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퐁피두, 경제와 문화 사이
혈세 낭비·이기대 난개발, 굴욕적 협상 등 반발에도 市, 분관 꼭 지어야겠다면반대여론 넘을 명분 들고 공론화·시민 설득 나서야
2015년, 이런 일도 있었다. 부산시가 조직을 깼다. 행정부시장이 맡던 문화관광국을 경제부시장 아래로 옮겼다. ‘문화=경제’ 논리는 큰 혼란을 불렀다. 시 문화정책 최고 과제는 ‘문화 융성’이 아니라 ‘일자리·부가가치 창출’이 됐다. ‘시민 혈세를 지원해주니, 너네도 돈을 만들어 오라’는 취지다. 지역 문화·예술계가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파격은 오래가지 못했다. 조직은 2년 만에 원점 회귀했다.
10년이 흘렀다. 문화를 두고 ‘돈’을 따져야 하는 상황이 또 벌어졌다. 유감이다. 이번엔 시의 처지가 바뀌었다. 미술을 사랑하는 이들을 들띄우는 도시, 프랑스 파리. 그곳에 루브르박물관 오르세박물관, 그리고 퐁피두센터가 있다. 그중 퐁피두센터는 명성만큼 겉모습도 예사롭지 않다. 1977년 개관했다. 아직 개관 당시 철골 구조물이 그대로 노출돼 제법 신기하다. 근현대 미술 작품 12만여 점을 소장해 전시한다.
시는 남구 이기대 절경 위에 퐁피두센터 부산 분관을 세우려 한다. 2022년 1월 박형준 시장이 파리에 갔을 때부터 소문이 돌았다. 이후 갈등은 증폭됐다. 시민·환경단체, 문화·예술계, 학계가 줄줄이 반발했다. 정치권까지 참전했다. 예산 낭비, 이기대 난개발, 지역 미술계 붕괴, 문화 사대주의 등 여러 이유가 있다. 표면에 드러난 것 중 가장 선명하고 간단하게 따져볼 만한 건 경제다. 돈이다.
배꼽이 훨씬 크다. 계산이 안 맞다. 퐁피두센터 분관 건립 비용은 1083억 원이다. 부산시의회 기획재경위원회는 지난 3일 공유재산 관리계획안 심사를 보류했다. 시장과 같은 당 시의원들의 지적은 따끔하다. “시는 연간 수입을 50억 원, 지출을 126억 원으로 추산한다. 매년 76억 원 적자다.” “건립 예산과 예상 적자 규모를 제대로 알리지 않는 등 시민 여론조사를 불공정하게 진행했다.”
지난해 국정감사 등 일부 경로로 공개된 양해각서 내용은 굴욕적이다. 시가 분관을 지어주면, 퐁피두가 ‘점유’한다. 시는 아무런 권한이 없다. 계약 기간도 5년으로 한정했다. 5년 이후에도 간판이 붙어 있을지 장담 못 한다. 로열티에 더해 세금 운반비 보험료 등 모든 비용을 시가 부담한다. 각서는 프랑스어와 영어로만 작성하고, 내용을 기밀로 한다. 협약은 프랑스법에 따른다. ‘상호 공감 없이, 돈으로 문화를 산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제, 그럼에도, 수지가 안 맞아도, 굴욕적이어도, 퐁피두센터 분관을 꼭 유치해야 하는지에 관한 논의가 남는다. 시 고위 인사는 퐁피두를 ‘하이엔드 문화’라고 했다. 그런데 문화에 높고 낮음이 있다는 얘기는 교과서에서 배운 적 없다. 백범 김구가 한없이 가지고 싶어 한 ‘높은 문화’ 역시 이름부터 불편한 하이엔드 문화가 아니다. 백범은 “인류에게 인의·자비·사랑을 배양하는 것” “남의 것을 모방하지 않는 것”을 높은 문화라고 했다. 그래서 부산에 하이엔드 문화 콘텐츠가 부족해 퐁피두센터 분관을 들인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다시 경제, 돈이다. 프랑스 퐁피두센터는 이달 말부터 5년간 장기 휴관한다. 건물을 폐쇄하고 대대적 개보수 작업을 한다. 공사 기간 소장품을 보관할 곳이 필요하다. 퐁피두 측으로선 분관을 내는 것이 수천억 원의 공사비를 조달하고, 작품도 안전하게 보관할 묘안이다. 퐁피두는 2015년부터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다. 현지 언론도 ‘해외 분관이 유일한 재정 확보 통로’라고 보도했다. 퐁피두는 2015년 스페인 말라가를 시작으로 벨기에 브뤼셀, 중국 상하이에 분관을 냈다. 미국 사우디와도 계약했다. 조만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도 분관이 개관한다. 서울 쪽 계약이 연장되면, 한국은 퐁피두 분관 2개를 가진 유일한 국가가 된다. 중복 논란에다, 퐁피두 측 외화벌이에 손쉽게 동원된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세계적 미술관이 도시를 살린 사례도 있다. 철강·조선으로 번창하다 쇠퇴해버린 스페인 빌바오는 1997년 구겐하임미술관 분관을 유치해 연간 100만 명이 찾는 문화·관광 도시로 발전했다. 이른바 ‘빌바오 효과’. 시의 믿을 구석이다. 시는 “관광객도 유치하는 다목적 사업으로, 부가가치 창출이 건립비와 운영비의 몇 배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시의 청사진은 ‘불확실한 미래’다. 반면 반대 논리 상당수는 당장 ‘확인되는 사실’이다. 그래도 반드시 퐁피두센터 분관을 지어야 한다면, 시는 시민사회의 공론화 요구에 답하고 시민을 설득해야 한다.
‘세계적 미술관 유치’는 박 시장 공약이다. 퐁피두 측과의 양해각서 시효는 올해 말까지다. 시의회는 9일 공유재산 심사를 속개한다. 시민사회는 하루 앞선 8일 시의회 앞에서 심의 부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다. 다시 갈등이 치솟는다. 과연 시의회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 그 결정은 또 어떤 파장을 일으킬까.
권혁범 편집국 디지털부문장
10년이 흘렀다. 문화를 두고 ‘돈’을 따져야 하는 상황이 또 벌어졌다. 유감이다. 이번엔 시의 처지가 바뀌었다. 미술을 사랑하는 이들을 들띄우는 도시, 프랑스 파리. 그곳에 루브르박물관 오르세박물관, 그리고 퐁피두센터가 있다. 그중 퐁피두센터는 명성만큼 겉모습도 예사롭지 않다. 1977년 개관했다. 아직 개관 당시 철골 구조물이 그대로 노출돼 제법 신기하다. 근현대 미술 작품 12만여 점을 소장해 전시한다.
시는 남구 이기대 절경 위에 퐁피두센터 부산 분관을 세우려 한다. 2022년 1월 박형준 시장이 파리에 갔을 때부터 소문이 돌았다. 이후 갈등은 증폭됐다. 시민·환경단체, 문화·예술계, 학계가 줄줄이 반발했다. 정치권까지 참전했다. 예산 낭비, 이기대 난개발, 지역 미술계 붕괴, 문화 사대주의 등 여러 이유가 있다. 표면에 드러난 것 중 가장 선명하고 간단하게 따져볼 만한 건 경제다. 돈이다.
배꼽이 훨씬 크다. 계산이 안 맞다. 퐁피두센터 분관 건립 비용은 1083억 원이다. 부산시의회 기획재경위원회는 지난 3일 공유재산 관리계획안 심사를 보류했다. 시장과 같은 당 시의원들의 지적은 따끔하다. “시는 연간 수입을 50억 원, 지출을 126억 원으로 추산한다. 매년 76억 원 적자다.” “건립 예산과 예상 적자 규모를 제대로 알리지 않는 등 시민 여론조사를 불공정하게 진행했다.”
지난해 국정감사 등 일부 경로로 공개된 양해각서 내용은 굴욕적이다. 시가 분관을 지어주면, 퐁피두가 ‘점유’한다. 시는 아무런 권한이 없다. 계약 기간도 5년으로 한정했다. 5년 이후에도 간판이 붙어 있을지 장담 못 한다. 로열티에 더해 세금 운반비 보험료 등 모든 비용을 시가 부담한다. 각서는 프랑스어와 영어로만 작성하고, 내용을 기밀로 한다. 협약은 프랑스법에 따른다. ‘상호 공감 없이, 돈으로 문화를 산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제, 그럼에도, 수지가 안 맞아도, 굴욕적이어도, 퐁피두센터 분관을 꼭 유치해야 하는지에 관한 논의가 남는다. 시 고위 인사는 퐁피두를 ‘하이엔드 문화’라고 했다. 그런데 문화에 높고 낮음이 있다는 얘기는 교과서에서 배운 적 없다. 백범 김구가 한없이 가지고 싶어 한 ‘높은 문화’ 역시 이름부터 불편한 하이엔드 문화가 아니다. 백범은 “인류에게 인의·자비·사랑을 배양하는 것” “남의 것을 모방하지 않는 것”을 높은 문화라고 했다. 그래서 부산에 하이엔드 문화 콘텐츠가 부족해 퐁피두센터 분관을 들인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다시 경제, 돈이다. 프랑스 퐁피두센터는 이달 말부터 5년간 장기 휴관한다. 건물을 폐쇄하고 대대적 개보수 작업을 한다. 공사 기간 소장품을 보관할 곳이 필요하다. 퐁피두 측으로선 분관을 내는 것이 수천억 원의 공사비를 조달하고, 작품도 안전하게 보관할 묘안이다. 퐁피두는 2015년부터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다. 현지 언론도 ‘해외 분관이 유일한 재정 확보 통로’라고 보도했다. 퐁피두는 2015년 스페인 말라가를 시작으로 벨기에 브뤼셀, 중국 상하이에 분관을 냈다. 미국 사우디와도 계약했다. 조만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도 분관이 개관한다. 서울 쪽 계약이 연장되면, 한국은 퐁피두 분관 2개를 가진 유일한 국가가 된다. 중복 논란에다, 퐁피두 측 외화벌이에 손쉽게 동원된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세계적 미술관이 도시를 살린 사례도 있다. 철강·조선으로 번창하다 쇠퇴해버린 스페인 빌바오는 1997년 구겐하임미술관 분관을 유치해 연간 100만 명이 찾는 문화·관광 도시로 발전했다. 이른바 ‘빌바오 효과’. 시의 믿을 구석이다. 시는 “관광객도 유치하는 다목적 사업으로, 부가가치 창출이 건립비와 운영비의 몇 배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시의 청사진은 ‘불확실한 미래’다. 반면 반대 논리 상당수는 당장 ‘확인되는 사실’이다. 그래도 반드시 퐁피두센터 분관을 지어야 한다면, 시는 시민사회의 공론화 요구에 답하고 시민을 설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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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범 편집국 디지털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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