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요지경 대선과 정치의 위로
패배서 배워야 기회 생겨…인권 감수성도 매우 중요완벽한 위로 거의 불가능, 살맛나는 나라 만들어야
권명환 해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부장
제21대 대선 투표율은 79.4%였다. 정치가 후져도 시민은 권리행사를 포기하지 않았다. 투표소는 맥주축제의 긴 화장실 줄을 닮았다. 다들 심각한 표정으로 기표소에 한 명씩 들어가 쾌변의 시원함으로 나온다. 요지경 대선이 끝났다. 시도 때도 없이 들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사랑스러워’ 로고송의 느끼함도, 상대측의 만만찮은 허풍 ‘세계를 주도할 경제 강국 코스피 5000’ 노래도 음소거된다.
후보교체 시도 사건이 있었다. 사고와 사건은 어떻게 다른가. 예컨대 맨홀 뚜껑이 사라졌다. 사고는 맨홀에 빠져 뼈에 금이 가는 것이고 사건은 뚜껑을 떼어내 고물상에 팔아먹는 것이다. 이 둘은 의도성 여부로 구분된다. 모두 잠든 새벽 3시에 32종의 서류를 현장 제출하는 방법은? 난센스 퀴즈 같지만 고의적인 사건이었다. 당원들은 절차적 정당성을 문제 삼아 부결시켰다. 난감한 주동자는 당사자의 포옹으로 작품을 만들고 싶었지만, 정작 모델은 웃고 있지만 웃는 게 아니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썩소, 학폭위에 회부되지 않으려 억지로 악수하는 아이들의 화해랄까.
‘국민의힘’의 문제는 이기지 못한 데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대로 패배하지 못한 데 있다. 탄핵 대선에서 40% 넘는 득표율을 내세우는 정신승리는 셀프 가스라이팅에 가깝다. 최선을 다하고 패배할 때 MZ 세대는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의 칭호를 부여한다. 후보선출 과정의 내홍은, 대선보다 지방선거 공천을 탐내는 억지와 무리수가 아니었을까. 제대로 패배한다는 말은 패배를 이해하고자 애쓰는 노력이다. 역사는 패배에서 배우는 자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서사를 반복해서 보여준다.
대선 토론에서 제3지대 후보의 ‘여성 신체’ 발언은 어떤가. 그는 수위를 낮춰 인용했는데 뭐가 문제냐고 억울해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게 본질이다. 이것은 폭력에 대한 감수성의 문제다. 무방비 상태의 1000만 명에게 가한 폭력이며 성적인 트라우마를 가진 시청자를 향한 2차 가해였다. 물론 대선 패배의 책임을 전가하고픈 심리도 있겠지만, 벌써 의원직 제명 청원이 50만 명을 돌파했다. 자신을 시청자의 생각과 감정 속에 상상으로 넣을 수 있었다면 아마 그런 발언은 없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 마음을 상상하는 것이 공감이며 위로의 기초공사다. 폭력에 관해서라면 최대한 민감해지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요지경 대선은 끝났다. 열렬히 지지한 후보가 당선됐든 낙선했든, 축제가 끝난 자리는 허무하다. 선거 전 공약으로 잠시 행복했던 나라도 원상 복귀했다. OECD 가입국 중 출산율 최하위, 자살률 1위인 한국에서 매일 42명씩 자살한다. 가장 적게 태어나고 가장 많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나라, 범인은 국가일까 아닐까. 그래서 정치에게 묻는 것이다. 사건 사고뿐만 아니라, 비정한 국가 시스템이 개인에 가져온 엇갈림과 비틀림을 정치가 위로할 수 없을까? 상처는 자신의 눈물 한 방울에 수몰될 수도 있지만 위로는 삶의 입맛을 되찾아준다. 고통을 겪는 자는 고통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의 말만이 진실하게 들린다. 위로가 귀한 건 가장 끝까지 듣고 가장 나중에 판단하는 태도 덕분이다.
모든 감정의 끝에는 슬픔이 있다. 슬픔은, 일상이란 음식을 아무 생각 없이 먹다가 돌을 씹어 멈추게 되는 장면이고, 흘러가는 고통을 영원한 고통으로 못질해 버리는 적요한 시간이다. 우리는 특정한 불행에만 슬픈 게 아니라 대체로 슬프다. 나는, 상실한 어머니의 떨어진 머리카락 한 올의 무게가 천근처럼 무거워 줍지 못하고 엉엉 울기만 한 중년을 알고 있다. ‘널 이해해’라는 말은 종종 그 사람을 이해하는 말이 아니라 오해하는 말이다. 상실을 경험한 사람에겐 더욱 그렇다. 상실을 경험한 다섯 명이 내 앞에 있다면 그 다섯의 공통된 경향성은 고통 외엔 없다. 정치는 다섯을 하나의 묶음으로 읽으려 하지만, 다섯 모두 제각각의 이유로 고통받고 그 고통에는 다섯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오로지 제각각의 상황 속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위로하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그 사람 입장에서 읽는 방법밖에 없다. 어떻게 가능할까? 어느 누구도 완벽하게 위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어떻게 위로할까’ 고뇌한 흔적이 있다면 그 마음은 반드시 전달된다. 설사 위로의 방법이 서툴러도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의 지원군으로 자원입대 하는 것이다.
언젠가 진료실에서 폭력의 피해자이자 자녀를 잃은 희생자 분과 얘길 나누었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그 잔혹하고 이기적인 가해자에게 점점 화가 났고, 나도 모르게 쌍욕이 튀어나왔다. 나는 순간 부끄러워서, 전문가로서 많이 모자란 점을 사과했다. 치료가 종결된 날, 피해자는 손 편지를 내게 주었다. “선생님이 분노했던 그날은 가장 위로받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반성하지 않고 아직도 기세등등한 가해자에 화가 치솟을 때면 선생님이 나와 함께 해준, 나 대신에 날려준 그날의 욕을 복용합니다.”
후보교체 시도 사건이 있었다. 사고와 사건은 어떻게 다른가. 예컨대 맨홀 뚜껑이 사라졌다. 사고는 맨홀에 빠져 뼈에 금이 가는 것이고 사건은 뚜껑을 떼어내 고물상에 팔아먹는 것이다. 이 둘은 의도성 여부로 구분된다. 모두 잠든 새벽 3시에 32종의 서류를 현장 제출하는 방법은? 난센스 퀴즈 같지만 고의적인 사건이었다. 당원들은 절차적 정당성을 문제 삼아 부결시켰다. 난감한 주동자는 당사자의 포옹으로 작품을 만들고 싶었지만, 정작 모델은 웃고 있지만 웃는 게 아니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썩소, 학폭위에 회부되지 않으려 억지로 악수하는 아이들의 화해랄까.
‘국민의힘’의 문제는 이기지 못한 데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대로 패배하지 못한 데 있다. 탄핵 대선에서 40% 넘는 득표율을 내세우는 정신승리는 셀프 가스라이팅에 가깝다. 최선을 다하고 패배할 때 MZ 세대는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의 칭호를 부여한다. 후보선출 과정의 내홍은, 대선보다 지방선거 공천을 탐내는 억지와 무리수가 아니었을까. 제대로 패배한다는 말은 패배를 이해하고자 애쓰는 노력이다. 역사는 패배에서 배우는 자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서사를 반복해서 보여준다.
대선 토론에서 제3지대 후보의 ‘여성 신체’ 발언은 어떤가. 그는 수위를 낮춰 인용했는데 뭐가 문제냐고 억울해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게 본질이다. 이것은 폭력에 대한 감수성의 문제다. 무방비 상태의 1000만 명에게 가한 폭력이며 성적인 트라우마를 가진 시청자를 향한 2차 가해였다. 물론 대선 패배의 책임을 전가하고픈 심리도 있겠지만, 벌써 의원직 제명 청원이 50만 명을 돌파했다. 자신을 시청자의 생각과 감정 속에 상상으로 넣을 수 있었다면 아마 그런 발언은 없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 마음을 상상하는 것이 공감이며 위로의 기초공사다. 폭력에 관해서라면 최대한 민감해지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요지경 대선은 끝났다. 열렬히 지지한 후보가 당선됐든 낙선했든, 축제가 끝난 자리는 허무하다. 선거 전 공약으로 잠시 행복했던 나라도 원상 복귀했다. OECD 가입국 중 출산율 최하위, 자살률 1위인 한국에서 매일 42명씩 자살한다. 가장 적게 태어나고 가장 많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나라, 범인은 국가일까 아닐까. 그래서 정치에게 묻는 것이다. 사건 사고뿐만 아니라, 비정한 국가 시스템이 개인에 가져온 엇갈림과 비틀림을 정치가 위로할 수 없을까? 상처는 자신의 눈물 한 방울에 수몰될 수도 있지만 위로는 삶의 입맛을 되찾아준다. 고통을 겪는 자는 고통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의 말만이 진실하게 들린다. 위로가 귀한 건 가장 끝까지 듣고 가장 나중에 판단하는 태도 덕분이다.
모든 감정의 끝에는 슬픔이 있다. 슬픔은, 일상이란 음식을 아무 생각 없이 먹다가 돌을 씹어 멈추게 되는 장면이고, 흘러가는 고통을 영원한 고통으로 못질해 버리는 적요한 시간이다. 우리는 특정한 불행에만 슬픈 게 아니라 대체로 슬프다. 나는, 상실한 어머니의 떨어진 머리카락 한 올의 무게가 천근처럼 무거워 줍지 못하고 엉엉 울기만 한 중년을 알고 있다. ‘널 이해해’라는 말은 종종 그 사람을 이해하는 말이 아니라 오해하는 말이다. 상실을 경험한 사람에겐 더욱 그렇다. 상실을 경험한 다섯 명이 내 앞에 있다면 그 다섯의 공통된 경향성은 고통 외엔 없다. 정치는 다섯을 하나의 묶음으로 읽으려 하지만, 다섯 모두 제각각의 이유로 고통받고 그 고통에는 다섯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오로지 제각각의 상황 속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위로하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그 사람 입장에서 읽는 방법밖에 없다. 어떻게 가능할까? 어느 누구도 완벽하게 위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어떻게 위로할까’ 고뇌한 흔적이 있다면 그 마음은 반드시 전달된다. 설사 위로의 방법이 서툴러도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의 지원군으로 자원입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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