무게가 무거울수록 척추가 휘어질 수밖에 없다.영포티 밈은 2030이 스스로 유행시켰다. 윗세대가 아랫세대에 MZ라는 딱지를 붙이고 ‘MZ는 이래서 안 돼’라고 비아냥댔다면 지금은 젊은 세대가 역공을 취한다. 세대론을 당한 세대가 또 다른 세대론으로 반격한 셈이다. 그저 연령대로만 나눈다면 어느 시대건 젊은이들 모습은 다 비슷비슷해진다. 가령 MZ 세대는 한국의 기성세대가 만든 콩글리시다. 미국에서 ‘밀레니얼’과 ‘Z 세대’라는 용어는 있지만 MZ 세대라고 부르는 경우는 없다. 나이로 30년이나 차이 나는 MZ를 하나로 묶는 건 무리가 따르고, 단순한 연령별 구분으로 일반화하면 갈등만 반복하게 된다. 세대 갈등은 언제나 있었다. 사회가 불안할수록 사람들은 소속감을 통해 안정을 찾으려 하고, 세대라는 구분은 소속감을 충족하기 좋은 도구다. 하지만 그 경계가 너무 뚜렷해질 때, 갈등은 단순하게 희화화하고 양측은 출구 없는 전쟁 속에 갇혀 버린다.

세대론이 불편한 이유는 정작 주목해야 할 문제를 은폐하기 때문이다. 청년세대의 박탈감과 심각한 고용 주거 빈곤, 사회적 고립 문제는 조롱 속에서 먼지처럼 부유할 뿐이다. 고학력 2030 장기 실업자가 급증하고 20대 후반 10명 중 4명은 임시직이거나 백수로 지낸다. AI 확산으로 인한 격변 속에서 생존경쟁에 뛰어든 청년의 현실은 그 어느 때보다 암울하다. 결국 영포티는 40대만이 아닌 40대를 포함한 기성세대를 향한다. 불공정과 부조리, 불평등의 사회적 구조 개선에 기성세대는 어떤 역할을 했나? 정치는 갈라치기로 세대론을 악용해 왔다. 이런 식이라면 영포티 밈이 끝나면 지금의 10대가 2030을 공격할 것이다. 영포티 밈은 결국 2030이 기성세대에게 ‘당신은 나잇값을 하는, 존경할 만한 어른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