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다양한 문제에 부딪힌다. 아이들의 문해 수준을 끌어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아이들의 학습 동기는 어떻게 유발할지, 아이들의 집중력을 어떻게 끌고 갈 수 있을지, 그리고 아이들의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아이들의 질문은 무한대에 가깝다. 나이가 어릴수록 질문의 범위가 가늠조차 어렵기도 하다. 한 번은 한 아이가 진지한 눈빛으로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은 사람이에요? 무슨 질문인지 파악조차 어려워도 아이의 투명한 눈을 보면 답할 수밖에 없도록 설득되어 버린다. 착한 사람인 너의 눈에 보이니까 사람이 아닐까?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오! 라고 답한다. 내 답변이 마음에 든 것이다.

오히려 A와 B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양자론이 더 까다롭게 느껴진다. 짜장과 짬뽕 중에 어떤 게 좋으냐, 엄마와 아빠 중에 누가 좋으냐는 식의 예측 범위 내의 질문이라면 원만하게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 텐데, 예상할 수 있듯이 질문 범주의 폭은 꽤 큰 편이다.

특히 수신자를 복잡다단하게 하는 ‘남자아이들’의 양자론이 있다. 선생님은 빨강이 좋아요, 파랑이 좋아요? 운전할 때 우회전을 자주 해요, 좌회전을 자주 해요? 오른손으로 밥을 먹어요, 왼손으로 밥을 먹어요? 지금에서야 그들의 질문에 내포된 의미를 잘 알지만, 처음에는 별다른 생각 없이 둘 중 한 가지를 선택해 답했다. 그러면 아이들은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본 것처럼 낄낄거리며 웃는다.

지금은 아이들이 ‘원하는’ 범주의 답을 잘 하지 않는다. 오히려 “흰색이 좋고, 직진하며, 밥은 입으로 먹지”라고 답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어, 그러면 안 되는데”라고 혼잣말하며 다음 질문을 준비한다. 이게 다 무슨 말일까 생각된다면 앞으로 이러한 류의 질문에 준비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청소년기의 아이들과 소통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면 더욱더 그렇다.

지금의 아이들, 특히 10대 남자아이들에게 정치란 사상과 이념이 아닌 희화화된 유희에 가깝다. 개념의 무지보다는 순수한 재미의 발걸음이다. 유희를 긍정으로 해석하고 싶지만 부정에 가까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학교에 수업하러 가면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대통령‘들’의 이름을 운율화해 즐겁게 노래 부른다. 아이들에게 가사의 의미를 물어보면 그저 “재미있잖아요”라고 답한다. 그 순수한 즐거움에 전국의 수많은 교수자는 예상하지 못한 골머리를 앓는다. 아이들이 이러한 상황에 놓인 건 어른의 탓이라고 본다. 과거에는 어른의 정치가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긴 어렵다. 아이들에게 가닿는 정보는 선거철에 부모의 입에서 파생되는 정치의 한탄이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유튜브 하나로 온 세상의 정보가 아이들에게 흘러 들어오는 시대이다. 원치 않아도 알고리즘을 한번 타버리면 아이들의 화면은 빨강과 파랑으로 가득 차 버린다.

시험을 코앞에 둔 청소년 중에 밤을 새우면서 정치 토론을 보는 아이들이 꽤 있다. 타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논리정연한 토론 방식을 배운다면 미미한 의미라도 있을 텐데, 비판이란 포장지에 담긴 비난은 아이들에겐 도파민을 불러일으키는 저렴한 재료일 뿐이다. 논리 없는 말과 글은 상대를 쉽게 설득하지 못한다고 가르치는데, 네모 상자 속 논리는 거의 부재에 가깝다. 아이들이 내 가르침에 반문할까 봐 식은땀을 흘린다. 우리의 정치는 어쩌다 아이들에게 이런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일까.

대통령이 다시 한번 임기를 다 채우지 못했다. 누군가에게는 정의일지 몰라도, 슬프고 아픈 역사에 가깝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라고 말할 명분을 잃어버렸다.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보며 밤을 새우면서 자신에게 스마트폰을 금지하는 어른들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한 행동을, 우리 어른이 아이들에게 해버린 것이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다. 위치를 바꾼 파랑과 빨강은 지난한 줄다리기를 할 것이다. 물론 그들 모두가 국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높은 투표율이 이를 방증한다. 한 가지 작은 바람은, 아이들에게 어른이, 정치가, 나라가 우습게 보이지 않았으면 한다. 어른이라면 색과 상관없이 올바른 어른스러움이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