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말, 옛 부산시장 관사 ‘도모헌’에서 열린 ‘가스트로 도모: 부산의 미래’ 행사에는 대한민국 미식계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대거 참여했다. ‘2025 미쉐린 가이드’에 선정된 3스타 레스토랑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를 비롯해, 지역 미쉐린 레스토랑 44곳의 요리사들이 모였다. ‘미식(Gastro)’으로 부산의 미래를 ‘도모(Domo)’한다는 상징적인 기획이었다.
평소 한 자리에서 만나기 어려운 셰프들이 미식의 가능성과 지역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진정성 있는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무엇보다 미식을 단순한 소비 콘텐츠가 아닌 지역경제와 글로벌 도시 브랜딩 전략의 핵심 자산으로 키우겠다는 시의 의지가 분명히 느껴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부산 대표 서점 ‘영광도서’의 문화홀이 떠올랐다. 지금은 17층 규모의 현대식 건물로 리모델링돼 옛 모습을 찾기 어렵지만, 과거 문화홀은 그곳을 다녀간 수많은 작가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묵직한 존재감을 지닌 얼굴들. 그 사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 서점이 쌓아온 문화적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과거 이 서점에서는 ‘영광독서토론회’라는 문학 행사가 정기적으로 열렸다. 신간을 낸 작가들을 초청하고, 지역의 작가 평론가 교수들이 모여 진지한 문학 담론을 나누던 자리였다. 조정래 김훈 신경림 이문구 박범신 유홍준 등 이름만으로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이들이 부산을 찾았고, 행사가 끝난 뒤에는 밤늦도록 이어지는 뒤풀이에서 인간적인 교류가 이어지곤 했다. 그 시절 부산은 결코 문학의 변방이 아니었고, 그 중심에는 지역서점인 ‘영광도서’가 있었다. 거대한 자본이나 공공기관이 아닌, 책을 사랑하는 서점주인과 지역 독자들의 열정이 만들어낸 일이었다.
올해 3월, 크레타 서점에도 오랜만에 특별한 손님이 다녀갔다. 시인 김사인. 그의 정년퇴임을 기념해, 오랜 벗 이종민 전북대 명예교수가 기획한 ‘김사인 함께 읽기’ 출간을 계기로 북토크를 열게 되었다. 행사 당일 30명에 가까운 독자들이 서점을 가득 채웠고, 그중에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편집자, 출판사 대표, 작가들도 자리했다. 특히 서울에서 내려온 오은 시인의 등장으로 이 만남은 더욱 뜻깊어졌다.
이날의 북토크는 단순한 작가와의 만남을 넘어 한 시대를 관통해온 시인의 목소리와 그 시를 품은 독자들의 애정 어린 시선이 깊게 교차하는 자리였다. 김사인 시인은 자신의 시를 진심을 담아 읽어 내려갔고, 관객들은 숨소리마저 죽이며 귀를 기울였다. 시를 쓰는 이의 삶과, 읽는 이의 마음이 조용히 공명하는 순간, 그 따뜻한 진동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행사 후에는 자연스럽게 뒤풀이 자리가 이어졌다. 술잔을 기울이며 오간 이야기들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함께 꿈꿔볼 미래까지를 넘나들었다. 한 참가자는 “이런 작가님과 가까운 거리에서 술잔을 나누고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니 믿기지 않는다”며 감사를 전했고, 또 다른 이는 “이런 자리를 경험하니 다시 글을 써야겠다는 용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나는 ‘가스트로 도모: 부산의 미래’라는 행사를 보며, 감탄과 함께 한 가지 아쉬움이 남았다. “그렇다면 문학은 어디쯤 있는가?” “미식 다음, 부산이 집중해야 할 미래 콘텐츠는 무엇이어야 할까?” 상상해본다. ‘책(Bibli)’으로 부산의 미래를 ‘도모(Domo)’하는 ‘비블리 도모 : 부산의 미래’. 지역에서 성실히 창작을 이어온 작가들이 한강 김영하 김애란 같은 작가들과 한 자리에 앉아 서로의 언어를 나누는 자리. 시와 소설, 에세이가 단지 장르가 아니라 세대와 도시를 잇는 다리가 되는 자리. 그날 도모헌에서는 시가 울리고, 소설이 이야기되고, 작가와 독자, 편집자와 번역가, 서점인과 창작자가 함께 도시의 내일을 상상할 것이다.
이런 기획은 미식에 이어 또 하나의 도시 콘텐츠로서 문학의 가치를 드러내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리고 ‘○○ 도모 : 부산의 미래’라는 이름 아래 디자인, 공연, 예술, 로컬 브랜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가 주도하는 문화의 플랫폼이 이어진다면, 부산은 더 이상 산업의 도시가 아니라 문화의 도시로 확고히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지역서점과 같은 민간의 자생적인 활동이 뿌리처럼 자리잡고 있을 때, 비로소 공공 정책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평소 한 자리에서 만나기 어려운 셰프들이 미식의 가능성과 지역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진정성 있는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무엇보다 미식을 단순한 소비 콘텐츠가 아닌 지역경제와 글로벌 도시 브랜딩 전략의 핵심 자산으로 키우겠다는 시의 의지가 분명히 느껴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부산 대표 서점 ‘영광도서’의 문화홀이 떠올랐다. 지금은 17층 규모의 현대식 건물로 리모델링돼 옛 모습을 찾기 어렵지만, 과거 문화홀은 그곳을 다녀간 수많은 작가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묵직한 존재감을 지닌 얼굴들. 그 사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 서점이 쌓아온 문화적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과거 이 서점에서는 ‘영광독서토론회’라는 문학 행사가 정기적으로 열렸다. 신간을 낸 작가들을 초청하고, 지역의 작가 평론가 교수들이 모여 진지한 문학 담론을 나누던 자리였다. 조정래 김훈 신경림 이문구 박범신 유홍준 등 이름만으로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이들이 부산을 찾았고, 행사가 끝난 뒤에는 밤늦도록 이어지는 뒤풀이에서 인간적인 교류가 이어지곤 했다. 그 시절 부산은 결코 문학의 변방이 아니었고, 그 중심에는 지역서점인 ‘영광도서’가 있었다. 거대한 자본이나 공공기관이 아닌, 책을 사랑하는 서점주인과 지역 독자들의 열정이 만들어낸 일이었다.
올해 3월, 크레타 서점에도 오랜만에 특별한 손님이 다녀갔다. 시인 김사인. 그의 정년퇴임을 기념해, 오랜 벗 이종민 전북대 명예교수가 기획한 ‘김사인 함께 읽기’ 출간을 계기로 북토크를 열게 되었다. 행사 당일 30명에 가까운 독자들이 서점을 가득 채웠고, 그중에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편집자, 출판사 대표, 작가들도 자리했다. 특히 서울에서 내려온 오은 시인의 등장으로 이 만남은 더욱 뜻깊어졌다.
이날의 북토크는 단순한 작가와의 만남을 넘어 한 시대를 관통해온 시인의 목소리와 그 시를 품은 독자들의 애정 어린 시선이 깊게 교차하는 자리였다. 김사인 시인은 자신의 시를 진심을 담아 읽어 내려갔고, 관객들은 숨소리마저 죽이며 귀를 기울였다. 시를 쓰는 이의 삶과, 읽는 이의 마음이 조용히 공명하는 순간, 그 따뜻한 진동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행사 후에는 자연스럽게 뒤풀이 자리가 이어졌다. 술잔을 기울이며 오간 이야기들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함께 꿈꿔볼 미래까지를 넘나들었다. 한 참가자는 “이런 작가님과 가까운 거리에서 술잔을 나누고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니 믿기지 않는다”며 감사를 전했고, 또 다른 이는 “이런 자리를 경험하니 다시 글을 써야겠다는 용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나는 ‘가스트로 도모: 부산의 미래’라는 행사를 보며, 감탄과 함께 한 가지 아쉬움이 남았다. “그렇다면 문학은 어디쯤 있는가?” “미식 다음, 부산이 집중해야 할 미래 콘텐츠는 무엇이어야 할까?” 상상해본다. ‘책(Bibli)’으로 부산의 미래를 ‘도모(Domo)’하는 ‘비블리 도모 : 부산의 미래’. 지역에서 성실히 창작을 이어온 작가들이 한강 김영하 김애란 같은 작가들과 한 자리에 앉아 서로의 언어를 나누는 자리. 시와 소설, 에세이가 단지 장르가 아니라 세대와 도시를 잇는 다리가 되는 자리. 그날 도모헌에서는 시가 울리고, 소설이 이야기되고, 작가와 독자, 편집자와 번역가, 서점인과 창작자가 함께 도시의 내일을 상상할 것이다.
 |
다만 지역서점과 같은 민간의 자생적인 활동이 뿌리처럼 자리잡고 있을 때, 비로소 공공 정책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