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 중세 고려의 스포츠, 격구
말 타고 긴 채로 공 치는 군사훈련이자 인기놀이정치적 권위 약한 군주, 대회 개최 상대적 많아
정은정 부경역사연구소 연구원
해양도시 피난수도 롯데자이언츠 산복도로 갈매기 고등어…. 부산하면 떠올릴 여러 단어이다. 단연 으뜸은 롯데자이언츠일 것이다. ‘롯데가 이겨야 집구석이 편하다’ ‘롯빠’ ‘봄데’는 롯데 야구를 향한 부산 사람의 애증을 표한다. 롯데자이언츠 팬의 열띤 응원 문화는 BBC에서 외국인 관광상품으로 추천할 정도다.
롯데자이언츠는 1979년 12·12 반란으로 집권한 전두환이 정권 창출의 부당성을 덮고자 실시한 3S(섹스 스크린 스포츠) 정책의 하나로 출범했다. 프로야구 출범 경기에서 전두환은 미소를 머금은 채 폼 나게 시구를 했다. 롯데자이언츠는 부산을 지역으로, 대기업 롯데가 돈줄을 대는 야구단이다. 프로스포츠가 지역 연고제로 운영되는 건 조금의 문제는 있다. 지역 간 경쟁을 부추겨 대결구도를 만드는 엉뚱한 결과를 초래한다. 스포츠에 잠식된 여러 비뚤어진 권력의 작동은 시간의 원근을 초월해 멀리 고려에서도 찾아진다.
당시 스포츠는 국왕과 왕실 구성원, 귀족의 독점 종목이자 군사훈련이었다. 또는 권력을 드러내는 장이었다. 오죽하면 스포츠 경기가 문무 정권의 교체를 알리는 도화선이 됐다. 의종 당시 왕이 개최한 수박희 경기에서, 연로한 대장군 이소응이 패해 도망가자 한뢰가 그의 빰을 때린 일이 있었다. 정중부 이고 이의방이 분노하여 문신 임종식 이복기를 죽이고 무신정변을 일으켰다.
맨손 스포츠가 수박희라면 구기 종목은 축국 격구 포구락이다. 격구는 말 위에서 장시라는 긴 채로 공을 쳐서 상대 골문에 넣는 놀이다. 공을 친다는 점에서는 야구와 비슷하지만 실은 폴로 같다. 격구는 기원전 500년 페르시아에서 티베트를 거쳐 중국의 당 신라 일본에 전래됐다. 당 말에는 여성도 격구 시합을 했다. 격구는 송에 와서 널리 유행했다. 거란과 금에서는 격구가 국가적 제천의례였다.
한국에 격구는 이미 고구려 때부터 있었다. 일본 나라 현의 고분벽화에 고구려 여인이 격구채를 들고 있는 그림이 있다. 경주 구정동 고분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 석조물에서 서역인으로 보이는 인물이 하키채처럼 굽은 격구채를 들고 있다. 격구장 크기는 고려 당시 좌우 200보(260ｍ)정도 된다. ‘경국대전’에서 복원한 격구 공은 직경 12.9㎝, 22g 정도이다.
고려 격구는 태조 원년 9월 후백제 아자개가 투항해 오자 구장에서 맞이했던 게 처음이다. 문종 27년 송나라에서 수입한 포구락은 당악정재로 수록됐다. 국가 차원에서 거행한 공식적 격구 시합은 예종 5년 정월 개경 본궐에서 신기군 검열을 위한 마상격구를 개최한 기록이 최초이다. 예종 11년 왕을 영접할 때 부녀자들이 말 위에서 격구희를 했다. 원의 영향을 받은 충렬왕 이후부터 5월 단오일이 격구 시합일로 고정됐다. 격구는 고려말에 이르러 민간에게도 널리 퍼졌다. 단옷날 큰 길가에 구문(골문)을 세우고 격구 시합을 했다. 격구 시합에서 공치고 던지는 사람은 젊은 무관과 사대부 자제, 시구자는 기녀, 관람자는 백성이었다. 격구는 왕 관인 민이 대거 참여하는 대규모 스포츠였다. 유독 호협한 군주로 평가절하 받던 의종 충혜왕 우왕대에 격구 개최 횟수가 잦다. 정치적 권위가 약한 이들이 스포츠가 지닌 통합과 친목을 기제로 자신의 권력을 다지려 했던 건 아닐까.
격구 장소는 궐내 만월대 중광전 의봉루 구정 이궁 사찰 앞뜰이다. 더러는 민간의 집이나 시전 시장골목 지화재 고라리의 고갯길에서도 치러졌다. 구정을 스포츠 장소인 격구장으로 오인한 건 개경의 풍속을 기록한 중경지에 ‘고려의 풍속이 격구를 좋아해 왕궁에도 구정을 두었다’는 데 있다. 중경지는 문자 그대로 구정을 격구가 행해진 뜰 정도로 해석했다. 훨씬 지난 일제강점기 일본 학자와 최남선에 이르러 구정은 격구장으로 굳혀졌다.
사실 구정은 고려 국가의 천하관과 역사 인식, 권력이 강제된 공간이다. 구정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유교 경전을 모티브로 만든 시설이다. 구정은 천하의 중심이라는 상징적 의미도 띠었다. 구정에서 치러진 축제 팔관회를 비롯한 각종 행사는 국왕을 정점으로 한 고려 국가질서 체계의 확립에 기여했다. 구정은 개경 외에도 서경 동경에도 있었다. 고종 19년(1232) 몽골과 장기 항전을 위해 천도한 강화 궁궐에도 광장인 구정을 조성했다.
고려 격구가 고려의 권력 구도 속에서 왕 귀족 백성이 뒤섞인 공간에서 이뤄졌듯 현대판 구정인 사직 야구장도 그리 다르지 않다. 롯데 팬들은 신문지 비닐봉지를 활용해 자발적 응원 문화를 발전시키고 있다. 이는 팬덤을 넘어 부산의 지역 정체성과 자존심의 표출이다. 정치 자본 팬덤이 얽힌 이 구장에서 우리는 승리 이상의 것을 응원한다. 부디 롯데자이언츠가 지역과 역사, 권리와 책임이 어우러진 성숙한 공동체의 상징이길 바란다.
롯데자이언츠는 1979년 12·12 반란으로 집권한 전두환이 정권 창출의 부당성을 덮고자 실시한 3S(섹스 스크린 스포츠) 정책의 하나로 출범했다. 프로야구 출범 경기에서 전두환은 미소를 머금은 채 폼 나게 시구를 했다. 롯데자이언츠는 부산을 지역으로, 대기업 롯데가 돈줄을 대는 야구단이다. 프로스포츠가 지역 연고제로 운영되는 건 조금의 문제는 있다. 지역 간 경쟁을 부추겨 대결구도를 만드는 엉뚱한 결과를 초래한다. 스포츠에 잠식된 여러 비뚤어진 권력의 작동은 시간의 원근을 초월해 멀리 고려에서도 찾아진다.
당시 스포츠는 국왕과 왕실 구성원, 귀족의 독점 종목이자 군사훈련이었다. 또는 권력을 드러내는 장이었다. 오죽하면 스포츠 경기가 문무 정권의 교체를 알리는 도화선이 됐다. 의종 당시 왕이 개최한 수박희 경기에서, 연로한 대장군 이소응이 패해 도망가자 한뢰가 그의 빰을 때린 일이 있었다. 정중부 이고 이의방이 분노하여 문신 임종식 이복기를 죽이고 무신정변을 일으켰다.
맨손 스포츠가 수박희라면 구기 종목은 축국 격구 포구락이다. 격구는 말 위에서 장시라는 긴 채로 공을 쳐서 상대 골문에 넣는 놀이다. 공을 친다는 점에서는 야구와 비슷하지만 실은 폴로 같다. 격구는 기원전 500년 페르시아에서 티베트를 거쳐 중국의 당 신라 일본에 전래됐다. 당 말에는 여성도 격구 시합을 했다. 격구는 송에 와서 널리 유행했다. 거란과 금에서는 격구가 국가적 제천의례였다.
한국에 격구는 이미 고구려 때부터 있었다. 일본 나라 현의 고분벽화에 고구려 여인이 격구채를 들고 있는 그림이 있다. 경주 구정동 고분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 석조물에서 서역인으로 보이는 인물이 하키채처럼 굽은 격구채를 들고 있다. 격구장 크기는 고려 당시 좌우 200보(260ｍ)정도 된다. ‘경국대전’에서 복원한 격구 공은 직경 12.9㎝, 22g 정도이다.
고려 격구는 태조 원년 9월 후백제 아자개가 투항해 오자 구장에서 맞이했던 게 처음이다. 문종 27년 송나라에서 수입한 포구락은 당악정재로 수록됐다. 국가 차원에서 거행한 공식적 격구 시합은 예종 5년 정월 개경 본궐에서 신기군 검열을 위한 마상격구를 개최한 기록이 최초이다. 예종 11년 왕을 영접할 때 부녀자들이 말 위에서 격구희를 했다. 원의 영향을 받은 충렬왕 이후부터 5월 단오일이 격구 시합일로 고정됐다. 격구는 고려말에 이르러 민간에게도 널리 퍼졌다. 단옷날 큰 길가에 구문(골문)을 세우고 격구 시합을 했다. 격구 시합에서 공치고 던지는 사람은 젊은 무관과 사대부 자제, 시구자는 기녀, 관람자는 백성이었다. 격구는 왕 관인 민이 대거 참여하는 대규모 스포츠였다. 유독 호협한 군주로 평가절하 받던 의종 충혜왕 우왕대에 격구 개최 횟수가 잦다. 정치적 권위가 약한 이들이 스포츠가 지닌 통합과 친목을 기제로 자신의 권력을 다지려 했던 건 아닐까.
격구 장소는 궐내 만월대 중광전 의봉루 구정 이궁 사찰 앞뜰이다. 더러는 민간의 집이나 시전 시장골목 지화재 고라리의 고갯길에서도 치러졌다. 구정을 스포츠 장소인 격구장으로 오인한 건 개경의 풍속을 기록한 중경지에 ‘고려의 풍속이 격구를 좋아해 왕궁에도 구정을 두었다’는 데 있다. 중경지는 문자 그대로 구정을 격구가 행해진 뜰 정도로 해석했다. 훨씬 지난 일제강점기 일본 학자와 최남선에 이르러 구정은 격구장으로 굳혀졌다.
사실 구정은 고려 국가의 천하관과 역사 인식, 권력이 강제된 공간이다. 구정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유교 경전을 모티브로 만든 시설이다. 구정은 천하의 중심이라는 상징적 의미도 띠었다. 구정에서 치러진 축제 팔관회를 비롯한 각종 행사는 국왕을 정점으로 한 고려 국가질서 체계의 확립에 기여했다. 구정은 개경 외에도 서경 동경에도 있었다. 고종 19년(1232) 몽골과 장기 항전을 위해 천도한 강화 궁궐에도 광장인 구정을 조성했다.
 |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창간기획] 낙동강 하구 0.9℃의 경고](design/m_littletern2025.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