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규석(80) 선생이 쓴 책 ‘사람들은 어디 갔노, 청산만 날 부르네’가 최근 부산의 도서출판 전망에서 나왔다. 853쪽인 이 두꺼운 산문집을 펴내며, 저자는 책 맨 뒤에 본인이 직접 정리한 ‘천규석 이력’에 “내 평생에 마지막이 될 책”이라고 썼다. 책의 제1부는 ‘나는 소농두레(농본공동체)연합주의자다’, 제2부는 ‘농본민주주의는 살고 포장주의는 가라’다. 제3부는 ‘나는 소수파·보편주의자로 살다 간다’이다. 그는 제3부를 “자식들에게 남기는 유언집”이라고 머리말에서 밝혔다.

천규석이라는 이름은 한국 사회에 농본사상가, 생태운동가, 소농두레(농본자치) 운동을 실천한 삶 등으로 잘 알려졌다. 책 속 저자 소개와 이력을 참조하면, 생명·생태를 크게 살리는 실천가·사상가로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1945년 경남 창녕군 영산면에서 태어난 그는 영산농업고등학교·서라벌예술초급대학 문예창작과·서울대학교 문리대 미학과를 졸업했다.

엄혹한 군사독재정권 시절, 서울에서 치열하게 살았던 청년 천규석은 “6·3 운동(박정희 정권의 한일 협정 시도에 대한 반대 운동)이 계엄군의 대학 점령으로 무참하게 좌절당하자 뜻한 바 있어 졸업과 동시에 낙향을 결행, 영농에 종사했다.” 그 뒤로 그는 평생 경남·북과 대구 등지에 살며 농사를 짓고 생태·환경·생명·농촌공동체재생운동에 이바지했다. “1986년 (서울)한살림공동체소비자생활협동조합에 초대 이사로 동참, 1990년 주로 대구에 머물며 대구한살림 설립 동참”이라는 이력에서도 알 수 있듯 한살림 운동에서도 중요한 구실을 했다.

“1969년 3월~1971년 11월 부산 한성여대에서 강사로 ‘미학개론’과 ‘의상철학 강의, 1991~1993년 영남대에서 강사로 ‘민족연희’ 강의” 등 학구적인 이력도 눈길을 끈다. 생태·생명 운동가인 고 김종철 선생이 이끈 잡지 ‘녹색평론’ 필자로 왕성히 동참했고, ‘돌아갈 때가 되면 돌아가는 것이 진보다’ ‘소농 버리고 가는 진보는 십리도 못가 발병 난다’ ‘잃어버린 민중의 축제를 찾아서’ ‘천규석의 윤리적 소비’ ‘망쪼 든 세상, 그래도 기리버서’ 등 책도 여러 권 펴냈다. 생명·생태가 평화와 함께 거대한 위기에 처한 오늘, 생태·생명·농업·공동체 운동을 평생 실천한 우리 사회 어른이 평생 마지막 책이라는 심정으로 쓴 결과물이 눈길을 끌어당긴다. 머리말에서 그는 “농본주의 소수파의 길을 사노라고” 자상하게 챙기지 못했다며 자녀들에게 “미안하다”고 썼다.

조봉권 문화라이프부 선임기자